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나타 살레츨, 선택이라는 이데올로기(후마니타스 2014)


p.10
왜 선택 앞에서 사람들은 그토록 무력해지는 것일까? 문제는 단순히 선진국 소비자들에게 선택할 수 있는 물품이 지나치게 많다는 데 있지 않다. 문제는 오늘날 만연한 선택 이데올로기가 점점 소비자들의 불안감과 부족감(feeling of adequacy)를 증가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p. 12
고도로 개인화된 우리 사회는 수백년 전부터 자본주의 발전의 초석으로 존재해왔던 '자수성가형 남성/인간self-made man'(뿐만 아니라 자수성가형 여성self-made woman)이라는 관념을 극단으로 밀어붙였다. ...

p. 13
선택 이데올로기의 역설은, 현실에서 선택의 여지가 점점 더 줄어든다 할지라도 성공하지 못한 것은 자기 잘못이라고 믿어버리게 된다는 것이다. 또 불안할 때 우리는 해야 할 것을 일러주는 권위자에게 너무 빨리 선택권을 넘겨버리고 그와 동일시한다. ... 하지만 우리는 선택 이후 어떻게 될지 예측할 수 없고, 선택과 더불어 오는 상실들을 피할 수 없다. 만약 그것을 피하고 싶다 하더라도 끝없이 연기시키는 것일 뿐이다. 그러니 우리는 다음과 같은 새뮤얼 존슨Samuel Johnson의 명언을 상기해야 한다. 어떤 인생을 선택할까 궁리하느라 실제 살아가는 일 자체를 망각해서는 안 된다("When making a choice in life, do not forget to live.").

p.19
후기 산업자본주의 이데올로기는 개인이 추구하는 향락에는 제한이 없는 것처럼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 후기 산업자본주의가 선택 이데올로기를 지지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더 정확히 말해 이는 자본주의의 지배를 영속화한다. (p. 26) 

p. 42
오늘날에는 '자수성가'한다는 것이 그리 간단한 일은 아니다. ... 경쟁에서 살아남는 것, 심지어 어느정도 성공해 부를 획득하는 것조차 흔하고 당연한 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중요한 과제는 자기창조다. 포스트모던한 전문직들에게는 삶 그 자체가 일종의 예술 창작 활동 혹은 도전적인 기업 경영, 즉 계속해서 개량하고, 개정하고, 개선해야 할 것이며, 성공은 그것의 가장 완전한 표현이다. 

p. 68
철학자들은 불안과 선택의 연관성을 오랫동안 주목해왔다. 키르케고르에게 불안은 자유로부터—즉, 가능성의 가능성을 직면해야 할 때— 나온다. 사르트르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은 주석을 달았다. 심연 앞에 선 개인이 불안한 이유는 자신이 심연으로 떨어질지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 심연에 투신할 자유가 있기 때문이다. 

p. 83~85
제이크 핼펀Jake Helpern은 Fame Jukies: The Hidden Truth behind America’s Favourite Addiction에서 유명인들의 개인 비서들이 어떻게 정체성을 발달시키게 되는지를 살펴본다. … 초반에 이들은 자신의 유명한 고용주와 동거동락하다시피 하며 점차 독립된 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어가기 시작한다. … 유명인의 비서에게 요구되는 것은 광신적 종교 집단의 일원에게 요구되는 것과 유사하다. 핼펀은 이렇게 지적한다. ‘유명인의 비서와 광신적 종교 집단의 일원은 자신이 중요한 존재라고 느끼게 되며—위대한 이들을 보좌하면서 권력에 너무 가까워진 그들은 권력을 거의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을 것처럼 느끼기도 한다 — 이는 중독적이다.’ … 대중잡지 <US 위클리>는 유명인을 친근하고 이웃 같은 현실의 사람으로 나타내고자 애쓴다. … 이 잡지는 스타 이름의 약칭(젠Jennifer Aniston)을 사용해 그녀도 우리와 다를 바 없다는, 유명인들도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같은 문제로 고민하는 그저 평범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심어준다. … 이런 이유로 유명인 되기는 누구에게나 가능한 선택지가 된다. 
유명인과 동일시하려는 욕망은 오스트리아 철학자 로버트 팔러Robert Pfaller가 명명한 ‘상호 수동성’interpassivity 개념을 도입해 보면 좀 더 복합적인 측면을 이해할 수 있다. 상호 수동성은 개인과 그 개인을 대신해 무언가를 경험해주는 대리인proxy 사이에서 일어난다. 가령 세르비아에서는 상을 치르는 사람들이 대신 애도해줄 여성들을 고용해 장례식장에서 곡을 하게 한다. 불교도에게는 자신을 대신해 기도해주는 마니차가 있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결코 보지 않을 영화를 녹화하는데, 어떤 의미에서는 녹화기가 그들을 대신해 영화를 봐주기 때문이다. 

p. 87~88
… 우리는 건강조차도 매매할 수 있는 상품으로 인식하게 되었고, 이는 선진국에서 의료 서비스가 운용되는 방식에 영향을 미쳐왔다. 현재 의료 서비스에서는 선택과 자비 지배라는 관념을 예찬한다. 의사는 더는 권위자를 자처하며 환자에게 가장 좋은 치료법을 권하지 않는다. 요즘은 그저 환자에게 선택지들을 고지하고 환자가 결정하도록 하거나 동의(또는 거부)를 표하게 하는 경우가 흔하다. … 
현재 우리는 DIY 윤리를 몸에도 적용하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가 자기 몸에 대한 책임과 통제를 스스로 떠맡으려 할수록 질병이나 허약함, 병원 치료와 같은 문제들은 점점 더 괴로운 일이 된다. 건강 문제는 궁극적으로 개인의 잘못이 되고 있다. … 우리는 심지어 ‘스트레스를 관리’하면 된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병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 다른 부분—자기치유self-healing—에 실패했다며 죄책감을 느끼는 것이다. 
자기 치유 이데올로기가 많은 나라에서 정치인들이 공공 의료 서비스를 민영화하기 시작한 시기에 급격히 번성했다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p. 105
뒤푸르는 계몽주의 시대 초반에 개인이 자신의 준거를 바로 자신에게서 찾게 되었다고 본다. 바로 이때부터 주체는 자기 존재를 확인하는 데 더는 외부의 존재—신, 나라, 혈통—를 참조하지 않았고 어떤 면에서는 자기 자신이 자기 고유의 기원이 되었다. … 뒤푸르는 탈근대 사회에는 더는 상징적 대타자, 즉 주체가 요구를 표명하고 문제나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권위’가 되는 불완전한 실체는 없다고 결론 짓는다. 그런 사회에서는 시장이 대타자가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