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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110 김훈의 한담

담음 2014. 11. 10. 10:53

김훈의 한담(閑談)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oid=366&aid=0000226568&sid1=001


나는, 가령 나의 무질서와 계통 없음을 말하는데, 누군가 인간의 신념에 대해서 묻는다면, 나는 신념을 가진 자의 편이 아니고 의심을 가진 자의 편인 것 같다. 신념의 가치를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구태여 내가 어느 편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의심을 가진 자들 쪽에 더 많은 진실이 있다고 생각한다.


허무주의라는 것은 내가 어떤 이념이나 정치 노선에 따르지 않기 때문에 아마 그것이 허무주의적인 것으로 비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남한산성을 보면 주전파와 주화파의 싸움이 나오는데 나는 아무 편도 아닌 것이다. 그 어느 쪽도 건전한 이념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인간에게 삶 이상으로 중요한 게 없다고 본다. 살아서 목숨을 부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나머지는 부차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허무주의가 나의 글에 물론 있고, 세상의 허무와 싸우는 인간의 처절한 투쟁의 모습도 있는 것이다. 그것을 허무주의냐 낙관주의냐 재단해서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책을 안 읽는 사람은 아니다. 일반 사람보다는 많이 읽는 사람이다. 온갖 책을 다 읽는다. 문학, 철학뿐만 아니라 기계공학, 자연과학서도 본다. 항해사 자격시험 문제도 읽는다. 소방관 자격시험 문제도 읽는다. 여성 화장은 어떻게 하나, 그런 책도 읽는다. 다만 책을 많이 읽었다는 것을 추호도 자랑으로 여기지 않는다. 


사실의 바탕 위에다 정의를 세울 수 있는 것이지 거꾸로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정의나 신념의 바탕 위에 사실을 세우려고 하면 다 무너져 버린다.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은 시스템이 아니고 구체성이다. 삶의 일상성과 구체성,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 체제나 지향성 그런 것은 나에게는 덜 중요하다. 어떤 가치 체계라도 삶의 구체성 위에 건설되지 않으면 무의미하다. 자신 주변의 삶을 똑바로 관찰하지 않고 관념적이고 추상적으로 해석하는 자들은 게으르고 무책임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