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619 영화 리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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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병문안 가는 길에 난 할머니 이름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만약 혼자 병원에 갔다면, 「저, 할머니 병문안을 왔는데요.」「할머님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생각해보니 친척들 이름을 거의 모른다. 고모부는 때로는 이모부가 되기도 하고 고모부가 되기도 하지만 이름을 불리는 일은 없다. 저마다 할머니를 엄마, 장모님, 할머니라고 달리 부르지만 그 아무도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가족 관계에 기반한 호칭은 개인성을 완벽히 지운다-고 드립을 치려다가 그냥 뒤늦게 할머니에게 미안하다는 걸로 퉁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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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섬
사람 위에 사람을 얹고 사는 인구 천만의 도시에 uninhabited patch of land가 존재한다는 건 초현실적이다. 카약을 타고 밤섬에 상륙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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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키스!
- 도발은 없지만 달콤하다. 초콜릿의 농밀함도 레몬의 톡 쏘는 맛도 없지만 싸구려 설탕 덩어리는 아니다.
「아름다운 여자군. 뭘 마실까? 커피? 아니야 그건 너무 지루하지. 차? 아니야. 쥬스. 쥬스다. 열대 과일은 아닐거야. 구아바나 망고는 너무 무섭잖아. 살구, 살구 쥬스다. 살구 주스를 마시면 건너가서 말을 걸어야겠어」
「그와 함께 있으면 시간이 가는 줄 모르겠어. 일주일에서 목요일이 빠진 것만 같은 기분이야.」
- 팝콘무비를 보지 않게 된 순간부터 난 영화에서 도발을 원한다. 솜사탕 같은 영화도 때로는 괜찮지만 도발 없는 영화는 지루해.
미래는 고양이처럼!(The Future)
- 2011년 7월, 링컨 센터에서
- 미란다 줄라이와 그의 남자친구는 성숙하지 못한 인간이다. 눈 앞의 책임을 마주할 줄 모르고 유아기로 회귀하는 30대 커플이다. 간지러운 솜사탕 같은 장면들도 있지만 현실을 마주하지 않는 인물들 (그렇다고 이상을 잡으려 노력하는 인간도 아닌) 은 보는 이를 짜증나게 한다. 감정이 메마른 나에겐 그 간지러운 솜사탕도 백설탕 덩어리일 뿐이었다.
멜랑콜리아
- 영화를 관통하는 바그너의 음악은 아름다웠지만 힘겨웠다. 압도적인 화면과 다가오는 멜랑콜리아, 결국 죽어버린 건 가장 의연한 척 하던 존이었다. 강철이모는 'the earth is evil, we don't need to greif for it'이라고 말하면서도 조카를 위해 비밀 동굴을 만들어준다. 어쩌면 그 아이는 저스틴에게 망가진 지구 상에 마지막으로 남은 빛/빚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뭇가지 몇 개 밑에 앉아 손을 잡고 멜랑콜리아를 기다리는 마지막 씬은 근래 본 것 중 어쩌면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멜랑콜리아를 본 지인은 "극심한 우울을 겪은 사람은 지구가 끝나는 것이 차라리 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하지만 클로에와 저스틴 사이에서 멋있는 건 종말을 받아들이는 저스틴이었을지 몰라도 아름다운 건 겁에 질려 아이를 안고 뛰는 클로에였다.
다른나라에서
- 유준상은 정말 일취월장하는 듯. 넝쿨당에서 요즘 국민 남편이라더니. 이자벨 위페르고 누구고 간에 다른나라에서는 홍상수 영화 중에 가장 발랄한 영화였다. 돌고 도는 우연적 회귀는 여전하지만 옥희의 영화의 처연함도, 북촌방향의 쓸쓸함도 없다. 아마 홍상수는 이 영화를 만들면서 굉장히 즐겁지 않았을까 싶다. 만년필-소주병-우산으로 이어지는 뫼비우스의 띠. 세 번의 안느는 모두 다르지만 가장 빛나는 건 변하지 않는 유준상의 천진함이다. 웨어 이즈 더 라이트 하우스? 아! 라이트 하우스! 아이돈노. 하하하!
내 아내의 모든 것
- 즐거웠지만 시간이 아까웠다. 팝콘무비를 즐기는 능력을 상실해가는 것만 같은 느낌이야. 그 와중에 류승룡이 꼬시면 넘어갈 것도 같다는 생각. 그래도 나쁘진 않았다. 후반부에서 교훈적으로 이어지는 부분이 기특하면서도 찌질했다.
어벤져스
- 헐크가 좋아. 언제나 기승전결을 엄격하게 지키는 헐리우드 히어로 무비의 미덕.
- 덧. 마크 루팔로는 엉덩이가 예쁠 것 같다. 크리스 헴즈워스가 왜 섹시하댔는지 알 것 같다.
HBO Girls
- 리나 던햄은 유의해 볼만하다. 하지만 시즌 1의 9화밖에 안됐는데 제자리 걸음하는 듯한 캐릭터들은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