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602 일상의 균열
일기 2012. 6. 2.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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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할머니가 대장암에 걸리신 뒤, 우리집의 일상에는 조금씩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나는 처음으로 엄마가 우는 것을 엿들었고, 엄마는 생전 하지 않던 외박을 하기 시작했다. 외박이래야 봤자 할머니집에 가서 자고 오는 것에 불과하다. 그런 당연한 일마저 하지 않고 집에 자신을 붙들어 대던 엄마다. 자식들한테 밥 챙겨주기 강박증에 시달리는 엄마는 나에게 내일 동생이 먹을 삼겹살을 사올 것을 거듭 당부한다.
아빠가 변한다. 나이가 들면 아버지가 작아지는 것이 느껴진다더니. 물론 나에게 아빠는 아직도 무서운 존재다. 나는 보통 불편해서 아빠와 식사를 함께하지 않는다. 연설을 늘어놓거나 내 진로에 대해 물어볼까봐 '두려운' 탓이다. 성가시다기 보다 두렵다. 하지만 어느샌가 아빠는 나를 봐도 잔소리를 하지 않는다. 저번에 술을 마시고 온 아빠는 나를 앉혀놓고 "엄마랑 나는 요즘, '멘붕'이다. 너 '멘붕'이 뭔지 아냐?"고 했다. 나는 자리를 피했다.
오늘은 내가 만들 계란죽을 만들다가 아빠 것까지 만들었다. 같이 마주보고 밥을 먹었다. 아직 제대로 된 대화는 하지 않지만 새로운 종류의 불편함이 생겼다. 아버지는 그 연령대의 남자들이 그렇듯 어깨가 좁아진 듯 하다. 내가 만든 맛없는 계란죽을 먹고 아빠는 "점심은 니가 했으니 저녁은 내가 할게"라고 말했다. 예전과는 다른 의미로, 불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