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229 연말 알코올 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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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를 마무리하는 주를 온통 알코올로 보내고 있다. 주초에는 선배들과 술을 마셨고, 크리스마스 이브와 크리스마스를 아주 조용하게 칩거하며 지냈다. 목요일에는 회사 송년회, 금요일에는 친구들을 초대해서 와인을 마셨고, 어제는 총파업에 갔다가 결국 또 반가운 얼굴들을 보고 청하를 10병+ 마시고 오늘 대낮에는 빈대떡에 막걸리를 한잔한 후 집으로 돌아왔다.


목요일에 있었던 회사 송년회는 뜻밖에도 매우 즐거웠다. 나는 별로 친하지 않은 사람들과 단순히 술을 진탕 마시기 위해서 술을 마시는 것도 퍽이나 좋아하는데, 오랜만에 (술값을 신경 쓰지 않고) 폭탄주를 마구 제조하는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매일 딱딱하게만 보던 사람들이 술에 취해서 온갖 난동을 부리는 걸 지켜보는 것은 즐겁다. 쌍욕을 한다든지 폭력을 휘드른다든지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는 주사가 아니라면 말이다. 회사라는 공간에서 매일매일 감정을 억누르고 서로를 대하는 사람들이 (어쨌든 매일 부딪히는 입장에서) 어느정도의 애착을 서로에게 보여주는 장면들을 보면 -그리고 내가 있는 회사는 그런 관계가 일반적인 회사보다는 많지 않을까 생각한다- 조금은 짠하기도 하고, 조금은 사람들을 더 개인으로 대할 수 있달까. 물론 어떤 아저씨들은 주사를 보고 애정이 반감하기도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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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시청광장에서 열린 민주노총 총파업에 노조와 함께 갔다. 몇달 전에 이런 집회들에 대해서 냉소적인 글을 쓴 적이 있는데, 그 글이 여전히 부끄럽긴 하지만 아직도 나는 잘 모르겠다. 




이런 클리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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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런 못되게 삐뚤어지고 싶은 생각이 날 때는 변영주 감독의 인터뷰를 생각하면서 마음을 다잡는다. 우리는 공통점만 찾아도 살아가기가 힘든데.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너와 내가 어디가 비슷한 것인가'이다. '너와 내가 어디가 다른가'가 아니라 '너와 내가 어떤 공통점을 갖고 있는가'를 찾는 것이 더 먼저라는 것이다. 그래야 '너의 어떤 문제가 해결되는 순간 그것이 연동되어져서 나의 문제도 조금씩 나아지게 되는 것을 찾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손을 잡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요즘은 다들 자기가 독특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무서워서 그러는 거다. 스스로 무리 안에 있으면서 그 무리에서 승리할 자신이 없으니까 자기는 독특하다고 하는 거다. 핵심은 승리하지 않아도 되게 만들어 주는 거지, 애들을 가짜로 독특하다고 인정해 주는 게 아니다. 그러니 제발, 옆 사람이 나와 얼마나 비슷한가를 찾는 일, 아주 전통적인 언어로 '친구 찾기'를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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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다 그렇게 그렇게 흘러가는 거지, 라고 생각할 때 또 세상은 놀라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러니 우리는 실험을 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오랜만에 한구석으로 치워놓았던 세계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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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 김애란이 왜 이렇게 널리 사랑받는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잠깐 했는데, 집에 오는 내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집에 오자마자 <침이 고인다>를 뽑아들었다. 단편 두개를 다시 읽고 내가 김애란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재확인했다. 회사 가면 이것저것 좀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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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간 12월은 대부분 개판으로 보냈다. 지난번에 쓴 스케일링/선물/환불 중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했다. 짜파게티를 먹고 체를 해서 몇달 간은 짜파게티의 'ㅉ'도 보기 싫다. (놀랍게도 ㅉ만 봐도 속이 살짝 울렁거린다!) 요즘 무한도전을 너무 심하게 봐서 걱정이기도 하다. 근데 아직도 안 본 에피소드가 이렇게 많다니 너무 행복하다. ㅎㅎㅎ


나가기로 한 독서모임도 한번밖에 못 나갔고, 심지어 한 모임은 잠수를 타버리기도 했다. 흥청망청 무도를 줄창- 보고 시체처럼 잠을 자고. 그래도 달력을 보니 사람도 많이 만났고 술도 많이 먹었고. 이게 좀 하루 이틀 이렇게 살다보면 또 버릇이 되어버려서, 게다가 요즘은 집이 추워서 힘드렁...


새해에는 관성을 좀 버릴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