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리 줄레조 Valérie Gelézeau, <아파트 공화국>

발레리 줄레조 Valérie Gelézeau, <아파트 공화국>


p.15-16

1993년 처음 서울을 방문해 아파트단지의 거대함에 충격을 받은 이후, 나는 어떻게 이런 대단지 아파트가 양산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을 박사 논문의 주제로 삼기로 마음먹었다. 물론 친지와 가족들의 이해할 수 없다는 시선을 예상치 못한 건 아니었다. 그들은 한국에 새롭고 흥미진진한 연구 소재들이 많을 텐데 프랑스에서는 이미 진부해재ㅕ 버린 아파트단지와 도시문제를 왜 연구하려 할까 의아해 했다. 

프랑스인들은 1950~60년대에 건설된 도시 주변지역의 대단지 아파트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런 반응은 당연했다. 그들에게 이 아파트단지들은 ‘씨테’(cité), 관리 부실, 볼품없는 건축미, 저급한 생활환경을 연상케 한다. ‘대단지 아파트=도시문제 발생 지역’이라는 단순 도식은, 체계적으로 실증된 바는 없지만 서구 도시의 상징체계 안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따라서 서울의 아파트단지를 연구하는 기간 내내 내가 다루고자 하는 주제가 사회 하층의 주택문제도 아니고, ‘도시근린지역’(banlieues)문제나 도시폭력 문제도 아니라는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 꽤 많은 노력을 소모해야 했다.


1990년대 중반 현장 답사를 위해 프랑스에서 다시 서울로 향할 때 품었던 희망과는 달리, 내 연구는 한국에서도 제대로 이해되지 못했다. 아파트단지는 대다수 사람들에게 오히려 긍정적인 이미지로 받아들여졌고 도시문제는 주택 용지의 부족 혹은 인구 과밀로 인한 것이며 그로부터 교통, 환경, 특히 주택문제가 야기되므로 아파트단지 건설이 불가피하다는 식이었다. 이렇듯 모든 이들이 그 답을 이미 알고 있기에 필자의 연구 주제는 일반인뿐 아니라 인터뷰 대상이 됐던 아파트 경비원들의 비아냥거림을 면할 수 없었다. 이구동성으로 들려오는 첫 번째 근거는, 사람은 많고 공간은 부족하니 고층으로 올릴 수밖에 없다는 이해방식이었다. 한옥은 고리타분하고 불편한데 비해, 아파트는 현대성과 편리성이라는 미덕으로 미화되는 것이 그 두번째 근거였다. 


p.17

2000년 현재 1960년 이전에 지어진 도시 주택은 5퍼센트 이하에 불과하다. 한국전쟁 이전에 지어진 가옥은 극히 드물어, 간신히 3퍼센트 정도 된다. 이토록 빈약한 수치는 도시의 급격한 확장 때문이라고 설명되어 왔다. 어쨌든 그 확장은 현재도 진행 중이다. 1960년에 존재하던 서울의 문화재 중 2/3 이상이 1990년 현재 자취를 감추고 그 자리에 새로운 주택이 들어섰다(인구주택총조사 1960; 1990; 2002).


p.73

우성의 건물은 크림색 바탕에 승강기 통로를 연하늘색이나 연분홍색으로 입혔다. 사당동 신동아단지는 파격적인 추상적 문양과 다양한 색조를 과시하여 붉은색, 노란색, 파란색의 물방울, 눈송이 문양을 측벽에 그려넣었다. 삼성단지 역시 연분홍과 연하늘색을 사용했다. 이렇게 황토색, 살색, 초록색, 하늘색, 분홍색 등 파스텔 톤의 색조는 1990년대식 경향을 나타내주고 있는 것 같다. 탁한 백색 바탕에 검은색 현대 로고를 그려 넣은 현대단지가 이러한 경향을 따르지 않았던 유일한 예외였다. 


p.77

분명 프랑스 아파트단지의 이미지를 과도하게 단순화시키면 프랑스 아파트단지의 광범위한 다양성을 놓치게 될 것이다. 그러나 프랑스 아파트단지에 대한 전반적인 관찰에 충실하다면, 어떤 의미에서건 프랑스 아파트단지는 도시의 소외를 상징하며, 서울의 아파트단지는 이와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여 준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p.99

실제로 한국의 주택정책은 소형 아파트를 희생시켜 대형 아파트를 건설함으로 하위 계층을 주변 지역으로 내몰고 도심을 상층 계층이 차지하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을 가져왔을 뿐이다. 


p.182-3

박씨에게 아파트의 ‘깨끗함’은 ‘지저분하고 어수선하며’ ‘옛날 골목’과 ‘허름한’ 집들이 있는 신공덕동과 대조를 이룬다. 아파트와 그 동네가 ‘깨끗하다’는 말은 ‘더럽다’는 말과 상반되기 보다는 오래되어서 낡고 값어치가 떨어졌다는 의미와 상반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맥락에서 ‘깨끗하다’는 오히려 ‘최근의, 새롭다’를 의미한다. 동시에 이 말은 아직 사용하지 않은 사물에 관련되는 청결함과 깨끗함의 특성을 암시하는 ‘새롭다’보다 그 의미가 더욱 풍부하다. ‘깨끗하다’는 더 일반적으로 정결하며 바르고, 플라톤적 의미로 확장하게 되면 ‘정당하다, 진실하다, 좋다’를 뜻한다. 결국 “아파트는 좋다. 아파트는 좋은 주택이고 21세기 초반에 어울리는 주택이다”라는 것이 ‘깨끗하다’라는 형용사가 암시하는 것이다. 

아파트에 대한 가치 부여는, 한국인들이 ‘새로운 것’에 부여하는 의미를 드러낸다. 박씨의 이야기에서 재개발된 아파트단지와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 간에 놓인 대조는 물질적인 차원에만 머물지 않는다. 재개발은 산업화 이전의 농촌사회와 낡은 생활양식으로부터 해방된 도시산업사회의 이상을 상징한다.



# 논문을 옮긴 책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통계수치가 다양했다. 하지만 2003년 출간된 책이란 걸 고려했을 때도 (내 생각에는) 눈에 띄는 통찰을 찾기는 힘들었던 것 같다.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필자가 연구를 진행한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 이후로 고급형 아파트, 주상복합 등 등장 등 아파트 시장의 계층화가 더 심각해졌다는 것 아닌가 싶다. 


# 외국인 연구자의 한계를 안고도 이만큼의 실제 인터뷰와 필드워크를 행한 것이 존경스럽지만 한국 사회의 맥락을 깊게 파악하지는 못한 것 같다. 물론 그렇게 낯설게 봄으로써 얻은 긍정적인 의미의 생경함은 있지만.


# 여튼 일전에 들은 명성(?)에 비해 좀 불만족스러운 책이었다. 가장 큰 이유는 위에서 말한대로 outdated한 느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