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140723 일기

담음 2014. 7. 24. 00:03



놀랄 만큼이나 계속 공기가 무겁더니 결국 장마가 왔다. 어제도 실컷 쏟아져서 조금 남아서 일을 마무리하려다가 우산이 없는 덕에(?) 친구 우산을 얻어 쓰고 퇴근. 회사에 친구가 생기니 회사에 친구가 있는 건 이런 기분이군! 하는 생각이 들고 있다.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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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선배들한테 많이 얻어 먹고 얻어 쓴다. 술도 많이 얻어 먹고 팁도 많이 얻고, 그렇긴 했는데. 부쩍 요즘 들어 만날 얻어 먹고 타고 쓰는 기분이... 다들 나를 동정하고 있다. 캬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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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뿌듯한 구매: 무전력 정수기. 겨울엔 보리차 여름엔 삼다수가 맛있어서 안 사고 1년 넘게 버텼는데, 이 집이 좀 덥고 건조한 편이라 항상 목이 마르고, 물이 떨어지는 사태가 종종 발생하고 페트병이 너무 많이 나오며 재활용 정거장 제도가 시행되면서 페트병 버리기가 더욱 번거로워져 드디어 구매(갖가지 이유를 대니 굉장히 합리적인 소비처럼 보이는군!). 냉장고 자리는 많이 차지하지만 용량도 크고 진짜 정수기처럼 버튼 누르면 따라 마실 수 있어서 편하고 좋다. 딸려온 수질 측정기(신뢰도는 조금 의심이 가지만)로 측정해본 결과 0~50 / 50~100 / 100~150 / ... / 400~ 으로 나뉜 카테고리에서 우리 집 수돗물은 73으로 2등급 정도 됐다. 마셔도 무방하지만 조금 오염된(?) 정도라고 해석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이 필터만 거치면 얄짤 없이 0으로 떨어져서, 측정기에 대한 신뢰도가 조금 떨어졌다. 그래도 수돗물 냄새가 깨끗하게 없어진다. 하여간 물은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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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웹툰을 연재 중인 모 작가를 만나고 왔는데, 저런 성격도 타고 나는 거지... 싶었다. 4개월간 바나나 두개, 훈제란 두개, 견과류 한봉지로 (주로 야작을 하니 한밤중에저녁을 먹고 있고, 질리지도 않는다고 한다. 먹는 것에 대한 욕심이 없는 사람... 비단 먹는 것 아니라도 스스로를 고통에 몰아넣고 견디는 걸 굉장히 잘하는 사람이다. 나는 저런 사람은 못 되겠지. (꼭 그런 사람이 되고 싶으냐 하면 그런 건 또 아니지만.) 오늘도 접대한다고 고기를 구우면서 내가 다 처먹었네. 낮에 먹은 고기 때문에 저녁 아무것도 안 먹었는데도 아직도 배가 부르다. 아침까지는 배부를 듯. 나도 가끔 내 식탐을 보고 놀랄 때가 있다. 많이 먹지도 못하는데 욕심을 부리는 것은 정말 보기 싫은 일인데! (기승전 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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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시작하고 여러 강좌를 시도해봤지만 (스페인어를 빼고는) 하나같이 중간에 그만두고 불성실하게 임했다. 그런데 한 세달 전부터 나가기 시작한 이 세미나는 이제 정도 붙였고 아는 사람도 생겨서 꾸준히 나가고 있다. (얼마 안 나갔는데 벌써 올드페이스가 되었다.) 문화연구 세미나라고는 하지만 사실 가서 멍때리다 올 때도 있고 지난번 주제는 생각보다 재미가 없었는데 이번 커리는 괜찮다. 대충이지만 발제도 무려 두번이나 해서, 억울해서라도 계속 나가게 될 것 같다. 


저번주에는 에바 일루즈의 <사랑은 왜 아픈가>를 읽었는데, 책 자체는 그냥 무난한 편이지만 아무래도 주제가 주제다보니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됐다. 동의가 잘 안 되는 부분들도 있고. 


확실히 한국의 결혼시장은 영국 빅토리아시대나 다름없다. 에바 일루즈는 현대의 결혼이 '부자연스러워졌다'고 했지만 자유연애를 찬양하면서도 동질혼(같은 계급 간의 결혼)을 원하는 한국의 이중적인 세태는 더 부자연스럽다. 어쨌든 같이 자전하는 지구에서 결국 한국의 결혼도 전통적 관습들은 점점 사라지고 책에 묘사된 대로 굳어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각개전투 연애필드. 관계의 매뉴얼은 사라지고 선택의 범위는 넓어진다. 하지만 마녀사냥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사람들은 끊임없이 19세기 영국과 같은 매뉴얼을 원할 것이다. 이거 그린라이트인가요? 여튼 "자유로운 섹스"라는 이데올로기는 점점 퍼져나갈 것이고 이러한 변화는 낮은 계급에서부터 치고 올라올 것이다. 성적 매력에 결부된 '천하다'라는 인식은 계급 간 이동을 막기 위한 방어기제가 아닌가 생각했다. (아직 더 읽어봐야 알겠지만, 일루즈의 주장에 대한 페미니즘계의 반응은 어땠을지 궁금하다.) 어쨌든 한국의 특수성은 차치하고라도 결국 극단의 자유가 극단의 부자유를 불러온다는 이야기인데... 왜 사회가 동질혼을 덜 장려하게 되었을까? 왜 자유로운 선택이란 환상이 장려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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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니 나는 매몰비용을 많이 아까워하는 타입은 아닌 듯하다. 운동도 그렇고 강좌도 그렇고 거금을 들여 등록한다고 돈이 아까워서 나가는 성격은 아닌 것이다. 진짜 재밌거나 사람들이 맘에 들면 가는 거지... 일단 귀찮으면 다 귀찮고 간다고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그러니 앞으로는 '돈이라도 들이면 하겠지'라는 어리석은 생각은 하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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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즐겨 듣는 팟캐스트는 [파토의 과학하고 앉아 있네]다. 재밌어! 요즘은 사실 문학 팟캐스트도 듣기 싫고 혜리 언니 팟캐스트도 못 듣겠고 회사 팟캐스트는 (정말 진심으로 아무리 게스트가 궁금해도, 일하는 기분이라) 듣기 싫어서 방황하고 있었는데, 과학 팟캐스트가 나를 구원해주었다... (함은 나의 수면을 돕고 있다는 말.) K박사 사투리도 귀엽고 딴지 논설위원 파토도 정리를 참 잘해준다. 하아 철학을 전공한 과학 애호가라니... 

(링크: https://itunes.apple.com/kr/podcast/patoui-gwahaghago-anj-aissne/id645893347?mt=2)


양자역학 적색거성 백색왜성 초끈이론 이런 단어들을 무념무상하게 듣고 있으면 어느새 잠이 오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다보면 또 잠이 오고 뭐 이런 선순환이랄까? 


물리학은 정말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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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이끼 도서로 (반쯤) 읽었는데, 분명 재미있지만 시시하다. 읽다보면 진짜 "해법"은 탈출뿐인가? 하는 의문이 들고 그렇다면 탈출하고 싶지 않은 나는 우울해진다. 천연발효종으로 빵을 만들면 정말 더 '좋은' 것일까? 탈출할 생각도 하지 않는 회의주의자라고 비난받고 싶지는 않지만 내가 궁금한 해법은 상자 안의 해법이다. 상자 밖밖에 없다는 것을 나에게 설득시켜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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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앗 그리고 요즘 정말 즐거이 보고 있는 웹툰: 옹동스. 

이 얼마 만의 스노우캣인가. 아직 죽지 않았어 스노우캣! 

여러분 보세요 두번 보세요. 좀 너무 따뜻해서 부담스러워도 좋습니다. 

http://page.kakao.com/home/46609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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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직도 배불러. 비 와서 산책도 못하는데 어떻게 소화를 시켜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