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110 밀회, 김영하
죽음을 생각하기에 좋은 곳은 바로 이런 곳입니다. 편안한 신발을 신고 느릿느릿 발걸음을 옮기는 늙은 관광객들과 제 몸의 힘을 이기지 못하는 젊은이들이, 마치 콘트라스트 강한 흑백사진의 명부와 암부처럼 도시를 양분하고 있는 곳, ...
... "너는 해파리야." 나는 그 때까지 해파리를, 투명한 몸을 흐느적거리며 물 위를 떠다니는 그 이상한 바다생물을 그때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그 음성을 듣는 순간 나는 내가 한 마리 해파리라는 것을 부인하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인간은 그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것은 아닐까요? 새의 울음소리를 완벽하게 흉내내는 폴리네시아의 원주민처럼, 자칼의 가면을 쓰고 행진하는 아마존의 어느 샤먼처럼, 인간은 어떤 순간 완벽하게 다른 존재일 수 있는 게 아닐까요? 정말 인간은 삶의 전 순간을 오직 인간으로만 사는 것일까요? 그러니까 제 말은, 개나 돼지, 새나 물고기인 그 어떤 순간, 그것을 부인하기 어려울 때가 간혹은 있지 않은가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교도들이 전생을 믿는 게 아닐까요? 우리가 우리의 긴 윤회 과정 어디쯤에선가 왜가리나 멧돼지, 코끼리나 흰소였을 수 있다는 믿음은 왜 이렇게 자연스러운 것일까요?
"너는 해파리야."
...
폭
파해체되는 빌딩처럼 그녀의 몸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그녀는 오른손으로 화장대를 짚으려 하지만 빗나갑니다. 우당탕탕. 조금 큰소리를
내며 그녀가 방바닥에 쓰러집니다. 조금 전 격렬하게 경련을 일으켰던 내 염통만큼은 아니지만 그녀의 심장도 거세게 뛰고 있습니다.
그 소리를 나는 들을 수 있습니다. 나는 기쁩니다. 그것은 그녀가 살아 있다는 뜻이니까요. 그렇습니다. 그녀는 살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과연 축복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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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그녀는 울고 있습니다. 나는 그런 비통한 눈물을 본 적이 없습니다.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남편의 얘기를 하며, 그 고통을 말하며 그녀는 간혹 흐느끼곤 하였습니다만 그것은 제 운명을 억울해하는 자의 눈물이었습니다. 그녀의 울음은 입을 통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잘 익은 석류가 벌어지듯 제 육신을 찢고 뛰쳐나오는 것입니다. 그만큼 격렬합니다. 그녀의 그, 날것 그대로의 애도가 이토록 달콤할 줄은 몰랐습니다. 나는 위로받고 있습니다. 아, 망자는 원래 이렇게 잔인한 존재일까요? 생명의 피를 빨아먹고 흡족해하는 흡혈귀들처럼 지금 나는 저 처절한 애도가 마음에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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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갱처럼 검은 네카어 강에는 오렌지빛 석양이 깔리고 있습니다. 삶을 생각하기에 좋은 도시는 바로 이런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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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中 <밀회> / 김영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