140427 이번 주만 무사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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얌전하게 야식을 먹고 자려고 했으나 니나 시몬에 이어서 메르세데스 소사가 나오니 맥주를 깔 수밖에!

이번 주만 무사히, 무사히 지나가거라. 기원하면서 잠드는 일요일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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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si casi nada me resulta pasajero
todo prende de mis sueños
y se acopla en mi espalda
y así subo muy tranquilo la colina
de la vida.

Nunca me creo en la cima o en la gloria,
eso es un gran fantasma
creado por generaciones pasadas,
atascado en el camino de la vida.

La realidad duerme sola en un entierro
y camina triste por el sueño del más bueno.
La realidad baila sola en la mentira
y en un bolsillo tiene amor y alegrías,
un dios de fantasías,
la guerra y la poesía.

Tengo de todo para ver y creer,
para obviar o no creer
y muchas veces me encuentro solitario
llorando en el umbral de la vida.

Busco hacer pie en un mundo al revés
busco algún buen amigo
para que no me atrape algún día,
temiendo hallarla muerta
a la vida.

La realidad duerme sola en un entierro
y camina triste por el sueño del más bueno.
La realidad baila sola en la mentira
y en un bolsillo tiene amor y alegrías,
un dios de fantasías,
la guerra y la poesía.


150415

#Now Play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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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를 에버노트로 쓰기 시작한 이후로 블로그를 잘 안 하게 됐다. 근데 에버노트에는 동영상 임베딩이 안 되는 것이 큰 단점; 어제부터 쳇 베이커를 줄창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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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부터 쭉 바빠서, 4월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일만 한다... 요가는 여전히 꾸준하게 하고 있지만 약간의 슬럼프를 겪고 있다. 정체기라서 슬프다... 이번 건강검진에서 몸 상태에 긍정적인 변화가 있다는 걸 가시적으로 확인하면 기분이나마 나아지려나! 요 몇주는 예정에 없던 야근이 많았고 마감 끝나고 사람 만나고 노느라 주3회도 간신히 갔으니 조금 퇴화한 것은 어쩔 수 없는가. ㅠ


그나저나 지난 주말에 요가복 공동구매 때문에 기분 상한 게 아직도 풀리지를 않는다. 어떻게 해결은 됐지만... 

진짜 내 탓 아닌데 -_- 상대방은 나를 욕하고 있겠지. ㅇ아아아아아ㅏ

이런 것에도 의연해질 수 있어야지... 그래. 쪼잔해지지 맙시다...

이런 일 때문에 스튜디오에 애정이 떨어지다니 ㅠ 내가 당신네 스튜디오를 얼마나 좋아하고 칭찬하고 다녔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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됐다... 할 말도 없네.

5월에는 오호리 공원에 가야지.


쳇 베이커나 들읍시다.




나를 불쾌하게 만드는 사람 / 장정일

* 아래는 장정일이 샤를리 에브도 사건에 대해 쓴 글. 장정일 멋있다!

  지난 1월 7일 파리에서 일어난샤를리 에브도테러 사건에 대해나는 도합 세 번의 글을 썼다이 사건에 관심은 있었지만글은 기회가 되면 천천히 쓰리라 생각했는데 어쩌다 그렇게 되었다나로 하여금 첫 번째 글을 쓰게 만든 계기는 <한겨레신문 1월 31일자에  정희진씨가 쓴관용이라는 제목의 글이다
  나는 정희진씨의 연재를 기다리면서 읽는 애독자이지만쿠아시 형제의 범행을 얼마나 분노했기에 비난받을 것이 뻔한 행동을 했을까?”라고 감싸는 것에 우선 말문이 막혔으며이슬람을 약자로 전제한 채 권력을 향한 풍자는 미학이지만 약자를 조롱하는 것은 폭력이다.”라고 말하는 대목에 강한 의구심을 느꼈다. <한겨레신문 2월 5일치에 실린 나의 글이슬람근본주의와 관용의 타락한 사용법에 대해는 쿠아시 형제의 범행을 감싸는 것은 타락한 관용에 근거한 것이며, ‘이슬람은 약자가 아니다라는 두 가지 주장을 담았다전문을 소개한다
    
  2015년 1월 7파리에서 일어난 샤를리 에브도 테러 사건에 대한 논의가 끝날 줄 모른다. <한겨레지상에서도 여러 칼럼니스트와 독자가 의견을 밝혔다그 가운데는샤를리 에브도의 풍자가 약자를 향한 폭력이라는 주장이 많다샤를리 에브도의 과격한 풍자를 꾸짖는 사람들은 상식처럼 보이는 표현의 자유가 알고 보면 서구 중심주의적인 폭력이며 서구 세속주의자에게만 유효한 무기라고 비난한다풍자를 당하는 이슬람은 서구 주류 사회 안의 절대 약자라는 것이다그러면서 진정한 관용은 약자를 보살피고 개별성을 배려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오만한 서구 대 핍박받는 이슬람이라는 구도로 이번 사건을 본다하지만 그런 설명은 쿠아시 형제를 지도한 이슬람근본주의에 눈감는 반쪽 설명에 지나지 않는다영미 제국주의가 중동에 심어놓은 이스라엘이 이슬람근본주의를 불러왔다거나쿠아시 형제가 이슬람근본주의에 심취하여 예멘 알카에다와 접속하게 된 원인 또한 프랑스 다문화주의 정책의 실패에서 찾는 분석이 흔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인도 소설가 살만 루슈디는 1988영어로 집필되고 출판된악마의 시라는 소설에서 이슬람교의 창시자 무함마드와 코란을 모독했다는 죄목으로 이듬해 이란의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호메이니로부터 사형Fatwa을 선고 받았다현재 루슈디는 330만 달러의 현상금을 목에 걸고도 생명을 부지하고 있지만 이탈리아노르웨이터키의 번역자는 피습을 받고 중상을 당했으며일본인 번역자 이가라시 히토시 교수는 자신이 근무하던 쓰쿠바 대학교 캠퍼스 안에서 칼을 맞고 죽었다루슈디와악마의 시번역자들은 하나같이 이란 사람이 아닌데이란의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호메이니는 무슨 권한으로 타국의 국민에게 사형 선고와 그것에 준하는 처벌을 선동할 수 있었던 것일까각 나라의 주권과 국제법을 괘의치 않는 이슬람근본주의가 있는 한세계는 여전히 교황이 파문권을 행사하던 중세다.    

  
세계화와 세속화에 직면해 앞으로 점점 증가하는 풍자와 조롱을 마주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이슬람의 운명이다이슬람권 안에서도 가장 자유로운 나라에 속한다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여성이 운전을 할 수 없고이집트 여성은 청바지를 입을 수 없다이슬람 율법이 강한 국가에서 여성이 남자 의사의 진료를 꺼리다가 죽어가거나강간을 당한 누이를 남자 형제들이 명예살인하는 것도 다반사다그런 나라에서 이슬람을 비판하거나 종교의 자유를 주장하는 것은 아예 자살 행위다이런 모든 것들이 이슬람을 풍자하고 조롱하는 근거가 된다이슬람은 그때마다 테러로 응수할 텐가설령 누가 진지하고 예의를 갖춘 비판을 하더라도 오늘 같은 상황에서는 테러를 피하기 힘들다

  관용은 샤를르 에브도 사건’ 이후 가장 많이 들먹여진 용어다모두들 관용에 대해 한 마디씩 하지만관용의 가장 타락한 사용법은 상대방을 아이로 취급하면서 상대방의 환상을 깨지 않으려는 태도이며어떤 진리든 진리를 주장하는 것은 모두 폭력이라는 발상에서 출발한다즉 우리는 ,의 태도와 발상을 간직한 채 이슬람을 아이’ 취급하고그들에 대한 이의 제기를 폭력’ 행사나 되는 양 자기 검열을 해온 것이 아닌가과격하게 말해비판이 필요한 근본적 차이를 문화적 차이와 생활 방식의 차이로 변질시키고미소 띤 얼굴로 표현의 올바름에만 신경을 써 온 허다한 프랑스 지식인들의 타락한 관용이 풍자만화가들을 참극으로 내몬 게 아닌가?

  결코 이슬람은 약자가 아니다이슬람은 천주교와 개신교를 합한 숫자를 제외하면세계에서 가장 많은 신도를 가진 종교다이슬람은 고령화 되어가는 다른 종교와 달리 가장 많은 20대 신도를 가졌다서구로 유입되는 이민의 대다수도 무슬림이다이슬람은 서구를 향해 자신을 아이 취급하고 예외로 다루어 달라고 더는 징징거리지 말아야 한다이슬람이 진정 유서 깊은 역사와 지혜를 간직하고 있다면그들이 길러온 문화의 힘으로 풍자와 조롱에 맞서야 한다.
    
  위의 글에서 사우디아라비아를 가리켜 이슬람권 안에서도 가장 자유로운 나라에 속한다고 쓴 것은 나의 실수다오사마 빈라덴의 알카에다에게 많은 전사를 공급한 수니파 와하비주의자들의 본거지가 사우디아라비아며 종교경찰의 위세도 대단하다나는 장기간 정치적 안정을 이루고 있는 친미파 정권 사우디아라비아를 자유로운 나라로 착각했다이 글을 읽으시는 분은저 대목을 빼고 읽어 주시기 바란다.
  <한겨레에 쓴이슬람근본주의와 관용의 타락한 사용법에 대해가 너무 짧아서 새로운 글을 준비하고 있는 중에이택광이 두 차례에 걸쳐 아래와 같은 트윗을 올렸다
    
  내가 보기에 서구로 유입되는 이민의 대다수도 무슬림이다는 근거로 이슬람이 약자가 아니다고 주장하는 장정일의 생각은 나이브하다그 이유를 박노자의 글이 잘 설명해주고 있다
    
  이슬람은 천주교와 개신교를 합한 숫자를 제외하면세계에서 가장 많은 신도를 가진 종교라서 약자가 아니라는 주장도 억지스럽다그렇다면 부자 1%에 대해 그렇지 않은 99%도 강자일 것이다.

  내가 준비 중이었던 두 번째 글은 2월 16일 발행된시사IN설날 특집호에이슬람이 약자인가라는 제목으로 실렸다전문을 소개한다.
    
  2015년 1월 7예멘 알카에다와 연계된 쿠아시 형제가 풍자 주간지샤를르 에브도를 습격했다내가 읽은 대부분의 칼럼은샤를리 에브도의 풍자가 약자를 향한 폭력이라고 말한다프랑스 안의 무슬림이 약자인 것은 맞지만그 사건은 한 나라에서 계획된 일국一國의 범죄가 아니었다반미주의자들이 미국은 강하다고 말하는 반면미국의 주류 사상가들은 미국은 약해지고 있다고 말한다이슬람이 약자인가아닌가도 상대적이다.

  상식이 없는 사람만 모를 뿐하나의 문명권이나 지역의 흥망성세를 다룰 때 인구는 반드시 고려되는 상수다현재는 이슬람권의 인구가 그들을 강자로 환산하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지 않지만인구는 언젠가 그들을 강자로 만들어 줄 잠재력이다서구로 유입되는 무슬림의 증가가 이슬람포비아(Islamophobia이슬람공포증)를 부르고 그것이 유럽의 극우주의로 되먹임 되고 있는 게 현실이 아닌가

  우리는 한 사회나 문명이 가진 힘의 총량을 하드 파워hard power로만 계산하는 습관에 익숙하지만어떤 사회나 문명에서는 소프트 파워soft power가 더 위력을 발휘한다이슬람은 서구만 한 군사적 하드 파워는 없지만강력한 소프트 파워(종교)가 있다우리가 무신론을 주장할 수는 있지만누구도 한 사회에서 종교가 갖는 규정력을 부인하지는 못한다유물론자를 자처하면서 종교를 허구나 마취제 정도로 치부하는 사람을 가리켜 슬라보예 지젝은 관념론자라고 말한다마지막으로, 21세기의 전쟁이 비대칭 전쟁Asymmetric warfare인 것도 중요하다. 911 직후에 일으킨 두 개의 전쟁에서 미국은 정복과는 거리가 먼 일시적인 승리를 거두었을 뿐탈레반도 알 카에다도 뿌리 뽑지 못했다

  샤를리 에브도테러 사건 직후, ‘관용이 만병통치약으로 떠올랐다하지만 정작 이런 시대일수록 관용을 의심하면서관용의 타락된 사용법을 물리쳐야 한다나는 2011년 10시사IN216호에서 관용의 타락한 사용법을 두 가지로 정리했다첫째상대방을 아이로 취급하면서 상대방의 환상을 깨지 않으려는 태도둘째어떤 진리든 진리를 주장하는 것은 모두 폭력이라는 발상에 근거한 조바심이런 태도와 발상에서 출발한 타락한 관용은 비판이 꼭 필요한 근본적 차이를 문화적 차이와 생활 방식의 차이로 변질시키고스스로를 자기 검열하면서 표현의 올바름에만 신경을 쓴다미소 띤 얼굴로 서로 듣기 좋은 덕담만 하는 게 관용이라면그 아무도 자신의 신념이나 현상을 바꿀 필요가 없어진다

  관용의 엄격한 사용이 상대를 어른’ 취급하는 것이라면관용의 타락된 사용법은 상대를 아이’ 취급하는 것이다상대를 아이 취급하지 않고 어른 취급하는 일이나 스스로를 아이가 아닌 어른이라고 생각하는 일에서 찾을 수 있는 윤리적 이점은서로에 대한 존중과 자기 책임의식의 배양이다내가 당신을 어른 취급 할 때비로소 나는 당신을 존중할 수 있을 것이다또 스스로를 어른이라고 생각해야자신에 대한 책임의식이 생긴다이슬람을 아이로 취급하는 서구의 인식론적 폭력이나 이슬람 스스로가 자신을 약자로 자처하는 기만행위 속에서는 그 어떤 존중이나 책임의식도 싹트지 않는다이슬람을 약자로 간주하려는 사람은 이슬람에 대한 존중을 내버린 사람이며이슬람을 향해 자기 책임의식 따위는 내팽개치라고 선동하는 것이다그것은 정치적으로나 윤리적으로우리 모두가 타락하는 길이다.

  세계화와 세속화에 직면해 앞으로 점점 증가하는 풍자와 조롱을 마주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이슬람의 운명이다이슬람 율법이 횡행하는 나라에서 여성의 운전과 청바지가 금지되어있다거나여성이 남자 의사의 진료를 꺼리다가 죽어가는 일강간을 당한 누이를 남자 형제들이 명예살인하는 따위의 야만은 충분히 이슬람을 풍자하고 조롱할 근거가 된다이슬람은 그때마다 테러로 응수할 텐가이슬람이 진정 유서 깊은 역사와 지혜를 간직하고 있다면이제껏 길러온 문화의 힘으로 풍자와 조롱에 맞서야 한다.

  진보라 일컫는 논객들은 샤를리 에브도테러 사건의 총체적 접근에 관심이 없다그저 한국 내의 경제적 불평등 문제를 샤를리 에브도테러 사건에 외삽 시키고샤를리 에브도테러 사건을 한국 상황에 필요한 교훈이나 경고로 전유할 생각뿐이다그런 목적에서 쿠아시 형제의 테러는 프랑스 내국인 사이에 불거진 계급문제로 축소되고그들의 배후인 이슬람 근본주의는 사건 관계도에서 지워졌다이들의 말이 맞는다면쿠아시 형제를 지도한 예멘 알카에다는 무려 전 세계의 계급투쟁을 위해 창설된 국제 노동자 연맹이고,샤를리 에브도를 급습한 것도 심지어 계급해방을 위한 거사다그렇다면 향후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그들의 승리 속에 무슬림이 아닌 서구 백인이나 아시아계 프롤레타리아트도 기입될 수 있다고 기대해도 좋은가그게 아니라면쿠아시 형제의 범죄는 인종차별에 맞선 또 다른 인종차별에 지나지 않는다

  한국의 진보 논객들이 참극을 맞은샤를리 에브도를 한번도 표현의 자유라는 가치로 옹호하지 않았던 진짜 이유는위에서 지적한 외삽과 전유가 매끈하게 이루어지기 위해서는샤를리 에브도가 절대 언론사가 되어서는 안 되었기 때문이다진보 논객들에게샤를리 에브도는 새누리당이고 재벌이고 10%여야만 했고쿠아시 형제는 비정규직 노동자고 실업자며 90%를 뜻해야만 했다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더니프랑스 파리에서 생긴 사건은 이렇게 해서 월드 뉴스가 아닌 대한 늬우스가 되었다

  웬디 브라운의관용(갈무리,2010)은 관용이 더 이상 수동적인 가치가 아니라적극적으로 추구해야 하는 이데올로기가 되어버린 이 시대의 필독서다서구가 주도하는 다문화시대의 관용이란, ‘자신은 바꾸지 않으면서타자를 배제하는 수단에 이용된다이때 포용과 배제를 정하는 관용의 기준은 서구의 지배적인 가치와 문화다또한 관용은 당면한 여러 가지 정치사회적 문제를 해결 할 수 없는 자유주의적 민주주의가 자기 내부에서 분출하는 정치사회적 적대를 차이의 문제로 치환하면서 근본적인 해결을 회피하는 전략이기도 하다이 책을 읽고 나면지금까지 이 주제의 막강한 고전이었던 볼테르의관용론(한길사,2001)이나 필리프 사시에의왜 똘레랑스인가(상형문자,2000)는 낡은 정도가 아니라아예 해독害毒이 필요한 문서로 보인다우려되는 것은관용이 다문화제국의 새로운 통치전략이라는 이 책의 논지를 너무 잘 수용한 나머지 관용의 타락한 사용법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앞서 나온 이택광의 트윗글을 기억하는 독자라면위의 글에 나온  상식이 없는 사람이 누구를 가리키고 있는지 충분히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관용』의 역자가시사IN』에 나온 내 글이 관용』의 요점이 아니라면서 "헛다리"'를 짚고 있다길래, 메일을 해서 오해를 풀어 주었다. 저 글은 차례대로 이슬람은 약자가 아니다어떻게 하면 관용의 타락한 사용법을 뿌리칠 수 있을까이번 사건에 대한 한국 좌파 논객들의 편향적 자세에 대한 나의 생각을 피력한 글이며, 그것들은 마지막 문단에서 가서야 '장정일의 독서일기'라는 연재의 알리바이를 충족시키기 위해 언급된관용과 아무런 연관성 없이 씌어 졌다. 웬디 브라운의 여러 논지 가운데 이번에 내가 선택한 것은  관용이 다문화제국의 새로운 통치전략이 라는 사항이었으며, 그 주장을 널리 퍼뜨리고자 했다(그런데 메일을 통해 역자의 오해를 풀었다고는 하지만, 내가 '부탁'하지 않았기 때문인지, 무신경한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역자분은 내가 메일로 그의 오해를 풀어주려고 했던 진짜 '목적'은  헤아리지 못하나보다. 내가 모종의 부탁을 하지 않은 이유는, 이건 내가 그에게 '빚질' 사항이 아니라, 역자 스스로 알아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모종'이 뜻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이 글 끝에 나온다).     
  두 번째 글을 쓰고 나서나는 이슬람국가IS에 대한 또 다른 글을 쓰기 위해 이런 저런 책을 모아 읽기 시작했다그러던 3월 2(월요일저녁 <한겨레신문으로부터 슬라보예 지젝의 신간신을 불쾌하게 만드는 생각들(글항아리,2015)에 대한 서평을 써달라는 청탁을 받았다아직 책이 서점에 배포되기 전이어서이튿날 오후 2시 30출판사가 퀵서비스로 보낸 책을 받았다워낙 손바닥만한 크기의 책인데다가역자의 말을 뺀 80여 쪽의 책은 읽는 데 두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그렇게 빨리 읽었던 데에는 지젝이 이슬람 근본주의에 대해 어떻게 접근할지 짐작이 되었던 데다가설날 이후로 이슬람에 관한 책을 꽤 읽었기 때문에 지젝이 이슬람 역사나 정치에 대해 하는 말은 오히려 이의 제기할 대목이 보일 만큼 쉬웠다이 글의 마감은 목요일 오후 2시까지였는데나는 수요일 아침 10시쯤에 원고를 보냈다(이렇게 빨리 쓰게 된 데에는 얇은 분량과 선행 학습도 큰 역할을 했지만, <한겨레>가 청탁한 원고 분량이 15매였다는 이유가 더 크다나는 2011년 신년호부터 지금까지 4년 넘게 격주로시사IN에 독후감을 연재하고 있는데그 분량이 15매다그래서 매번 아홉 문단으로 써온 그 리듬을 고치지 않고 탈 수 있었다). 전문을 소개한다
    
  샤를리 에브도테러 사건을 일으킨 쿠아시 형제와 그들의 순교를 지지하는 무슬림은 풍자 화가들의 예의 없고 저속하며 지나친 조롱이 문제 가운데 하나였다고 말한다이런 주장에 동조하는 사람들도 꽤 있지만저런 주장은 이슬람의 할리우드 액션으로 기각해야만 옳다이를 테면 우리는 누군가와 논전을 벌일 때 인신공격은 삼가 해 줘대신 진정한 비판이라면 받아들이겠어라고 당부하고는 하지만진실은 그 반대다인신공격이나 퍼부어 대는 작자는 마음속으로 경멸할 수 있으나 정곡을 찌르는 비판은 견디기 힘들다.

  무슬림은 이슬람에 대한 조롱을 참을 수 없었다고 말하지만조롱이 아니라 예의와 진지함을 갖춘 학구적인 비판이었다고 해보자그런 글이 이슬람에게 수용될 수 있었겠으며그 글을 쓴 학자는 과연 테러를 피할 수 있었을까학자의 명망이 높으면 높을수록 그는 더더욱 테러를 면하지 못할 뿐 아니라진지한 비판은 오히려 그저 웃고 넘길 수 있는 조롱과 달리 이슬람에게 그를 벌하지 않으면 안 될 정당성과 필연성마저 부여해 준다쿠아시 형제에게 살해당한샤를리 에브도의 희생자들을 향해 인과응보라는 막말을 쏟아내는 좌파 지식인들 가운데 상당수는 아마도 그 학자의 죽음에 대해서도 이슬람과 같은 입장이거나 더 가혹하게 학자를 비난하고 나설 것이다.  

  슬라보예 지젝의신을 불쾌하게 만드는 사람들(글항아리,2015)샤를리 에브도테러 사건에 대한 지젝의 긴급 발언이다이 책에서 지젝은 샤를리 에브도에서 벌어진 살인을 분명하게 정죄해야 한다은밀하게 경고하듯이 정죄해서도 안 된다라며이번 사건에 대해 도착적인 논변을 편 좌파 지식인들과 본인 사이에 분명한 선을 긋는다그러면서 좌파 지식인들의 판에 박은 레퍼토리를 하나씩 공박한다.

  맥락을 고려하자는 사람들은 말한다샤를리 에브도를 공격한 형제들은 미국이 이라크에 주둔한 것이 너무 끔찍해서 놀랐다고 한다.(맞다하지만 그 형제들은 프랑스 풍자 잡지 대신 미군의 군사시설을 공격할 수 있었다왜 그렇게 하지 않았나?) 이슬람인은 사실상 서구에서 가장 착취당하고 대접받지 못한 소수라고 한다.(맞다그러나 아프리카계 흑인은 훨씬 더 심하다그러나 그들은 살인을 하거나 폭탄을 던지지 않는다.)”

  방금 본 것처럼 지젝은 맥락을 고려하자는 사람들곧 쿠아시 형제에게 온정적인 좌파 지식인들에 대한 공박을 모두 괄호 처리 했다괄호는 종종 이런 것까지 가르쳐 줘야해?’라는 가외의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형식이기도 하다혹시 이 글을 읽는 분들 가운데 맥락 좋아하시는 독자가 계시다면괄호를 하나 더 보내 드린다. “(주문을 외우듯이 하는 말이 있지 않은가우리 서구인은 제3세계 사람들을 대량 학살한 살인자인데어떻게 샤를리 에브도 테러를 정죄할 수 있는가?)”

  지젝은 긴급 발언을 통해 자유주의 좌파는 이번 테러 사건을 바로 해석하지도이슬람근본주의를 해결하지도 못할 것이라고 못박는다좌파는 서구 제국주의자들이 중동에서 저지른 모든 잘못을 나의 십자가로 짊어지기로 한 사람들이며그들의 죄책감은 이슬람에 대한 밑 모를 관용으로 표출된다죄책감에 기초하고 있는 관용은 마치 초자아 앞에 우리 존재가 한없이 작아지듯이 이슬람 앞에 항상 수세적인 양보를 거듭하게 된다결국 네가 이슬람교도에 대해 관용할수록 이슬람교도는 너를 더 강하게 압박할 것이다.”

  죄책감에서 생겨난 관용은 현실도 정의도 왜곡시킨다가해자였던 독일을 비롯한 유럽의 여러 국가들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가 유대인을 절멸수용소에 보내는 것을 막지 못하고 방관했다는 죄책감으로 지금껏 중동에서 이스라엘이 저지르는 온갖 악행에 눈과 귀를 막고 있다이들의 이스라엘에 대한 죄책감이 잘못된 속죄의식이라면샤를리 에브도 테러 사건에 대한 좌파의 어물쩍한 태도 역시 잘못된 속죄의식이다

  신을 불쾌하게 만드는 사람들의 전반부는 이슬람근본주의 테러집단은 악마가 아니라 서구 근대화가 부러운 열등생이라고 말한다이들은 칼리프 시대를 회복해야 한다면서 실제로는 근대화를 추종한다는 점에서 나치가 등극하기 직전에 창궐한 보수 혁명 운동과 닮았다후반부는 이슬람근본주의의 발생 원인을 서구 제국주의나 세계화 또는 서구의 반이슬람주의 같은 외부 요인에서 찾는 이들과 달리이슬람의 기원에서 찾고자 한다스탈린주의를 공산주의의 오점으로 보지 않고 스탈린주의로부터 평등을 급진화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고자 했던 지젝은 여기서도 똑같은 마술을 반복한다즉 이슬람 최대의 약점이자 이슬람근본주의자들 손에 더욱 악화된 여성 학대가 실은 이슬람의 부정성을 덮으려는 안쓰러운 증상이며이슬람 현대화는 애초에 무함마드를 계도하기도 했던 이슬람 여성의 주체화로부터 시작될 것이라는 약간 김빠진 암시가 그렇다지젝의 말버릇을 흉내 내자면, ‘이것만으로는 테러를 당하기에 충분하지 않다!’

  진정한 관용은 서로를 자기 책임의식을 지닌 어른으로 대우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911은 이슬람이 서구를 향해 우리를 성인 취급 해달라!’는 통첩이었으나 서구는 그것을 묵살했다그런데 이 책에 나오는 어떤 일화는 서구 제국주의 탓이 아니라이슬람 내부에 어른이 되기 어려운 장애가 있다는 의심을 품게 한다. “강간 같은 행위에 대해 전적으로 여자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확정하고 있는 이슬람 율법에 따르면강간을 당한 소녀는 체형에 처하고 기혼녀는 간음죄로 사형된다까닭은 남자가 여자를 강간할 때그는 이미 그렇게 행동하도록 유혹받았거나 자극되었기 때문이다자극을 주면 본능이 반응한다는 이 구조와 풍자에 자극 받아 총질을 해대는 무슬림 청년의 테러 행위는 얼마나 흡사한가강간은 남자의 죄가 아니라 자극받은 본능의 어쩔 수 없는 자동 반응이라고 배우며 자라난 무슬림 남성의 자기 합리화 속에 자기 책임의식이 배양될 리 만무하다. “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보는 자는 누구나 이미 마음으로 그 여자와 간음한 것이라는 예수의 말에 따르면본능 이전에 자기 점검이 가능한 만큼 책임의 주체도 그만큼 뚜렷한데 말이다.
    
 
  잠시 나왔지만신을 불쾌하게 만드는 사람들의 전반부는 이 책의 원제인 이슬람과 모더니티에 대한 지젝의 해석이고후반부는 이슬람에 대한 지젝의 내재적인 비판이 시도되고 있다하지만 보시다시피 이번 서평에서는 지젝이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는 자유주의 좌파들의 이슬람에 대한 온정주의적 태도(관용)’에 초점을 맞추었다이 책에 대한 좀 더 자세한 맥락과 비판은 애초에 내가 준비하고 있던 이슬람국가에 대한 원고에 들어갈 것이다
  신을 불쾌하게 만드는 사람들에 대한 나의 서평을 보고대한민국에서 지젝에 대한 유권해석을 위임받은 듯 자임하는 이택광이 아무 말이 없을 리 없다그리고 그 언급은 100% 내가 예상한 대로 나왔다
    
  장정일 선생이 지젝 신간에 대해 한겨레에 서평을 쓴 것 같은데책 내용을 반대로 소개하고 있어서 좀 재미있다지젝이 본문에서 비판하는 '자유주의 좌파'가 바로 장정일 선생 같은 관점을 취하는 이들이다.
    
  이택광은 내가 자유주의 좌파의 관점을 가졌으며 지젝이 본문에서 비판하는” 사람이 나와 같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이택광은 아직 내가 무슨 관점에 서 있는지 모르나보다(세 편의 글을 보면, 너무나 명확한데!).  이택광의 트윗을 보면 신을 불쾌하게 만드는 사람들을 읽긴 한 모양인데저렇게 말하는 것을 보면 아직 이택광은 지젝이 무슨 이유로 자유주의 좌파를 비난하는지조차 파악하지 못했나보다.
  트윗을 하는 사람들은 트윗은 단지 사신私信일 뿐이라고도 하고, ‘트윗은 소통이라고도 말한다이렇게 말하는 작자들은 반드시 오함마로 아가리를 깨부수어야 한다.’ 먼저 트윗은 그 기술 속에 리트윗 기능이 탑재 되어 있는 만큼절대 사신일 수 없다트윗을 하는 사람이 은연중에 무한 트윗을 의식하고 있는 바에야 그것이 사신일 리 있는가.
  또 트윗은 일방적인데다가 타인을 비방하거나 조롱하는 데나 주로 사용되지결코 소통이 아니다비방과 조롱도 소통이 되고자 한다면자신이 잘못했거나 실수했을 때 트윗을 통해 정정을 해야하는데 절대 그런 일은 없다자신의 잘못이나 실수가 밝혀지면 그저 잠수를 할 뿐이다그러는 사이에 장정일 선생이 지젝 신간에 대해 한겨레에 서평을 쓴 것 같은데책 내용을 반대로 소개하고 있어서 좀 재미있다.”(이게 내가 예상한 것)는 원래의 비방과 조롱은 계속 인터넷에 나돌아 다닌다.
  이택광은 내가 어떤 대목에서 신을 불쾌하게 만드는 사람들을 반대로 소개하고 있는지트윗처럼 일방적인 방법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제대로  지적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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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번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제가 쓸 수 있는 SNS 수단이 없기도 하거니와, 그런 수단을 거부하는지라 고클을 이용합니다. 아무쪼록 널리 퍼뜨려 주십시오.

  *이택광씨가 지면을 얻어 반론을 한다는 소식이 있어, 제목과 본문 일부를 수정합니다.

150307 여성영화 스페셜 + 잡담

*


2주 전에 쓰다 만 포스팅, 정리해서 올리려다가 귀찮아서 그냥 업로드.

저녁을 안 먹고 운동을 갔다가, 피곤해서 잠들었는데 이 시간에 배가 고파서 깼다.

이제 배는 채웠으나 어떻게 다시 잠들 것인가...ㅠ


*

150221


트위터는 일주일 넘게 페미니즘으로 시끌시끌하다. 속 시끄러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런 것들을 들여다보고 있다.





"What if I forgave myself? I thought. What if I forgave myself even though I'd done something I shouldn't have? What if I was a liar and a cheat and there was no excuse for what I'd done other than because it was what I wanted and needed to do? What if I was sorry, but if I could go back in time I wouldn't do anything differently than I had done? What if I'd actually wanted to fuck every one of those men? What if heroin taught me something? What if yes was the right answer instead of no? What if what made me do all those things everyone thought I shouldn't have done was what also had got me here? What if I was never redeemed? What if I already was?"


사과하지 않는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도희야]와도 연결되고



Pretty blonde인 줄만 알았던 위더스푼은 이렇게나 훌륭한 사람이었다.


“I’ve sat through millions of development meetings where people are like: ‘We don’t want Reese to say profanity. We don’t want her to have sex. We don’t want her to take drugs,’ ” Ms. Witherspoon said. “I didn’t really feel the constraints of it until about three years ago, where I realized, ‘I’m not this.’ I’m a complex person that has so many different aspects in my personality. But somehow, I have this reductive experience where I’m put into this tiny little box.”

And what box would that be?

“Likable,” Ms. Witherspoon said with a hint of disdain. “Can we scrub the likable box? And what is likable? To me, likable is human, and real, and honest. To me, I find the character in ‘Wild’ much more likable than a lot of characters I’ve played in comedy. She’s telling the truth. She’s not ashamed of the sexual experiences she’s had. She’s not ashamed of her drug use.”

뉴욕타임스 인터뷰


위더스푼은 스스로 제작사 Pacific Standard를 차려서 [Gone Girl]을 제작하기도 했다.


다르덴 형제의 [내일을 위한 시간]이나



여자들의 우정을 그린 [프란시스 하]도 생각난다.


[프란시스 하]와 버지니아 울프의 이 문장들을 연결시킬 수도 있겠다.


"All these relationships between women, I thought, rapidly recalling the splendid gallery of fictitious women, are too simple. [...] And I tried to remember any case in the course of my reading where two women are represented as friends. [...] They are now and then mothers and daughters. But almost without exception they are shown in their relation to men. It was strange to think that all the great women of fiction were, until Jane Austen's day, not only seen by the other sex, but seen only in relation to the other sex. And how small a part of a woman’s life is that [...]"

A Room of One's Own, Virginia Woolf


이 문장은 벡델 테스트 위키에서 가져온 것.

http://en.wikipedia.org/wiki/Bechdel_test


벡델 테스트란




작년에 [블루 재스민]으로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케이트 블란쳇의 수상소감도 떠오른다.



"And thank you to... those of us in the industry who are still foolishly clinging to the idea that female films, with women at the center, are niche experiences. They are not -- audiences want to see them and, in fact, they earn money. The world is round, people."






기억해보면 내가 좋아했던 수많은 영화들이 여성을 주인공으로 했다.

여성이 '좋게' 나와야 "성정치적으로 올바른" 영화가 아니다.

남성 중심의 서사에서는 여성들은 보조적 역할만을 수행하고, 일차원적인 캐릭터로만 그려진다.

여성을 서사적 도구로 쓰는 것이 아니라 복잡다단한 인간으로 그리는 영화가 좋다. 


[블루 재스민]이나 [블랙 스완]처럼 신경과민의 여성을 그리거나

[래빗홀]처럼 아이를 잃은 엄마를 그리거나



빼놓을 수 없는 [주드]


그리고 [디 아워스]



찾다보니 끝도 없이 나오네.


+

150307 추가


또 올해 아카데미상에서 패트리샤 아퀘트의 수상소감도 화제였다.

뜬금없다는 반응도 있었는데, 듣기로는 [아메리칸 허슬]에서 제니퍼 로런스가 다른 남성 배우들보다 낮은 개런티를 받았다는 내용의 이메일이 어떤 해킹 사건으로 공개된 일이 있어서였다고도 한다. (이런 건 확인해봐야 하지만 넘 귀찮아...)

그리고 뭐, 뜬금없은들 어떠리. 일생에 한번 올까 말까 한 아카데미상 수상 소감을 말할 기회에서 환경 보호 단체와 성평등을 이야기한 아퀘트 언니가 멋지면 그만이다. 아카데미상 무대에서 돋보기 뿔테안경을 당당히 쓴 여배우는 앞으로도 후로도 드물겠지.


이 포스팅을 올리기가 주저되었던 또다른 이유는 어쩜 이렇게 모두 백인 여성들인가... 싶어서이기도 했다.

이번 시상식에서 닐 패트릭 해리스가 말한 대로, 'the best and the whitest'인 것 같아서... ㅎㅎ

한국에서도 멋진 언니들을 많이 보고 싶다.

멋진 남성이 드문 이유와는 다른 이유로 멋진 언니들은 드물기에...


덧붙여 이 이슈에 곁들여 읽은 책 중에는

최근에 출간된 스테파니 스탈 [빨래하는 페미니즘]이 좋았다.
원제는 Reading Women인데 한국어판 제목이 훨씬 위트 있지 않은가?
이런 제목 센스를 배워야 해...

1990년대 바너드 여대에서 수학한 중국인 혼혈 미국인 여성의 페미니즘 고전 에세이. 지리적 요약을 하자면 뼛속부터 뉴요커인 여성이 1990년대 바너드 여대에서 미국의 90년대식 페미니즘의 수혜를 받고 졸업해 뉴욕 잡지사에서 일하는 커리어 우먼이 되었다가 아이를 낳고 뉴욕을 떠나 교외의 저택으로 이주했다가 브루클린으로 돌아온다는 이야기. 중국계 미국인이자 성공한 과학자였던 어머니와, 역시 교수였던 아버지 사이에서 자랐다. 가정보다도 일을 백배는 중요히 여겼던 어머니에게서 자란 여성답게 딸에 대한 부채의식과 자신에 대한 부채의식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이 관전 포인트.

그리고 요가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느라, 좋은 요가 에세이를 찾고 있는데 참 드물다.
(혹시나 요가에 대한 좋은 에세이가 있으면 누가 추천 좀... 요가라는 검색어로는 실용서 혹은 지나치게 명상적인 구루들의 책밖에 찾을 수 없어서 참으로 아쉽다. 지금 내 타이밍은 그냥 요가를 열심히 하는 현대 도시인의 에세이가 절실한데...)

[포저]라는 책을 들춰보고 있는데, 신변잡기적인 이야기가 너무 많다.
육아에 지친 한 여성이 요가의 여러 포즈들과 엮어서 쓴 에세이인데, 뭐 널리 추천하긴 어렵지만 번역된 책 중에는 마땅한 게 없는 것 같아서 보고는 있다. 참고 보다보면 혹시나 재밌을까 해서... 그렇다고는 해도 이 책에서도 역시 시애틀의 극성 엄마들 사이에서 힘겹게도 이성적인(=먹물스러운) 균형을 붙잡고 살아가려는 글쓴이의 힘겨움이 느껴저서 스테파니 스탈과 비슷한 느낌이 있다. 글은 훨씬 못하지만... 여튼 이래저래서 2월은 여성의 주간으로 보냈다.

올 상반기에 작업할 책 중 여성주의에 관한 책이 있어서 내심 기대하고 있었는데, 교정은 전부 외주로 돌리게 돼서 아쉽다.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번역가 선생님이랑 작업하게 되었고, 또다른 이유로 매달 뵙게 되어서 기쁠 뿐. 단 한번 뵌 사이에 지난 연말에 이렇게 예쁜 연하장을 보내주기도 하셨다. 아이 상냥해.


트위터나 블로그를 보고 항상 좋아하던 분이었는데, 같이 일하게 돼서 얼마나 기쁜지. 메일 쓸 때도 항상 한마디라도 덧붙이게 된다. 이렇게 좋은 사람들이랑만 일하면 바랄 게 없을 텐데... 사람도 좋고, 식견도 높고, 사려깊을 뿐만 아니라 회의 자료를 만들어주셨는데 너무나 명확하고 깔끔하고, 딱딱하지 않고 위트 있으면서도 알찬! 자료여서 감동받았다. 엉엉...


에라이 이렇게 좋은 사람 얘기를 쓰다가 오늘 폭탄 맞은 거 생각하니 더 열받는다. 
기왕 이렇게 된 김에 일기도 쓰자면

설 전부터 계속 야근+특근 모드, 이번 주는 화수목금을 야근했네...
오늘은 저자 폭탄이 터져서, 마감 일주일 전에 제목이 바뀌는 거지 같은 상황을 경험했다.

아아, 찌질하고 짠하다. 그동안은 어쨌든 너무 욕하면 정도 떨어지고, 열심히 일하기 싫을 것 같아서

그나마 욕은 최소한으로 하고 그래도 내 저자(내 소유라는 의미가 아니라, 내가 같이 일해야 하는 저자라는 의미에서)니까

너무 미워하지 말자, 미워하면 내가 힘들어진다...라고 생각하고 지냈는데.

자기 이름 걸고 나가는 것에 대한 최소한도의 일도 하지 않으면서 지랄만 열심히 하더라. 

자, 여러분?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있으면, 명확하고 정중하게 최대한 빨리 말하고,

그때 자신이 말 못하고 지나갔으면 니 잘못이니까 닥치고 있읍시다.


여튼 비아냥비아냥대면서 나한테 화를 내는데, 정말 당황스러웠다.

이럴 때 너무 당황하지 않는 멘탈을 키워야 하는데... 에휴

마음에 안 들면 화를 내지 말고, 마음에 안 드니 '바꿉시다'라고 명확히 말하든지

아아 말 길게 하지 말아야겠다.

이번 주는 여러모로 마음을 차분하게 갖기 어려운 한주였다.
이런 책의 후속작을 해야 한다니 깜깜하다...

그래도 지지 않고, 적당히 타협해주고 내가 원하는 마지노선을 지켜냈다.
그런 점에서 스스로에게 플러스 점수를 주기로 하자. 개망신은 아니었으니...

*

이렇게 야근특근을 일삼는 상황에서도 (설 연휴에도 이틀이나 일했다네)

지난주 주5회 요가 출석, (내일 아침 10시 수업을 가는 데 성공한다면) 이번 주 주5회 출석 성공이다.
태어나서 참말로 일주일 이상 같은 운동을 지속한 것은 처음인지라, 얼떨떨하고 놀랍고 좋다.
나는 헬스장에 등록해서 등록일, 그 다음 날, 그 다음다음 날을 연속으로 출석한 후 다시는 돌아가지 않았던 사람이니까...

그야말로 작심삼일의 대가.


같은 요가 학원에 2년 전에 등록하고도 일주일에 한번을 못 가서 결국 포기했던 내가
어째서 이렇게 요가를 열심히 하게 된 것인가는 미스터리하지만,
열심히 즐겁게 (그리고 악착같이!) 운동을 하기에 이런 업무과중의 거지 같은 상황을 견딜 수가 있는 듯하다.

일주일에 3일 이상 요가를 다닌 지가 이제 두달 반인데,
체력이 좋아졌다거나 살이 빠졌다거나 하는 효과는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지만
뭐 일단 기분이 좋다. 헷.

근데 너무 열심히 해서 사람을 만나는 것보다 요가를 더 하고 싶다는 게 함정;

허허허 언제까지 이렇게 버닝 모드일 것인가.


요즘 요가 열심히 한다고 떠들고 다니는 것도 뭔가 징크스처럼 작용할까봐

그렇게 많이 떠들고 다니지는 않는다.

(입만 열면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 비해서 자주 안 떠든다는 말...

이미 내 주위 사람들은 내 요가 자랑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다.)


여튼 내가 지금 빨리 자고 싶은 것도 내일 아침 10시 수업을 가기 위한 것!

그만 떠들고 잡시다.



150221 요가 동영상


요가에 미친 여자답게 요즘은 심심하면 유튜브에서 요가 동영상을 찾아봄. ㅋㅋ

실용성 강좌 말고 아름답고 우아한 것으로다가...


제일 유명한 건 이 equinox 영상.




이 영상은 여자가 너무 예쁘고 우아해서 패러디 영상까지 등장했다.



내가 요가하는 모습은 이 남자와 비슷...하지도 않고 심지어 더 못함 ㅋㅋㅋ

이 남자는 살이 많고 유연하지가 않아서 그렇지 잘하심...


equinox 영상이 우아한 쪽이었다면 멋있는 영상은 이쪽.

언니 멋쪄여...




이 메건 커리라는 사람은 유튜브에서 꽤나 유명한 모양이다.



이거 말고도 paddle yoga, acrobatic yoga, couple yoga 등 유튜브의 세계는 무궁무진하도다...


집에서 따라하는 용도로는

https://www.youtube.com/user/lesleyfightmaster

이걸 보고 있는데 생각보다 고난이도 동작들이 많아서 중간에 자연스레 많이 쉬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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