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326 한국문학과 그 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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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일의 글쓰기 스타일은 단정적인 말투, 괄호 사용 남발, 잦은 비약 등 때문에 거부감이 든다. 어쨌든 나는 그가 의미있는 지적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글에서 느껴지는 바로는 필자가 상당히 성격이 급하지 않을까하는 의심이 든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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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을 보호해야 한다 / 8. 한국문하의 우울 / 8.1 문학과 국가 / 조영일


박금산의 <바디페인팅>(실천문학사, 2007)은 한국사회에 발을 딛고 살아가는 한 젊은 소설가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작품은 '구보씨 계열'로 분류될 수 있을 텐데, 이전의 구보들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소설가 자신의 치부를 까발리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 뿐만 아니라, 소설 속 주인공은 작가와 거의 구별이 가지 않을 정도로 밀착되어 있어, 최소한의 허구적 장치마도 배제된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러나 이 소설의 진짜 주인공은 주인공 '박금산'도 작가 '박금산'도 아니다. 노드롭 프라이리식으로 이야기 하자면, 이 작품은 '고백'이라기보다는 '아나토미(anatomy)'에 가깝기 때문이다. 즉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작가가 얼마나 자신을 진실하게(있는 그대로) 고백했는지가 아니라 얼마나 자기 자신을 개념화시켰는지에 있다. / p. 204 (강조는 인용자)

* 노드롭 프라이리

한국문학시스템에서 시장의 후퇴와 국가의 등장은 거의 동시적으로 이루어진 것처럼 보인다. 다시 말해, 문학시장의 위축과 작가들의 생계위협 때문에, 부득이 국가가 문학판에 끼어들게 되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일지도 모른다. 객관적인 수치만 보더라도 문학시장이 이전보다 더 위축된 것 같지 않으며, 또 작가들의 생활 역시 과거부터 궁핍해졌다고 볼 수도 없다. 그런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느끼는 것은 아마 외적상황의 변화보다는 내적상황(예컨대 창작태도)의 변화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소위 '문학의 위기' 이전의 작가들은 '빈곤'을 감수해야 하는 조건으로 받아들였던 것에 반해, 오늘날의 작가들은 '빈곤'을 근본적으로 문학을 위협하는 존재로 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변화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이제는 더이상 작가가 일반인과 구별된 존재가 아니며, 그의 창작활동 역시 일반 회사생활과 별반 다를 게 없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그러므로 문학가들에게 '빈곤'은 이제 '시적 언어'에 도달하기 위한 단련과정이라기보다는 창작활동을 저해하는 장애물로 간주되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오늘날 작가들이 호소하는 '문학의 위기'는 이처럼 신자유주의(그리고 중심매체의 변화)에 의해 위축된 문학시장의 '가난(위축'이 아니라, 이전부터 존재해온 '가난'에 대한 창작자의 변화된 감각에서 생긴 것이다. 물론 이런 변화의 원인은 그동안 작가들에게 부여되어온 독특한 가치의 소멸에 있다 하겠다. 작가들은 더이상 시민적 생활에 대한 동경을 품고 살아가는 '길 잃은 시민(보헤미안)'(토마스 만)이 아니며, 기껏해야 시민의 대열에 보조를 맞추면서 그로부터 낙오되지 않으려고 아등바등하는 사람들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들에게 (소)시민적 생활이란 동경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어떻게 하든 사수해야만 성(城), 다시 말해 의무이자 권리인 셈이다.

문학가들의 이러한 변화에 대해 왈가왈부할 생각은 없다. 문제는 물질적으로는 시민을 자처하면서도, 정신적으로는 여전히 과거로부터 넘겨받은 어떤 우월감을 주장한다는 데 있다. 여기서의 우월감이란 적어도 일반시민의 노동과는 구별된 보다 근본적인 무엇이라는 사고에서 나온 것이라 하겠는데, 사실 이런 전제들이 없다면, 막대한 공적 자금을 생활고에 시달리는 하층 빈민이 아닌 문학가들에게 투여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문학가들의 이런 모순된 자기규정이야말로 한국문학의 마지막 생존 기반이자 문학과 국가의 행복한 동거를 가능하게 하는 원동력일지도 모른다.

 이런 배경을 염두에 둔다면, <바디페인팅>이 왜 소설가의 '우울'을 문제 삼는지는 자명하다. 자유로워야 하는 문학이 국가기금의 포로가 되고 있는 것에 대한 양가감정(분노와 고마움) 때문이다. ...  

8-2 투명문학의 꿈

그러나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 작품은 '고백'이 아니라 '아나토미'다. ...

황현산은 작가의 이상한 염결성(자신을 투명하게 만들려는 욕구)이 사회-윤리적 의지(또 하나의 삶을 향해 말을 건넴)와 굳게 맞물려 있다고 보는데, 여기서 '이상한' 염결성이라 함은 타인 앞에서 자신의 치부를 '완전히' 드러내는 것을 의미한다. 즉 그것은 다른 말로 수치심을 도려내는 것이다.

... <바디페인팅>은 오늘날 한국의 소설가가 마주할 수밖에 없는 음울한 현실을 상세하게 그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찌 된 일인지 우스울 뿐만 아니라 경쾌하기까지 하다. 그리고 그와 같은 경쾌함은 매우 현실적인 것에 대해서조차 '비현실적인 느낌'을 갖게 만든다. ... 어느 수준을 넘어선 객관묘사는 도리어 현실을 비현실적으로 만드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유머는 이런 객관화의 극단적 표상행위에서 발생하는 감각의 역전을 뜻한다. ... 유머(경쾌함)는 역으로 무언가를 현실적이지 않게(보이지 않게) 해소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그와 같은 염결성이 은폐(해소)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 <바디페인팅>에서의 유모는 완전한 자기폭로(자기투명화)에서 생기는 자기 자신에 대한 거리감에서 발생하고 있다. 이는 내면을 불투명하게 만드는 수치심을 제거하지 않는 이상, 결코 획득될 수 없는 것이 유머라는 말이기도 하다. 

8-3 잉여로서의 빈곤

... 근대문학에서 '빈곤'은 매우 중요한 테마이다. ... <바디페인팅>은 자본에 저항하는 문학가라면 어쩔 수 없이 마주하게 되는 문제(빈곤)에 대해 어떻게 말하고 있을까? 이 같은 물음은 어쩌면 우문일지 모른다. 왜냐하면 이 작품에는 '빈곤'이 처음부터 존재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 빈곤은 존재하지 않고 빈곤에 대한 '두려움'만이 존재할 뿐이다. 

8-4 우울과 비아그라 (재밌음. 너무 길어서 안 옮김)

8-5 유토피아와 설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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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을 지나치게 낭만화 하는 것 아닌가. Climbing out of poverty by your own efforts, that is indeed something on which to pride yourself, but poverty itself is romanticised only by foo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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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가들의 변화에 대해 왈가왈부하고 싶지 않다고 하는 것은 비겁한 수사라고 생각함. 하지만, 글을 읽다 순간적으로 짜증나는 대목이 있다면 발언이 너무 터무니없거나 인식은 못하지만 그 사실이 치부를 찌르기 때문이다. 분간하는 건 곰곰히 생각해보면 크게 어렵지 않은 일이다. 짜증 수준에서 멈추면 다다를 수 없는 곳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