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140322 3월의 요리

담음 2014. 3. 22.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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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아침엔 대개 힘이 넘쳐서 열심히 먹을 것을 만든다. 한번 해보고 성공해서 여러번 해먹은 시금치 계란 오믈렛(이라고 레시피에 이름이 써 있었지만 엄밀히 오믈렛은 아닌 셈). 그냥 마늘을 조금 넣고 익힌 것 뿐인데 익힌 시금치가 이렇게 맛있는 것인 줄이야! 


단점은 시금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만 한 봉지를 사서 주중에 국수를 몇번 해먹고 주말에 이걸 한번 해먹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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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보고 볼로네즈소스를 만들었다.


그대로 만들자면 밤새 끓이면서 맛을 내야 하지만, 그럴 것까지 없고 대충 조금 끓이다 말았다.

특이한 점이라면 화이트와인과 우유가 들어간다. 

3개월 전에 따서 한잔 마시고 잊혀진 편의점산 화이트와인을 구제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화이트와인을 넣으니 고기 잡내가 없어져서 매우 좋다.

우유의 역할은 잘 모르겠으나(토마토소스에 우유를 넣는다니 이게 무슨 해괴망칙한 소리?)

맛이 더 풍부해지겠지 아마도...


나는 이걸 만들고 C는 옆에서 바나나머핀을 만들었는데,

집에 머핀 틀이 없고 마들렌 비슷하게 생긴 조개모양 틀밖에 없어서 shell-fin이 되고 말았다.

기름이 과하게 들어가서 맛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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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가 좋아하는 라자냐를 만들었다. 나는 토마토소스, C는 베사멜소스를 만들었다. C는 라자냐라면 거의 달인이다. 나는 저번에 만든 볼로네제소스 레시피를 재탕했다. C는 자기가 만든 라자냐 중에 제일 맛있다며 감탄했지만 나는 좀 느끼했다. 토마토소스를 더 많이 넣고 치즈도 더 많이(최소한 세종류) 넣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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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엔 죽어가는 감자들(어째서 감자가 폭신폭신한 거지?)과 싱크대 옆에서 음식물 쓰레기가 되어가던 당근을 구제해 감자스프를 만들었다. 대충 감으로 만들었는데 맛있어서 성공. 다만 좀 짜다. 어쩌다보니 버터를 무지하게 많이 넣어버렸는데 거기에 소금이 들어 있다는 생각은 못하고 소금을 더 추가한 것이 패착. -.-




이렇게 만들었다:


1. 감자와 당근을 깍둑 썬다. 양파도 다진다. 버터에 다진 마늘을 볶아 향을 내고 나머지 재료를 다 넣고 잠시 볶는다. 귀찮으니까 한눈 팔다가 조금 태운다. 

2. 유통기한이 9개월 지난 치킨스톡 큐브를 넣고 스톡을 만들어서 양껏 붓는다. 너무 물을 많이 넣었기 때문에 한참 끓이면서 재료도 익힌다. 

3. 치킨스톡을 넣기 전에 밀가루를 넣어서 볶았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스스로를 욕하며 다른 팬에 따로 베사멜소스를 만든다. 이 과정에서 버터가 과다하게 첨가되었다. 

4. 베사멜소스 버터:밀가루 비율을 기억하지 못해서 밀가루를 넣었더니 크럼블 조각처럼 되었다. 묽어질 때까지 버터를 첨가한다. 대충 볶다가 밀가루를 조금 태운다. 우유를 넣어서 수습한다.

5. 대충 그럴듯해보이는 소스를 한참 졸아든 야채+스톡에 붓는다.

6. 그전에 야채+스톡을 믹서에 가는 게 낫지 않았겠느냐는 생각이 나지만 이미 늦었다.

7. 이미 끈적해질 대로 끈적해진 혼합물을 믹서에 넣고 간다. 뜨거운 걸 넣었더니 믹서 통이 팽창해서 뚜껑이 안 열린다. 

8. 우여곡절을 거쳐서 대충 야채 조각들을 갈고, 다시 냄비에 붓는다. 너무 되다. 우유를 첨가하려 하지만 우유가 다 떨어졌다.

9. 포기하고 후추와 소금으로 간하고 튀긴 베이컨과 파슬리를 올려서 그냥 먹는다.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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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서 커피를 만들어두고 눈곱도 안 떼고 스프를 만들다보니 커피가 다 식어버렸다. 과연 전자레인지에 커피를 돌려도 될 것인가 고민하다가 드디어 돌려봤다. (여태 여러번 고민함) 성공적으로 커피가 데워졌고 참고로 전자레인지가 영양분을 파괴하네 어쩌네네 하는 것은 다 괴담이라고 한다. 자취를 시작하고 전자레인지에 대한 막연한 저항감으로 전자레인지를 집에 들이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작년에 이사를 하면서 엄마가 매직오븐을 구매하겠다고 해 본가의 전자레인지를 업어왔다. 10년 묵은 전자레인지지만 좋은 제품이라 쌩쌩하게 돌아가고 옆에 간이 토스트기까지 달려 있다. 단점은 매우 크다는 것.


전자레인지가 있으면 냉동식품만 먹게 될 것이라는 나의 망상과 달리 전자레인지는 나의 식생활을 더 나은 쪽으로 변화시켰다. 밥솥에 48시간 보온되어 누런 색으로 변하고 쩔은 내가 나는 밥 대신 냉동실에 얼려둔 밥을 전자레인지에 돌려 따뜻하고 폭신한 밥을 먹을 수 있게 되었고, 이제는 식은 커피도 버리지 않고 데워 먹을 수 있다. 사람들은 새로운 기술이 예전의 정서를 잃게 할까 두려워하지만, 각각 다른 시간에 식탁에 앉는 제멋대로인 아이를 둔 주부가 매번 가스불을 켜서 반찬을 데우지 않아도 된다거나 요리에 많은 시간을 투자할 여력도 이유도 없는 사람들이 간편하게 맛있는 식사를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은 간과한다. 직접 노동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노동을 낭만화하는 것이다. 


비 윌슨에 의하면 근대 이전에는 되도록이면 가공을 많이 한 요리가 고급요리로 여겨졌다고 한다. 'refined'라는 단어는 요즘 '부유하다' '세련되다'라는 의미로 쓰이지만 원래는 음식을 가공한 정도를 가리켰다고 한다. 중세의 주방에서는 하인 여러명이 재료를 찧고 빻고 치댔다. 손님들은 '부인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손이 많이 간 음식을 대접받을 때 주인의 경제적 계급적 지위를 짐작할 수 있었다. 오랜 시간 동안 노동력을 줄여주는 부엌 기술의 발전이 정체된 것은 음식문화가 하인을 부릴 수 있는 귀족들에 의해 주도되었기 때문이다. 갑자기 이 얘기를 왜 했지? 


어쨌든 아래는 <포크를 생각하다>에서 전자레인지 관련 부분:


"요리 자체의 발명을 제외하고, 부엌 기술 분야에서 등장한 최고의 발전은 가스불이었다. 가스불은 불 관리에 수반되는 오염, 불편, 시간 낭비로부터 많은 사람들을 해방시켰다. 거기에서 한발 더 나아간 것이 전자레인지다. 세계 각지의 비좁은 도시 부엌에서는 전자레인지가 주된 열원으로 쓰인다. 요리사들도 전자레인지를 많이 쓴다. 그래도 전자레인지를 둘러싼 논란은 여전하고, 우리는 한때 불꽃에 품었던 애정을 전자레인지에는 좀처럼 품지 못한다. 


전자레인지는 많은 일을 훌륭하게 해내면서도 공을 인정받지 못할 때가 많다. 전자레인지는 생선을 촉촉하게 익혀주고, 옛날식 찜 푸딩을 몇분 만에 만든다. 전자레인지의 재주를 빌리면 부엌을 최대한 적게 어지르면서 설탕을 캐러멜화할 수 있고, ... 완벽하게 포슬포슬한 바스마티 쌀밥도 뚝딱 지어낸다. 


그러나 전자레인지는 즐거움 못지않게 공포를 일으킨다. 전자레인지가 1950년대에 처음 시판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이 '불 없는 오븐'에 당황했다. 요즘도 많은 사람들이 이 도구에 당황하고 걱정한다. 전자레인지는 1945년 레이시언 사에서 일하던 퍼시 스펜서가 발명했다. 스펜서는 당시 군사용 레이더를 연구하면서 마이크로파 생성에 쓰이는 진공관인 마그네트론을 개량하고 있었다. ...


요즘도 전자레인지 조리를 미심쩍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사람들은 오랫동안 건강 측면에서 전자레인지를 두려워했다. 최근 모델들이 1mW/cm2라는 지극히 깐깐한 복사선 노출 기준을 지키는 데에 비해 구형 모델은 종종 10mW/cm2 이상을 냈던 것이 사실이지만, 어느 경우든 우리가 불꽃에서 60센티미터쯤 떨어져 있을 때의 노출도(50mW/cm2)보다는 훨씬 더 낮다. 현재까지의 모든 증거로 보아 전자레인지는 건강에 무해하다. 전자레인지 조리는 다른 조리법과는 달리 불가해하게 느껴진다. 그것은 사실 공평하지 못한 편견이다. ...


전자레인지의 진정한 단점은 기구 자체가 아니라 사용방식이다. 전자레인지는 안타깝게도 전후 간편식의 시대에 시장에 등장했다. 1989년 영국 시장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전자레인지의 가장 흔한 용도는 조리가 아니라 '다시 데우기'였다. 대부분의 부엌에서 전자레인지는 요리의 한 형태가 아니라 요리를 회피하는 방법이다. 우리는 냉동식품을 전자레인지에 넣고서 삐 소리가 날 때까지 망연히 기다린다. 전자레인지는 온 가족이 같은 시각에 식탁에 둘러앉을 필요 없이 언제든 따뜻한 음식을 먹게끔 해주었다. 


이것은 우리가 유지해온 사회적 생활의 종말을 뜻할까? 역사학자 펠리페 페르난데스-아르메스토는 전자레인지가 해로운 방식으로 "사회를 바꿀 수 있다"고 본다. 전자레인지가 우리를 '사회성 발달 이전 단계'로 되돌릴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하기야 전자레인지를 보고 있자면 우리가 불을 발견한 일은 없었던 것만 같다. 인류는 역사 내내 불을 가두고 통제하려고 애썼다. 불은 사회적 생활의 구심점이었다. ... 우리가 불을 그리워하고 생활에서 불이 사라진 것을 아쉬워한다는 징후도 간간이 보인다. 아마추어 요리사들은 해가 났다 하면 잽싸게 바베큐 도구를 꺼내어 불꽃으로 소시지를 굽는다. 그 열정을 보노라면 정말 오늘날의 요리는 구심점을 잃었는지도 모르겠다. 전자레인지 앞에 둘러앉아 밤늦도록 도란도란 대화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전자레인지의 각진 유리몸통은 우리의 손도 마음도 덥히지 못한다. 그러나 모든 것이 깡그리 사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요리 과정은 설령 관습적인 옛 방식을 따르지 않더라도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기 마련이다. 전자레인지가 옛 화덕처럼 가정의 구심점이 될 수는 없다고 믿는 사람이 있다면, 아이들이 불가에 모인 수렵채집인처럼 전자레인지 앞에 옹그린 채 경이로운 표정으로 잠자코 팝콘이 튀겨지기를 기다리는 광경을 보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비 윌슨 / <포크를 생각하다>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