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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3.12 나를 불쾌하게 만드는 사람 / 장정일
- 2015.01.09 얼어붙은 시 / 황학주
- 2015.01.02 동사무소에 가자 / 이장욱
- 2014.11.18 레나타 살레츨, 선택이라는 이데올로기(후마니타스 2014)
- 2014.11.10 141110 김훈의 한담 1
- 2014.09.11 카메라 정리 1
- 2014.05.16 강로긔의 맛 공작소 1
- 2014.04.23 140423 마이클 폴란 [요리를 욕망하다]
- 2014.04.22 손열음
- 2014.01.28 140128 소리연대
나를 불쾌하게 만드는 사람 / 장정일
지난 1월 7일 파리에서 일어난『샤를리 에브도』테러 사건에 대해, 나는 도합 세 번의 글을 썼다. 이 사건에 관심은 있었지만, 글은 기회가 되면 천천히 쓰리라 생각했는데 어쩌다 그렇게 되었다. 나로 하여금 첫 번째 글을 쓰게 만든 계기는 <한겨레> 신문 1월 31일자에 정희진씨가 쓴「관용」이라는 제목의 글이다.
인도 소설가 살만 루슈디는 1988년, 영어로 집필되고 출판된『악마의 시』라는 소설에서 이슬람교의 창시자 무함마드와 코란을 모독했다는 죄목으로 이듬해 이란의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호메이니로부터 사형Fatwa을 선고 받았다. 현재 루슈디는 330만 달러의 현상금을 목에 걸고도 생명을 부지하고 있지만 이탈리아․노르웨이․터키의 번역자는 피습을 받고 중상을 당했으며, 일본인 번역자 이가라시 히토시 교수는 자신이 근무하던 쓰쿠바 대학교 캠퍼스 안에서 칼을 맞고 죽었다. 루슈디와『악마의 시』번역자들은 하나같이 이란 사람이 아닌데, 이란의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호메이니는 무슨 권한으로 타국의 국민에게 사형 선고와 그것에 준하는 처벌을 선동할 수 있었던 것일까? 각 나라의 주권과 국제법을 괘의치 않는 이슬람근본주의가 있는 한, 세계는 여전히 교황이 파문권을 행사하던 중세다.
세계화와 세속화에 직면해 앞으로 점점 증가하는 풍자와 조롱을 마주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이슬람의 운명이다. 이슬람권 안에서도 가장 자유로운 나라에 속한다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여성이 운전을 할 수 없고, 이집트 여성은 청바지를 입을 수 없다. 이슬람 율법이 강한 국가에서 여성이 남자 의사의 진료를 꺼리다가 죽어가거나, 강간을 당한 누이를 남자 형제들이 ‘명예살인’하는 것도 다반사다. 그런 나라에서 이슬람을 비판하거나 종교의 자유를 주장하는 것은 아예 자살 행위다. 이런 모든 것들이 이슬람을 풍자하고 조롱하는 근거가 된다. 이슬람은 그때마다 테러로 응수할 텐가? 설령 누가 진지하고 예의를 갖춘 비판을 하더라도 오늘 같은 상황에서는 테러를 피하기 힘들다.
참고로 『관용』의 역자가『시사IN』에 나온 내 글이 『관용』의 요점이 아니라면서 "헛다리"'를 짚고 있다길래, 메일을 해서 오해를 풀어 주었다. 저 글은 차례대로 ①이슬람은 약자가 아니다. ②어떻게 하면 ‘관용의 타락한 사용법’을 뿌리칠 수 있을까. ③이번 사건에 대한 한국 좌파 논객들의 편향적 자세에 대한 나의 생각을 피력한 글이며, 그것들은 마지막 문단에서 가서야 '장정일의 독서일기'라는 연재의 알리바이를 충족시키기 위해 언급된『관용』과 아무런 연관성 없이 씌어 졌다. 웬디 브라운의 여러 논지 가운데 이번에 내가 선택한 것은 “관용이 다문화제국의 새로운 통치전략”이 라는 사항이었으며, 그 주장을 널리 퍼뜨리고자 했다(그런데 메일을 통해 역자의 오해를 풀었다고는 하지만, 내가 '부탁'하지 않았기 때문인지, 무신경한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역자분은 내가 메일로 그의 오해를 풀어주려고 했던 진짜 '목적'은 헤아리지 못하나보다. 내가 모종의 부탁을 하지 않은 이유는, 이건 내가 그에게 '빚질' 사항이 아니라, 역자 스스로 알아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모종'이 뜻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이 글 끝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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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제가 쓸 수 있는 SNS 수단이 없기도 하거니와, 그런 수단을 거부하는지라 고클을 이용합니다. 아무쪼록 널리 퍼뜨려 주십시오.
*이택광씨가 지면을 얻어 반론을 한다는 소식이 있어, 제목과 본문 일부를 수정합니다.
얼어붙은 시 / 황학주
얼어붙은 시
/ 황학주
한 사람의 젖어가는 눈동자를
한 사람이 어떻게 떠올리는지 모르지만
사람들은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과거를 잊지 말자
파탄이 몸을 준다면 받을 수 있겠니
숨 가쁘게 사랑한 적은 있으나
사랑의 시는 써본 적 없고
사랑에 쫓겨 진눈깨비를 열고
얼음 결정 속으로 뛰어내린 적 없으니
날마다 알뿌리처럼 둥글게 부푸는 사랑을 위해
지옥에 끌려간 적은 더욱 없지
예쁘기만 한 청첩이여
목이 떨어지는 동백꽃처럼 좀 아프면 어때
아픔은 피투성이 우리가 두려울 텐데
순간마다 색스러워질 수 있는 것
그 모든 색 너머 투명한 얼음이 색색으로 빛나는,
색이 묻어나지 않는 색의
기쁨인 그것들
우리는 대못 자국 같은 눈빛이
맑디맑게 갠 다음 무엇을 보는지
여간해선 짐작 못한다
동사무소에 가자 / 이장욱
동사무소에 가자 / 이장욱
동사무소에 가자
왼발을 들고 정지한 고양이처럼
외로울 때는
동사무소에 가자
서류들은 언제나 낙천적이고
어제 죽은 사람들도 아직
떠나지 못한 곳
동사무소에서 우리는 전생이 궁금해지고
동사무소에서 우리는 공중부양에 관심이 생기고
그러다 죽은 생선처럼 침울해져서
짧은 질문을 던지지
동사무소란
무엇인가
동사무소는 그 질문이 없는 곳
그 밖의 모든 것이 있는 곳
우리의 일생이 있는 곳
그러므로 언제나 정시에 문을 닫는
동사무소에 가자
두부처럼 조용한 오후의 공터라든가
그 공터에서 혼자 노는 바람의 방향을
자꾸 생각하게 될 때
어제의 경험을 신뢰할 수 없거나
혼자 잠들고 싶지 않을 때
왼발을 든 채
궁금한 표정으로
우리는 동사무소에 가자
동사무소는 간결해
시작과 끝이 명료해
동사무소를 나오면서 우리는
외로운 고양이 같은 표정으로
왼손을 들고
왼발을 들고
레나타 살레츨, 선택이라는 이데올로기(후마니타스 2014)
p.10
왜 선택 앞에서 사람들은 그토록 무력해지는 것일까? 문제는 단순히 선진국 소비자들에게 선택할 수 있는 물품이 지나치게 많다는 데 있지 않다. 문제는 오늘날 만연한 선택 이데올로기가 점점 소비자들의 불안감과 부족감(feeling of adequacy)를 증가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p. 12
고도로 개인화된 우리 사회는 수백년 전부터 자본주의 발전의 초석으로 존재해왔던 '자수성가형 남성/인간self-made man'(뿐만 아니라 자수성가형 여성self-made woman)이라는 관념을 극단으로 밀어붙였다. ...
p. 13
선택 이데올로기의 역설은, 현실에서 선택의 여지가 점점 더 줄어든다 할지라도 성공하지 못한 것은 자기 잘못이라고 믿어버리게 된다는 것이다. 또 불안할 때 우리는 해야 할 것을 일러주는 권위자에게 너무 빨리 선택권을 넘겨버리고 그와 동일시한다. ... 하지만 우리는 선택 이후 어떻게 될지 예측할 수 없고, 선택과 더불어 오는 상실들을 피할 수 없다. 만약 그것을 피하고 싶다 하더라도 끝없이 연기시키는 것일 뿐이다. 그러니 우리는 다음과 같은 새뮤얼 존슨Samuel Johnson의 명언을 상기해야 한다. 어떤 인생을 선택할까 궁리하느라 실제 살아가는 일 자체를 망각해서는 안 된다("When making a choice in life, do not forget to live.").
p.19
후기 산업자본주의 이데올로기는 개인이 추구하는 향락에는 제한이 없는 것처럼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 후기 산업자본주의가 선택 이데올로기를 지지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더 정확히 말해 이는 자본주의의 지배를 영속화한다. (p. 26)
p. 42
오늘날에는 '자수성가'한다는 것이 그리 간단한 일은 아니다. ... 경쟁에서 살아남는 것, 심지어 어느정도 성공해 부를 획득하는 것조차 흔하고 당연한 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중요한 과제는 자기창조다. 포스트모던한 전문직들에게는 삶 그 자체가 일종의 예술 창작 활동 혹은 도전적인 기업 경영, 즉 계속해서 개량하고, 개정하고, 개선해야 할 것이며, 성공은 그것의 가장 완전한 표현이다.
p. 68
철학자들은 불안과 선택의 연관성을 오랫동안 주목해왔다. 키르케고르에게 불안은 자유로부터—즉, 가능성의 가능성을 직면해야 할 때— 나온다. 사르트르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은 주석을 달았다. 심연 앞에 선 개인이 불안한 이유는 자신이 심연으로 떨어질지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 심연에 투신할 자유가 있기 때문이다.
p. 83~85
제이크 핼펀Jake Helpern은 Fame Jukies: The Hidden Truth behind America’s Favourite Addiction에서 유명인들의 개인 비서들이 어떻게 정체성을 발달시키게 되는지를 살펴본다. … 초반에 이들은 자신의 유명한 고용주와 동거동락하다시피 하며 점차 독립된 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어가기 시작한다. … 유명인의 비서에게 요구되는 것은 광신적 종교 집단의 일원에게 요구되는 것과 유사하다. 핼펀은 이렇게 지적한다. ‘유명인의 비서와 광신적 종교 집단의 일원은 자신이 중요한 존재라고 느끼게 되며—위대한 이들을 보좌하면서 권력에 너무 가까워진 그들은 권력을 거의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을 것처럼 느끼기도 한다 — 이는 중독적이다.’ … 대중잡지 <US 위클리>는 유명인을 친근하고 이웃 같은 현실의 사람으로 나타내고자 애쓴다. … 이 잡지는 스타 이름의 약칭(젠Jennifer Aniston)을 사용해 그녀도 우리와 다를 바 없다는, 유명인들도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같은 문제로 고민하는 그저 평범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심어준다. … 이런 이유로 유명인 되기는 누구에게나 가능한 선택지가 된다.
유명인과 동일시하려는 욕망은 오스트리아 철학자 로버트 팔러Robert Pfaller가 명명한 ‘상호 수동성’interpassivity 개념을 도입해 보면 좀 더 복합적인 측면을 이해할 수 있다. 상호 수동성은 개인과 그 개인을 대신해 무언가를 경험해주는 대리인proxy 사이에서 일어난다. 가령 세르비아에서는 상을 치르는 사람들이 대신 애도해줄 여성들을 고용해 장례식장에서 곡을 하게 한다. 불교도에게는 자신을 대신해 기도해주는 마니차가 있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결코 보지 않을 영화를 녹화하는데, 어떤 의미에서는 녹화기가 그들을 대신해 영화를 봐주기 때문이다.
p. 87~88
… 우리는 건강조차도 매매할 수 있는 상품으로 인식하게 되었고, 이는 선진국에서 의료 서비스가 운용되는 방식에 영향을 미쳐왔다. 현재 의료 서비스에서는 선택과 자비 지배라는 관념을 예찬한다. 의사는 더는 권위자를 자처하며 환자에게 가장 좋은 치료법을 권하지 않는다. 요즘은 그저 환자에게 선택지들을 고지하고 환자가 결정하도록 하거나 동의(또는 거부)를 표하게 하는 경우가 흔하다. …
현재 우리는 DIY 윤리를 몸에도 적용하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가 자기 몸에 대한 책임과 통제를 스스로 떠맡으려 할수록 질병이나 허약함, 병원 치료와 같은 문제들은 점점 더 괴로운 일이 된다. 건강 문제는 궁극적으로 개인의 잘못이 되고 있다. … 우리는 심지어 ‘스트레스를 관리’하면 된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병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 다른 부분—자기치유self-healing—에 실패했다며 죄책감을 느끼는 것이다.
자기 치유 이데올로기가 많은 나라에서 정치인들이 공공 의료 서비스를 민영화하기 시작한 시기에 급격히 번성했다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p. 105
뒤푸르는 계몽주의 시대 초반에 개인이 자신의 준거를 바로 자신에게서 찾게 되었다고 본다. 바로 이때부터 주체는 자기 존재를 확인하는 데 더는 외부의 존재—신, 나라, 혈통—를 참조하지 않았고 어떤 면에서는 자기 자신이 자기 고유의 기원이 되었다. … 뒤푸르는 탈근대 사회에는 더는 상징적 대타자, 즉 주체가 요구를 표명하고 문제나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권위’가 되는 불완전한 실체는 없다고 결론 짓는다. 그런 사회에서는 시장이 대타자가 된다. …
141110 김훈의 한담
김훈의 한담(閑談)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oid=366&aid=0000226568&sid1=001
나는, 가령 나의 무질서와 계통 없음을 말하는데, 누군가 인간의 신념에 대해서 묻는다면, 나는 신념을 가진 자의 편이 아니고 의심을 가진 자의 편인 것 같다. 신념의 가치를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구태여 내가 어느 편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의심을 가진 자들 쪽에 더 많은 진실이 있다고 생각한다.
허무주의라는 것은 내가 어떤 이념이나 정치 노선에 따르지 않기 때문에 아마 그것이 허무주의적인 것으로 비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남한산성을 보면 주전파와 주화파의 싸움이 나오는데 나는 아무 편도 아닌 것이다. 그 어느 쪽도 건전한 이념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인간에게 삶 이상으로 중요한 게 없다고 본다. 살아서 목숨을 부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나머지는 부차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허무주의가 나의 글에 물론 있고, 세상의 허무와 싸우는 인간의 처절한 투쟁의 모습도 있는 것이다. 그것을 허무주의냐 낙관주의냐 재단해서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책을 안 읽는 사람은 아니다. 일반 사람보다는 많이 읽는 사람이다. 온갖 책을 다 읽는다. 문학, 철학뿐만 아니라 기계공학, 자연과학서도 본다. 항해사 자격시험 문제도 읽는다. 소방관 자격시험 문제도 읽는다. 여성 화장은 어떻게 하나, 그런 책도 읽는다. 다만 책을 많이 읽었다는 것을 추호도 자랑으로 여기지 않는다.
사실의 바탕 위에다 정의를 세울 수 있는 것이지 거꾸로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정의나 신념의 바탕 위에 사실을 세우려고 하면 다 무너져 버린다.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은 시스템이 아니고 구체성이다. 삶의 일상성과 구체성,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 체제나 지향성 그런 것은 나에게는 덜 중요하다. 어떤 가치 체계라도 삶의 구체성 위에 건설되지 않으면 무의미하다. 자신 주변의 삶을 똑바로 관찰하지 않고 관념적이고 추상적으로 해석하는 자들은 게으르고 무책임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 문사 14년 여름호. 하시라에 오타가 났다!
라스 폰 트리에는 정말 세상의 ‘샐리그먼들’을 확 쏴버리고 싶은 것이 아닐까? 아니, 적어도 쏴버리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욕망이 <님포매니악>을 완성한 가장 큰 동력이 아니었을까? 이런 상상을 부추긴 꼬투리는, 조가 불감증을 극복하기 위해 말이 통하지 않는 아프리카 출신 남성을 일부러 섭외해 섹스하는 대목이었다. 회고 도중 ‘니그로’라는 비하 용어를 조가 입에 올리자 샐리그먼은 정색하고 그럼 못 쓴다고 제지하는데 조는 마치 이 비판을 기다렸다는 듯이 준비된 반론을 펼친다. 그녀는, 하나의 단어가 사용 금지될 때마다 세계는 생기를 잃어간다는 신념을 피력하는 한편 나쁜 내용의 이야기를 좋은 포장으로 하면 떠받들고 악의 없는 이야기를 나쁘게 하면 핍박하는 세태를 꼬집는다.
http://www.cine21.com/news/view/group/M406/mag_id/77605
Max Ernst, 33 Little Girls Chasing Butterflies
강로긔의 맛 공작소
로긔로긔 강로긔가 음식 칼럼을 채널 예스에 연재하고 있다.
아이 재밌어 +_+
http://ch.yes24.com/Article/List/2496
쏠쏠한 정보들이 그득하다.
140423 마이클 폴란 [요리를 욕망하다]
마포구청역에 내려서 날씨도 좋고 슬 걸어오면서 망원시장을 통과했다. 봄 저녁 시장의 시끌시끌함이 좋았다. 정육점 아저씨가 친절했다. 간 소고기를 300g 사서 볼로네제 소스를 만들고 있다. 하지만 수입육이라 그런지 잡내가 너무 난다... 냄새를 잡으려고 내가 타임을 싫어하는 걸 알면서도 타임을 넣었다. 잔뜩 끓이면 냄새 안 나겠지? 흑...
오이가 다섯개에 천원 막 이랬는데 살걸 후회된다. 못 먹으면 얼굴에라도 붙이게 ㅋㅋㅋ
*
간간이 읽고 있는 <요리를 욕망하다>는 <잡식동물의 딜레마>로 잘 알려진 미국인 저널리스트 마이클 폴란의 책이다. 생각보다 재미가 없다... 발췌한 부분처럼 흥미로운 지점이 있지만 '요리의 사회문화사'라는 거창한 부제에 비해서는 별로 건질 거리가 없다. 통돼지 바베큐에 대한 텍사스적 로망이라든가 하는 미국인 아저씨의 정체성이 강하게 느껴져서 공감할 수 있는 지점도 별로 없다. 불-물-공기-흙이라는 구성도 의아하고... 차라리 <잡식동물의 딜레마>를 살걸... 비 윌슨의 <공포의 식탁>도 앞에만 조금 봤는데 손이 잘 안 간다.
출퇴근길에 곰선배가 빌려준 <돈가스의 탄생>을 (이제야) 읽고 있는데 이건 훨씬 재밌다! 일본에서 육식이 1200년 동안 금지됐었다니! 이렇게 엄청난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니!
마이클 폴란 <요리를 욕망하다>(에코리브르 2014)
고대에 널리 퍼진 동물 공희 의식은 이러한 양심의 가책이 인간을 매우 오랫동안 괴롭혀왔음을 암시한다. 칼로 목을 따기 전에, 그리스의 사제들은 제물로 바쳐진 동물의 이마에 물을 뿌려서 동물이 머리를 흔들면 이를 찬성한다는 신호로 해석했다. 아주 냉정히 생각하면, 희생제의의 많은 요소는 실로 우리가 꺼림칙하게 여기지만 해야 하거나 어쨌든 하고 싶어 하는 일에 대한 간편한 합리화처럼 보인다. 이런 의례를 통해 먹는 즐거움 때문이 아니라, 신이 요구하기 때문에 요리를 하는 거라고 우리 자신을 달래는 것이다. 우리가 불 위에 동물의 고기를 굽는 이유는 맛을 위해서가 아니라 연기를 피워 공물이 하늘에 닿게 하기 위해서라고, 가장 좋은 부위를 먹는 까닭은 육즙이 제일 풍부하기 때문이 아니라 신은 연기만을 원하기 때문이라고 되뇌는 것이다.
우리 인간은 동물 중에서 유일하게 음식이 '먹기 좋아야'-맛있고, 안전하며, 영양가가 풍부해야-할 뿐만 아니라, 레비스트로스의 말을 빌리자면, '생각하기에도 좋아야' 한다고 고집한다. 우리는 여러가지를 먹지만, 특히 생각을 먹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p.66-7)
*
썷어놓은 채소는 적절히 배합해야 냄비 요리 특유의 맛과 문화적 정체성이 비로소 우러난다. 그래서 깍둑썰기한 양파와 당근, 셀러리를 버터(때로는 올리브오일)로 소테하면, 프랑스 요리 중 하나인 미르푸아(mirepoix)가 완성된다. 그러나 잘게 썬 양파, 당근 및 셀러리 다진 것을 올리브오일로 소테하면 이탈리아 요리의 기본인 소프리토(soffrito)가 완성된다. 그런데 '소프리토(sofrito)-f 하나와 t 하나로 쓸 때-는 양파와 마늘, 그리고 셀러리 대신 썬 토마토를 소테한 에스파냐 요리다. 레시피에 썰어놓은 파와 마늘, 생강이 기본으로 들어가면, 서구 음식과 아주 다른 이른바 '아시안 미르푸아'라고도 하는 음식이 된다. 이는 극동지역 여러 요리의 기본이 된다. 인도에서 냄비요리는 보통 '타르카(tarka)'로 시작하는데, 깍둑썰기한 양파와 향신료를 정제 버터 또는(ghee)로 볶은 것이다. 이런 용어나 기법에 익숙하지 않더라도 이처럼 썬 채소를 베이스로 한 음식의 향을 통해 우리는 어느 나라 요리인지 즉시 알게 된다. (p. 155)
*
양파는 왜 그토록 냄비요리에 널리 쓰일까? 소금 다음인데, 양파만큼 광범위하게 쓰이는 요리 재료를 생각할 수가 없을 정도다. 전세계적으로 양파는 두번째로 중요한(토마토 다음으로) 채소 작물이며, 농작물이 자라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기를 수 있다. 그러면 양파는 음식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가? 사민은 양파를 비롯해 흔히 쓰이는 향신 채소들이 널리 쓰이는 이유는 싸고 쉽게 구할 수 있으면서도 음식에 단맛을 더해주기 때문이라고 했다. 내가 조심스러운 태도로 집요하게 설명을 요구했더니, "화학반응인 거죠"라고 답했다. (...)
그런데 어떤 종류의 화학반응이란 말인가? 미르푸아를 폭넓게 과학적으로 연구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맥기조차도 그답지 않게 모호한 답변을 내놓았다. 양파와 당근에 들어 있는 당분이 소테 팬 안에서 캐러멜화됨으로써 각종 맛 화합물이 요리에 더해진다는 답변은 명백히 틀린 답변이다. 캐러멜화된 당분이라는 이론은 셀러리로 미르푸아와 소프리토를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 않는다. 셀러리는 수분과 셀룰로오스를 제외하면 단맛을 거의 내지 못하는 채소이기 때문이다. 이는 향신 채소를 볶을 때 캐러멜화(또는 마이야르 반응)를 제외한 다른 과정이 끼어든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마이야르 반응은 요리에 맛을 더해주는 과정이지만 비밀이 자세히 밝혀진 바가 없다.
(...) 낮은 불에서 천천히 익히면 채소 안의 긴 단백질 고리가 아미노산 구성요소로 분해되며, 그중 (글루탐산처럼) 음식에 '우마미'-일본어의 '맛있다'라는 뜻인 우마이에서 온 말-라는 감칠맛을 더해준다고 알려져 있고 이런 사실이 적어도 그럴듯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을 만큼 온라인에 단서가 많기도 했다. 우마미는 이제 짜고 달고 쓰고 신 맛과 더불어 제5의 맛으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리고 다른 맛과 마찬가지로 혀에 우마미만을 탐지하는 수용기가 있다. 별 맛이 없는 셀러리도 냄비요리에 감칠맛을 더할 수 있으며, 이것은 탄수화물로 세포벽이 단단해진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
*
흔히 사용되는 여러 향신료와 마찬가지로, 양파는(그리고 마늘도) 요리한 후에도 남아 있는 강력한 항균화합물을 함유하고 있다. 미생물학자들은 양파, 마늘, 향신료가 고기에 있는 위험한 세균이 성장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우리를 보호한다고 생각한다. 고기가 훨씬 쉽게 부패되는 적도에 가까운 지역일수록 이런 식물이 요리에 훨씬 자주 들어가는 이유를 알려주는 힌트인지도 모른다. 냉장시설이 등장하기 전에 음식, 특히 고기가 세균에 오염되면 건강에 심각한 위협이 되었다. (인도 요리를 보면, 고기 요리보다 채소 요리 레시피에 향신료가 적게 들어간다.) 순전히 시행착오를 거친 덕에, 우리 조상들은 인체에 해롭지 않게 보호해주는 특정 식물의 화학성분을 발견했다. 양파는 아주 강력한 항균성 식용식물 가운데 하나다. 우리가 그런 식물의 '맛이 좋다'고 느끼는 것은 우리의 생존에 도움이 되는 분자들의 맛을 후천적을 학습한 효과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p.175)
손열음은 글도 잘 쓴다.
http://sunday.joins.com/article/search_list.asp?query=%BC%D5%BF%AD%C0%BD&news_sort=date&news_source=61&news_sch=reporter&sdate=&edate=
킁.
140128 소리연대
"체호프의 모든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자꾸 무언가에 걸려 넘어지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이들이 넘어지는 건 하늘의 별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도 불행하고 다른 이들도 불행하게 만들고 형제나 가까운 지인이 아니라 멀리 떨어져 있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머나먼 타국 흑인들, 중국의 막노동자, 먼 우랄에 사는 노동자의 아픔을 이웃이나 아내가 겪는 불행보다 더 쓰라린 도덕적 고통으로 느끼는 사람이다. 이들은 꿈꿀 수 있었지만 지배는 못했다. 이들은 기회를 놓쳤고, 만들지도 못할 나라를 설계하느라 뜬눈으로 밤을 새웠지만 열정과 불같은 자기희생, 순수한 영혼, 도덕적 고귀함으로 가득 찬 사람이 언젠가는 살았고 지금도 무자비하고 추악한 러시아의 어딘가에 살고 있을 거라는 사실 자체가 좀더 나은 내일을 기대할 수 있게 하는 약속이다. 훌륭한 자연의 법칙 중 가장 훌륭한 것이 약자 생존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 나보코프
올리고 보니 오늘이 체호프의 생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