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140314 카포티. 노예 12년

담음 2014. 3. 14. 16:23

아아 일이 더뎌서 큰일났다. 


번역문을 다루는 일은 은근히 재미가 있다. 유유에서 나온 <번역자를 위한 우리말 공부>는 정말 도움이 되는데, 저자의 말투가 너무 나를 혼내는 거 같아서 마음이 뜨끔뜨끔하다.


미문, 아니 최소한 정리된 문장을 쓰려는 노력을 평소에도 해야겠다. 머리에서 나오는 대로 단어를 받아쓰지 말고...


이 책은 심지어 보도자료도 위트와 리듬감이 있다. 


"참나무에 대해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떡갈인지 신갈인지 갈참인지 졸참인지 굴참인지 상수리인지 구별할 수 있다. ‘발효된다’는 통칭 표현 대신 젓갈이 ‘삭으면’, 김치가 ‘익으면’, 메주가 ‘뜨면’처럼 맥락에 맞게 섬세하게 표현하면 더 근사할 것이다. 한국 사람이라면 명태를 가리키는 여러 용어를 안다. 새끼 명태를 노가리라 부르고, 얼린 것을 동태라 하고, 바싹 말린 것을 북어라 하며, 얼렸다 녹였다를 반복한 것을 황태라 부른다. 코다리는 꾸덕꾸덕할 정도로만 말린 명태다. 섬세한 한국어 표현을 익히지 못한 외국인은 ‘말린 명태’, ‘얼린 명태’처럼 표현할 텐데, 이 표현을 잘 아는 한국 사람은 그들에게 제대로 알려 주고 싶은 마음이 들 것이다. 통칭하는 표현은 편리하지만 원뜻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데는 한계를 지닌다."


크흐.


이번 주에는 <노예 12년>과 <카포티>를 봤다.


<노예 12년>은 정확히 제목에서 예상할 수 있는 만큼의 영화였고, 아무것도 새롭거나 놀랍지 않았다. 이런 영화가 그렇게 많은 상을 탔다는 건 슬픈 일이다. 'White guilt'라는 해석이 가장 정확하겠지. 한스 짐머의 음악조차 작위적이고 상투적이었다. 브래드 피트는 '착한 캐나다인'으로 나오는데, 정말 21세기에서 갑툭튀한 것 같은 얼굴과 말투여서 우스웠다(그래도 난 피트를 좋아하지). 아~ 시간 아깝다. 때로는 나쁜 영화보다도 평범한 영화가 더 나쁘다. 


<카포티>는 호프먼의 말을 알아듣기가 너무 힘들었지만, 좋았다. 더이상 그의 영화를 볼 수 없다는 것에 새삼 애도를. 하퍼 리로 분한 캐서린 키너는 정말 우아했다. 


*


지난 주에 공항에 가는 길에 또 황당한 일이 있었다. 


반차를 내고 C를 맞으러 공항에 갔다. 약간은 두려움에 늑장을 부리는 바람에 성급하게 일을 마치고 나와야 했다. 아니나 다를까 조판자 선배한테 파일이 안 열린다는 연락. 멀쩡하게 열리던 파일이 거기서 왜 안 열리는지 알 방도가 없었다.


버스를 한참이나 기다려 타고, 달뜨고 긴장된 마음으로 창밖을 구경하며 가고 있는데, 반대로 와버렸다. 인천공항에서 북쪽으로 멀찍이나 떨어진 신도시 한복판에 떨어진 나는 4% 남은 휴대폰 배터리를 들고 발을 동동대다가, 이번에도 공항에 늦으면 가만 안 두겠다는 으름장을 여러번 들었으니 아무 버스나 잡아타고 콜 택시를 불러야 했다(아, 내 돈!). 아아. 파주의 신도시들은 정말 광활해서 걸어다니기도 너무 안 좋고, (어떤 사람들은 넓어서 걷기 좋다고 하겠지만) 날씨는 싸늘했고 나는 배터리가 간당간당한 상태에서 북쪽 신도시를 헤매야 했고! 


공항에 가는 길엔 항상 이런 일이 생긴다. 

예를 들어 틀린 공항에 간다든가... 



*


일이 너무 더뎌! (아, 자꾸 딴 짓을 해서 그런가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