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11 무용한 거짓말, 범죄의 후유증.

오랜만에 일기.


크리스티가 왔다갔다. 왔다간게 참 다행이다 싶을 정도로 애정도 회복과 정신 차리기에 도움이 됐다. 여기서 내 인생이 끝이 아니라는 점을 다시 생각하게 해줘서. 얘랑 함께하기 위해서라도 나는 앞으로 해야할 일이 많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혹여나 더 나은 대안을 찾을 수 있으리란 믿음은 일단 접어두자. 함께 하기 위해서 가야하는 길이 멀구나. 하지만 뉴욕과 샌프란시스코에서 각자 차를 몰고 미대륙을 횡단해 텍사스-왜 하필 텍사스야! 총을 맞을지도 모른다고-에서 만나는 그날을 생각하면 마음이 따뜻하다. 마치 다른 유니버스의 나는 지금보다 더 행복하거나 불행할 것이라는 '사실'을 생각할 때와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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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한 거짓말을 가끔 한다. '언젠가 텀블러가 가방 안에서 샌 적이 있어요. 완전 악몽이었죠' 같은 류의 거짓말을 하곤 한다. 지금 이 시점에서 이런 얘기를 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그런 말을 내뱉곤 한다. 주로 친근감은 있으나 아직 친하진 않은 사람에게. 내가 말을 하면서도 난 왜 이런 말을 하고 있지? 그런 일이 실제로 있었는지조차 헷갈린다. 결국 정말 있었던 일로 믿어버리게 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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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의 후유증은 생각보다 오래 갈 것 같다. 말하자면 '묻지마 폭행'을 당한 셈인데, 그 와중에도 희극성을 발견한 내가 더 우습다. 맞으면서도 내가 왜 맞고 있는지 이해하려 애썼고, 아파트 단지로 들어오는 자동차 하이라이트에 도망간 그놈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허우적허우적 경비 아저씨를 찾을 때, 그리고 주변엔 아무도 없고 더이상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걸 알아차리고 집으로 걸어갈 때, 난 정말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이해가 안 됐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바라본 나는 눈밭에 뒹군 탓에 눈사람처럼 온몸에 눈이 묻어 있었다. 누군가에게 이 모습을 보여주기 전까진 나에게 비극이 일어난 것이 아니므로 울 수 없을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