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140412 철부지

담음 2014. 4. 12. 19:03

4년 만에 들여다보는 문구. 


Skepticism is a resting place for human reason, where it can reflect upon its dogmatic wanderings, but it is no dwelling place for permanent settling. Simply to acquiesce in skepticism can never suffice to overcome the restlessness of reason. - Immanuel Ka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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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다른 삶을 산 사람의 일기를 볼 때 느껴지는 노스탤지어랄지, 어떤 블로그를 읽다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물론 자신의 나이보다 5년은 일찍 산 것 같은 그 사람만의 아우라가 있지만. 잘 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바라볼 수록 짠한 마음과 존경심이 동시에 드는 사람이다. 자신의 일에 성실한-그럴 수밖에 없는-사람이기도 한 반면 그에 수반되는 감정노동을 견딜 수 없는 성정에 한없이 고생할 수밖에 없기도 하다. 


한동안 맹목적인 사람이 가장 무섭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하나의 이념 혹은 이상에 푹 빠질 수 있는 사람이란 얼마나 대단한가를 생각하고 있다. 어떠한 이상을 실현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를 위해 투쟁한다는 것은 비웃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아무리 터무니없는 이상이어도. 교조주의를 벗어나지 못한 유년의 이성도 무섭지만 회의주의에 안주하는 이성(=나?)이 더 무섭다. 한번도 맹목적이어보지 않은 사람은 진화할 수 없으니까. 그러니까 살면서 한번은, 아니 한번 실패하고도 또다시 푹 빠지고, 그를 후회하고 회의하고 탓한 후에야 다시 믿을 수 있는 거니까. 어떤 이의 기억을 뒤쫓으면 저 사람이 보기에 나는 얼마나 철부지인가,하는 생각이 들면서 새삼 시간이 아득해진다. 어쨌든, 언제든지 반성하고 싶으면 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반성이라곤 모르는 건방진 나는 주기적으로 자기반성을 해야 하니까. 


존경해 마땅한 사람들과 치열해 마땅한 시간에 대한 존중을. 


시간이란 무시할 수 없는 것이지만 쉽사리 무화되는 것이기도 하다는 것을 요즘 만나는 여러 사람에게서 발견한다. 스무살의 사람들은 대개 비슷하다. 스물다섯의 사람들은 조금씩 다르다. 마흔의 사람은 정말 소수의 몇을 빼놓고는 다시 천편일률적이다. 다만 그 몇명은 아주 다르다. (아직 그 이상의 사람은 가까이서 많이 볼 기회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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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토요일에 꾸무럭대며 나와서 이제 25페이지 남았다. 사진 자리도 잡아야 하고 다시 검색도 한번 해야 하는데... 나는 왜 이렇게 비효율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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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리 언니의 라디오가 끝났다. 마음의 평안을 주던 위클리 40분이여 안녕.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