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에 해당되는 글 67건

  1. 2014.07.15 140715 무한 / 존 배로 / 키스 자렛 1
  2. 2014.07.10 140710 쇼핑
  3. 2014.07.06 140706 pat me on the back
  4. 2014.06.16 140616 2
  5. 2014.06.15 140615 외식의 품격과 최강록
  6. 2014.05.11 먹사 외
  7. 2014.04.12 140412 철부지
  8. 2014.03.22 140322 3월의 요리 2
  9. 2014.03.19 140319 박은지 부대표
  10. 2014.03.14 140314 카포티. 노예 12년 2

140715 무한 / 존 배로 / 키스 자렛






하늘이 캄캄한 것은 우주가 몹시 늙었고, 아주 크고, 따라서 거의 비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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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오르크 칸토어는 다섯명의 형제와 함께 유복한 환경에서 자라며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좋은 사립학교에 다녔다. 게오르크는 재능이 많았다. 그는 친척들처럼 음악가나 미술가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십대 시절에 점점 더 수학, 물리학, 천문학에 빠져들었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의 공부를 분야를 가리지 않고 적극 후원했고 운명에 대한 종교적인 믿음을 아들의 영혼에 확고하게 심어주었다.




(그의 스승이었던) 크로네커에 따르면 무한집합에 관한 모든 논의는 불법과 다름없다. 왜냐하면 그 논의는 무한집합이 존재한다는 가정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크로네커는 수학을 자연수에서 유한한 단계를 거쳐 도출되는 것들만으로 이루어진 체계로 정의하고자 했다. 그가 어느 연설에서 진술한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은 그 목표를 표현한다. "신은 자연수를 창조했고, 그 밖의 모든 것은 인간의 작품이다." (...) 크로네커는 어떤 것을 구성하는 방법을 명시적으로 기술할 수 없으면 그것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다. 다시 말해 단계적인 구성 방법을 제시하지 않고 존재의 필연성을 이야기하는 증명들을 허용하지 않았다. 요컨대 크로네커는 대부분의 수학자들이 믿는 것보다 더 좁은 수학을 믿었다.




무한으로 가는 안내서 / 존 배로






요즘은 문학보다도 낭만적인 건 물리학이란 생각을 한다. 이 책은 정말 소설보다도 더 문학적이고 흥미롭다! "하늘이 캄캄한 것은 우주가 몹시 늙었고, 아주 크고, 따라서 거의 비어 있기 때문이다."라니! 사실을 말하는 것만으로 이렇게 낭만적일 수 있다. 천체물리를 한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분명 이 물질 세계의 비밀을 아는 기분일 거야...






John D. Barrow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수리과학 교수이자 밀레니엄 수학 프로젝트 책임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우주론과 천체물리학에 관한 17권의 책과 320편이 넘는 논문을 쓴 세계적인 과학자이자 저술가다. 영국 왕립협회의 회원이면서 케임브리지 클레어홀칼리지의 부총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는 그는 왕립글래스고철학협회에서 수여하는 켈빈 메달과 마이클 패러데이 상을 수상했다. 물리학, 천문학, 수학 등 과학의 전반적인 양상을 역사적, 철학적, 문학적으로 분야를 넘나들며 탐구한 그의 책들은 전 세계 28개국 언어로 번역되어 과학 전공자뿐 아니라 일반 독자들에게도 폭넓은 사랑을 받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무영진공》 《무한으로 가는 안내서》 《우주의 기원》 《수학, 천상의 학문》 등이 있다. 지은이는 연극 〈무한(Infinities)〉을 집필하여 상을 받기도 했다.






연극을 집필하는 수학자라니 이렇게 멋질 수가! 앤드류 포터의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에 나오는 교수가 꼭 이런 사람이 아닐까. 한국어로 번역된 책은 절판된 무영진공을 제외하고 다섯권이다.




케임브리지에서 재직하고 있다니 궁금해서 찾아보니 생각보다는 덜 지적으로 생겼지만, 여튼 강의가 있어서 링크.









강의 자체가 재밌는진 모르겠지만...




(무려) 코페르니쿠스 페스티벌에서 열린 55분짜리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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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를 크게 질렀다. 역시 이런 건 혼자 할 수 없는 일이었어... 일단 빼도박도 못하게 만들어버리고 시작해야 하는 일이다. 여튼 스페인이라니! 나도 드디어 구라파 대륙을 밟아보누나. 아하하하하. 벌써부터 헤밍웨이(;)와 카탈로냐 찬가와 가우디와 빌바오와 등등등등을 읽고 가겠다는 의욕(만) 넘치는데... 그것보다 여행 계획이나 잘 짜서 가면 다행이겠다. 포르투갈도 정말 가보고 싶은데 여유가 될까. -_ㅜ 포르투는 정말 지상낙원이라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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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까페에서 흐르던 음악이 너무 좋아서 찾아보니 이 음반이었다. 겨우 지난달에 나온...

공교롭게도 더블베이스 연주자인 Charlie Haden은 나흘 전에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좋은 ECM 음반을 찾을 때마다 뭔가 뿌듯한 이 느낌 뭐지? ㅎ_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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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키스 자렛의 쾰른 콘서트













140710 쇼핑


잡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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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이 끝났두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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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눌려 있던 스트레스를 온갖 쇼핑으로 풀고 있다. 

최근에 산 것들: 


아침대용식: 

연세 무첨가두유 16팩 (정말 니맛도 내맛도 아니지만 다른 달지 않은 두유 찾다가 정보의 홍수에 지쳐서 그냥 다시 시켰다)

날씬현미 (마침 두유가 떨어졌는데 정말 아침에 배가 너무 고프고 책상에 쟁여놓은 간식도 다 떨어져서...)

견과류 (계속 살까 말까 고민하던 펀샵의 닥터 넛츠! 비싼데 맛없기만 해봐라.)


리빙:

실커튼 (더운 날씨에 맘껏 헐벗고 뒹굴 수 있도록. 변태 시선 차단! 텐바이텐의 2~3만원짜리와 네이버 체크아웃의 5천원짜리 중에 고민하다가 싼 거 사봤는데 무난하고 멀쩡해서 뿌듯.)

적외선 경보기 (우리 집이 4층이긴 하지만 문제의 창문 바깥에 사람이 2명은 누울 수 있을 만큼 넓은 창턱이 있는 게 함정이라서 105데시벨로 울린다는 적외선 경보기를 어제 새벽 두시에 충동 구매했다. 방범합시다 방범...)

화장품 정리대 (루나파크 포스팅을 보고 산 화장품 정리대인데 아직 배송이 안 옴. 유용하기를 바란다!)


옷:

린넨 셔츠 (뒤늦게 유니클로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는 린넨 셔츠 구입. 노란색과 남색만 남아 있어서 남색 구입.)

스카프 (사무실에서 두르려고 샀는데 두르는 게 그다지 편하진 않지만 여튼 너무 예쁘고 보드랍고 시크한 재질. 내가 꿈꾸던 스카프구나! 니가 유니클로에 있을 줄이야. 유니클로 스릉흔다...)

구멍 뚫린 나시 (나의 둥글고 좁은 어깨를 어느정도 가려주는 구멍 뚫린 나시. 디스트로이드룩이라고 하나여 이런 거. ㅋㅋㅋ)



이 모든 것을 이번 주에 샀더니 통장이 시름시름 앓고 있다. 

그러나 아직 아침대용식은 아무것도 오지 않아서 나는 지금 너무 배고프고 어지러울 뿐이고... 

출근 전에 아침을 먹고 오는 건 무리이니 사무실에서 뭐라도 먹는 게 좋은데

1년간 적합한 대용식을 찾아 헤맸지만 마땅한 대안이 없다. 


doctor certified 가족성고콜레스테롤혈증 환자로서 -_- 식단 조절에 관심을 갖기로 했는데

과일(사과/바나나)을 먹으면 좋겠지만 씻어야 하고 여튼 아침에 냉장고에서 꺼내와야 하니 매번 까먹는 게 함정...

게다가 바나나는 금방 물러버리니까...


아. 배고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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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706 pat me on the b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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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속상한 일들이 좀 있었다. 내일이 마감이라 오랜만에 집에서 책상에 앉았다. 유튜브 팻 플레이리스트를 틀어놓고 어두운 조명에 의자에 앉아 있으니 비록 교정을 보고 있지만(?) 기분이 나쁘지 않다. 


그런 뜻으로 한 말은 아니었는데, 내가 무신경했다. 속상하다. 확인할 게 300페이지나 남았는데 속상해서 일도 안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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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엔 병문안을 다녀왔다. 무책임하고 바보 같은 놈이지만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름 많이 걱정했지만, 너무 걱정한 티를 내고 싶지 않기도 했고 엄청 걱정한 척하고 싶기도 했다. 내가 걱정하는 것이 어느 정도로 진심인지 나도 잘 모르겠더라. 보고 싶기도 했고 안 보고 싶기도 했고, 걱정하고 있다고 알려주고 싶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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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튼 병문안을 다녀와서 몸도 마음도 가라앉아 있었는데 더 속상한 일이 생겼고, 그냥 모든 것이 어렵고 힘들게만 느껴진다. 이렇게 오래 노력해도(아니 이렇게 오래 노력했기 때문에) 섭섭하고 속상하게만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 어찌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14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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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간의 집중적인 음주로 속을 아주 버렸다. 주말 내내 좀비처럼 지내면서 금주를 결심했건만 오늘 또 갑자기 재밌는 만남이 생기는 바람에 칭따오를 마셔버렸네! 하지만 여튼 속을 버려서 그런지 두세잔밖에 안 마셨는데도 속이 조금 안 좋았다. 왜 이렇게 절제를 모르고 술을 처마셨는지... 


여튼! 그 와중에 발견한 아주 맛있는 소주가 있으니 도자기 명가 광주요에서 만드는 '화요'! 19도 25도 41도로 다양한 도수로 선택이 가능하며 토닉워터와 레몬이 함께하면 정말 상큼하고 여름에 딱 어울리는 알콜이 되지 말입니다. 맛없는 맥주 마시다가 화요를 한입 맛보고 눈이 아주 말똥말똥해졌다 ㅜㅜㅜㅜㅜ 타코와사비와 곁들여 먹었는데 정말 신세계를 맛보았다. 요즘은 맥주가 딱히 입에 맞지 않는 대신 도수 높은 술이 매우 끌리는데 맛있다고 개념없이 마시다간 저번주 같은 사태를 맛보게 되므로 반드시 절제해야 합니다...


어김없이 여름은 돌아오고 쬐어내리는 자외선이나 웅성웅성한 여름밤의 사람들 말소리가 정말 술을 부른다. 술친구가 해외로 출타를 해버려서 나는 이 넘치는 열기를 이 여름 동안 어떻게 주체해야 할지 모르것다. 사고만 안 치도록 조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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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가 변화하는 모습을 보면서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된다. 사람들이 각자의 성정에 따라 각양각색으로 변화에 반응하는 모습이라던가(반응은 대개 두가지로 나뉜다. 냉소와 분노.) 신뢰를 기반으로 해야 하는지, 불신을 기반으로 해야 하는지, 신뢰했을 때 잃어버릴 수 있는 것들과 불신했을 때 피할 수 없이 벌어질 틈새. "환상을 갖지 마"라는 말을 들었을 때의 황당함. 


이곳의 사람 사이의 알력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갑갑하다. 다들 '그래도'라는 생각을 하는 것에 동의는 하지만서도 그게 발목을 잡는 가장 큰 문제점이기도 하다. 노력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것은 알지만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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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엑스맨: days of the future past 와 Her를 봤는데 둘 다 꽤나 만족스러웠다. 엑스맨은 전편들을 처음부터 보고 싶어졌고 Her는 다시 한번 보고 싶다. 둘 다 여러모로 생각할 거리가 많은 영화라서 즐거웠다.


그것보다도 일단 매그니토가 겁나게 멋있어서 반해버렸지 뭡니까. 아아 파스밴더여...


나는 '이상형'으로 테스토스테론이 불끈불끈하는, 에스트로젠이라곤 한방울도 없는 남성 캐릭터를 꼽는데(물론 이런 남성을 실제에서 만나고 싶느냐는 또 다른 문제다) 파스밴더가 분한 매그니토나 격투기 선수로서의 추성훈... 하여간 근육이 불뚝불뚝한 남성에 대한 어떤 선망이 있다. -.- 아 부끄러워? 물론 실제로 이런 사람이랑 사귀라면 무섭고 어려워서 곤란하겠지만, 영화 캐릭터로 나와버리면 반해버리고 마는 것이다. 내가 만나본 남자들은 (그리고 주변의 남자들은) 남성성과 여성성을 균형 있게 갖춘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것이 뭐랄까 현대인으로 살아가는 데도 도움이 되는 것 같고(꼭 그렇진 않나?) 아마 내가 속한 계층이나 문화적 섹터에서 여성성을 발휘할 여지가 많았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 현대사회가 남성성의 어떠한 부분을 경외시하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모르것다 잘 생각을 안 해봐서...


좀 이상한 얘기인 것 같기는 하지만 여튼 요즘 아이돌들을 보면 남성성의 입지는 점점 좁아지는 것 같은 느낌도 들고, 오히려 뭔가 남성성의 특수한 부분(생존력?) 표본으로 떼어놓고 전시하는 모양새 같기도 한데(예: 짐승돌, 군대 예능, 정글) 음... 뭔가 말이 잘 안 되는 것 같기는 하다. 하여간 나는 파스밴더가 멋졌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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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잡소리는 그만하고 ㅋㅋㅋㅋ

이 시대 최고의 댄스곡은 모다??????????




140615 외식의 품격과 최강록

http://ch.yes24.com/Article/View/25459


"7평 정도의 점포에서 하루 종일 무슨 요리를 했냐고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많더군요. 예, 하루 종일 수비드를 했습니다. 고기뿐 아니라 어패류, 채소까지 들어오는 재료의 80퍼센트는 수비드를 이용해 반찬으로 만들었습니다. 고기 종류와 부위별로 가열온도가 각각 다르기 때문에, 다양한 데이터를 수집하고 테스트를 해야 했습니다. 몇천만원을 들여 수비드 기구를 구비하고 일본에서 특수비닐을 사오기도 했지요. 월세 내는 날이 빨리 다가온다는 걸 느끼게 해준 건 아마 이 수비드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사실 수비드로 요리계에서 혁신의 한 획을 긋고 싶었으나, 제 인생에서 아픔의 한 획을 긋고 끝났습니다. 아예 ‘수비드반찬전문점’이라고 간판을 내걸어볼걸 그랬습니다." - 최강록, 요리덕후.





덕후는 이런 사람을 덕후라고 하는 거다. 마셰코 보면서 느낀 건 이런 인간도 있는 사회에서 나 같은 헐랭이덜랭이는 승산이 없다! 물론 이런 덕후도 (시장에서는) 승산이 없다. -.- 왜... 망했을까요...


최강록이 어리버리한 덕후라면 


반면에 요즘 읽고 있는 에세이인 [외식의 품격]에서는 자신이 하는 일에 한없이 까다롭고 주변 사람들의 짜증을 적잖이 유발할 것 같은 아저씨를 만날 수 있다. 


"무엇이 문제일까. 기준이 없는 게 문제다. 피자와 파스타로 돌아가보자. 전자의 근원은 빵이다. 반죽 맛으로 먹는 음식이고, 실제로 그렇게 즐긴다. 파스타는 또 어떤가. 현지에서는 ‘면맛으로 먹는 음식’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따라서 소스는 면을 가리지 않는 정도로 조금만 더하는 게 맞다. 그래서 평가는 때로 아주 간단하다. 토핑이 넘쳐나는 피자, 소스가 흥건한 파스타는 잘못 만든 음식이다. 원칙을 따르지 않았으니 당연히 맛이 없고, 사실 먹을 필요조차 없다." - 외식의 품격 / 이용재


피곤하지만, 읽다보면 '짜증'을 부리는 이유와 기준이 명확하기 때문에 납득이 잘 간다. 여튼, [외식의 품격]도 꽤 재밌다. 같이 산 [18세기의 맛]은 어떨지 잘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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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외로 마스터셰프코리아 시즌 3은 재미도 전 시즌에 비해서 떨어지고 연출도 너무 과하다. 그래도 애정을 가지고 언젠가 봐야지... 요즘 나의 밥메이트는 무한도전 초기 에피소드. 


새로 뭘 보는 건 굉장히 힘들고 에너지를 요하는 일이다.



먹사 외


아이폰이 생긴 이후로 사람들이 왜 음식 사진을 찍는지 이해하기 시작했다



보리 옆 텔레토비 동산에서 피크닉한 날


올해의 첫 빙수


청포도


 볼로네즈 파스타

말린 방울토마토 넣었는데 맛났다


가지에서 수분 뺀다고 소금을 너무 많이 뿌려서 망한 가지 라자냐


성공한 베이컨 버섯 크림 파스타

파스타 그릇을 산 후로 파스타만 주구장창 해먹고 있음


국물이 맑았던 순천 웃장 국밥


순천만 게장 백반


YG사옥 옆의 손탁 커피

사장님이 엄청 친절 융드립을 해줬다


"돌아다니면서 남의 집 화초나 화분을 훔치는 사람 마음은 어떤 마음입니까?"

화분 도둑질당해서 빡친 101호


목련 나무인 것 같은데 잎이 무성했다



저번의 성공을 기억하며 만들었으나... 

표고버섯은 잘 안 어울리데스요


냉장고에서 3주째 방치된 토마토를 마리네이드함



봄비 와서 기분이 좋다

무념무상 먹을 것만 생각하자










140412 철부지

4년 만에 들여다보는 문구. 


Skepticism is a resting place for human reason, where it can reflect upon its dogmatic wanderings, but it is no dwelling place for permanent settling. Simply to acquiesce in skepticism can never suffice to overcome the restlessness of reason. - Immanuel Ka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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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다른 삶을 산 사람의 일기를 볼 때 느껴지는 노스탤지어랄지, 어떤 블로그를 읽다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물론 자신의 나이보다 5년은 일찍 산 것 같은 그 사람만의 아우라가 있지만. 잘 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바라볼 수록 짠한 마음과 존경심이 동시에 드는 사람이다. 자신의 일에 성실한-그럴 수밖에 없는-사람이기도 한 반면 그에 수반되는 감정노동을 견딜 수 없는 성정에 한없이 고생할 수밖에 없기도 하다. 


한동안 맹목적인 사람이 가장 무섭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하나의 이념 혹은 이상에 푹 빠질 수 있는 사람이란 얼마나 대단한가를 생각하고 있다. 어떠한 이상을 실현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를 위해 투쟁한다는 것은 비웃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아무리 터무니없는 이상이어도. 교조주의를 벗어나지 못한 유년의 이성도 무섭지만 회의주의에 안주하는 이성(=나?)이 더 무섭다. 한번도 맹목적이어보지 않은 사람은 진화할 수 없으니까. 그러니까 살면서 한번은, 아니 한번 실패하고도 또다시 푹 빠지고, 그를 후회하고 회의하고 탓한 후에야 다시 믿을 수 있는 거니까. 어떤 이의 기억을 뒤쫓으면 저 사람이 보기에 나는 얼마나 철부지인가,하는 생각이 들면서 새삼 시간이 아득해진다. 어쨌든, 언제든지 반성하고 싶으면 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반성이라곤 모르는 건방진 나는 주기적으로 자기반성을 해야 하니까. 


존경해 마땅한 사람들과 치열해 마땅한 시간에 대한 존중을. 


시간이란 무시할 수 없는 것이지만 쉽사리 무화되는 것이기도 하다는 것을 요즘 만나는 여러 사람에게서 발견한다. 스무살의 사람들은 대개 비슷하다. 스물다섯의 사람들은 조금씩 다르다. 마흔의 사람은 정말 소수의 몇을 빼놓고는 다시 천편일률적이다. 다만 그 몇명은 아주 다르다. (아직 그 이상의 사람은 가까이서 많이 볼 기회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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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토요일에 꾸무럭대며 나와서 이제 25페이지 남았다. 사진 자리도 잡아야 하고 다시 검색도 한번 해야 하는데... 나는 왜 이렇게 비효율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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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리 언니의 라디오가 끝났다. 마음의 평안을 주던 위클리 40분이여 안녕. ㅜㅜ 



140322 3월의 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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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아침엔 대개 힘이 넘쳐서 열심히 먹을 것을 만든다. 한번 해보고 성공해서 여러번 해먹은 시금치 계란 오믈렛(이라고 레시피에 이름이 써 있었지만 엄밀히 오믈렛은 아닌 셈). 그냥 마늘을 조금 넣고 익힌 것 뿐인데 익힌 시금치가 이렇게 맛있는 것인 줄이야! 


단점은 시금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만 한 봉지를 사서 주중에 국수를 몇번 해먹고 주말에 이걸 한번 해먹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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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보고 볼로네즈소스를 만들었다.


그대로 만들자면 밤새 끓이면서 맛을 내야 하지만, 그럴 것까지 없고 대충 조금 끓이다 말았다.

특이한 점이라면 화이트와인과 우유가 들어간다. 

3개월 전에 따서 한잔 마시고 잊혀진 편의점산 화이트와인을 구제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화이트와인을 넣으니 고기 잡내가 없어져서 매우 좋다.

우유의 역할은 잘 모르겠으나(토마토소스에 우유를 넣는다니 이게 무슨 해괴망칙한 소리?)

맛이 더 풍부해지겠지 아마도...


나는 이걸 만들고 C는 옆에서 바나나머핀을 만들었는데,

집에 머핀 틀이 없고 마들렌 비슷하게 생긴 조개모양 틀밖에 없어서 shell-fin이 되고 말았다.

기름이 과하게 들어가서 맛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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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가 좋아하는 라자냐를 만들었다. 나는 토마토소스, C는 베사멜소스를 만들었다. C는 라자냐라면 거의 달인이다. 나는 저번에 만든 볼로네제소스 레시피를 재탕했다. C는 자기가 만든 라자냐 중에 제일 맛있다며 감탄했지만 나는 좀 느끼했다. 토마토소스를 더 많이 넣고 치즈도 더 많이(최소한 세종류) 넣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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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엔 죽어가는 감자들(어째서 감자가 폭신폭신한 거지?)과 싱크대 옆에서 음식물 쓰레기가 되어가던 당근을 구제해 감자스프를 만들었다. 대충 감으로 만들었는데 맛있어서 성공. 다만 좀 짜다. 어쩌다보니 버터를 무지하게 많이 넣어버렸는데 거기에 소금이 들어 있다는 생각은 못하고 소금을 더 추가한 것이 패착. -.-




이렇게 만들었다:


1. 감자와 당근을 깍둑 썬다. 양파도 다진다. 버터에 다진 마늘을 볶아 향을 내고 나머지 재료를 다 넣고 잠시 볶는다. 귀찮으니까 한눈 팔다가 조금 태운다. 

2. 유통기한이 9개월 지난 치킨스톡 큐브를 넣고 스톡을 만들어서 양껏 붓는다. 너무 물을 많이 넣었기 때문에 한참 끓이면서 재료도 익힌다. 

3. 치킨스톡을 넣기 전에 밀가루를 넣어서 볶았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스스로를 욕하며 다른 팬에 따로 베사멜소스를 만든다. 이 과정에서 버터가 과다하게 첨가되었다. 

4. 베사멜소스 버터:밀가루 비율을 기억하지 못해서 밀가루를 넣었더니 크럼블 조각처럼 되었다. 묽어질 때까지 버터를 첨가한다. 대충 볶다가 밀가루를 조금 태운다. 우유를 넣어서 수습한다.

5. 대충 그럴듯해보이는 소스를 한참 졸아든 야채+스톡에 붓는다.

6. 그전에 야채+스톡을 믹서에 가는 게 낫지 않았겠느냐는 생각이 나지만 이미 늦었다.

7. 이미 끈적해질 대로 끈적해진 혼합물을 믹서에 넣고 간다. 뜨거운 걸 넣었더니 믹서 통이 팽창해서 뚜껑이 안 열린다. 

8. 우여곡절을 거쳐서 대충 야채 조각들을 갈고, 다시 냄비에 붓는다. 너무 되다. 우유를 첨가하려 하지만 우유가 다 떨어졌다.

9. 포기하고 후추와 소금으로 간하고 튀긴 베이컨과 파슬리를 올려서 그냥 먹는다.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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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서 커피를 만들어두고 눈곱도 안 떼고 스프를 만들다보니 커피가 다 식어버렸다. 과연 전자레인지에 커피를 돌려도 될 것인가 고민하다가 드디어 돌려봤다. (여태 여러번 고민함) 성공적으로 커피가 데워졌고 참고로 전자레인지가 영양분을 파괴하네 어쩌네네 하는 것은 다 괴담이라고 한다. 자취를 시작하고 전자레인지에 대한 막연한 저항감으로 전자레인지를 집에 들이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작년에 이사를 하면서 엄마가 매직오븐을 구매하겠다고 해 본가의 전자레인지를 업어왔다. 10년 묵은 전자레인지지만 좋은 제품이라 쌩쌩하게 돌아가고 옆에 간이 토스트기까지 달려 있다. 단점은 매우 크다는 것.


전자레인지가 있으면 냉동식품만 먹게 될 것이라는 나의 망상과 달리 전자레인지는 나의 식생활을 더 나은 쪽으로 변화시켰다. 밥솥에 48시간 보온되어 누런 색으로 변하고 쩔은 내가 나는 밥 대신 냉동실에 얼려둔 밥을 전자레인지에 돌려 따뜻하고 폭신한 밥을 먹을 수 있게 되었고, 이제는 식은 커피도 버리지 않고 데워 먹을 수 있다. 사람들은 새로운 기술이 예전의 정서를 잃게 할까 두려워하지만, 각각 다른 시간에 식탁에 앉는 제멋대로인 아이를 둔 주부가 매번 가스불을 켜서 반찬을 데우지 않아도 된다거나 요리에 많은 시간을 투자할 여력도 이유도 없는 사람들이 간편하게 맛있는 식사를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은 간과한다. 직접 노동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노동을 낭만화하는 것이다. 


비 윌슨에 의하면 근대 이전에는 되도록이면 가공을 많이 한 요리가 고급요리로 여겨졌다고 한다. 'refined'라는 단어는 요즘 '부유하다' '세련되다'라는 의미로 쓰이지만 원래는 음식을 가공한 정도를 가리켰다고 한다. 중세의 주방에서는 하인 여러명이 재료를 찧고 빻고 치댔다. 손님들은 '부인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손이 많이 간 음식을 대접받을 때 주인의 경제적 계급적 지위를 짐작할 수 있었다. 오랜 시간 동안 노동력을 줄여주는 부엌 기술의 발전이 정체된 것은 음식문화가 하인을 부릴 수 있는 귀족들에 의해 주도되었기 때문이다. 갑자기 이 얘기를 왜 했지? 


어쨌든 아래는 <포크를 생각하다>에서 전자레인지 관련 부분:


"요리 자체의 발명을 제외하고, 부엌 기술 분야에서 등장한 최고의 발전은 가스불이었다. 가스불은 불 관리에 수반되는 오염, 불편, 시간 낭비로부터 많은 사람들을 해방시켰다. 거기에서 한발 더 나아간 것이 전자레인지다. 세계 각지의 비좁은 도시 부엌에서는 전자레인지가 주된 열원으로 쓰인다. 요리사들도 전자레인지를 많이 쓴다. 그래도 전자레인지를 둘러싼 논란은 여전하고, 우리는 한때 불꽃에 품었던 애정을 전자레인지에는 좀처럼 품지 못한다. 


전자레인지는 많은 일을 훌륭하게 해내면서도 공을 인정받지 못할 때가 많다. 전자레인지는 생선을 촉촉하게 익혀주고, 옛날식 찜 푸딩을 몇분 만에 만든다. 전자레인지의 재주를 빌리면 부엌을 최대한 적게 어지르면서 설탕을 캐러멜화할 수 있고, ... 완벽하게 포슬포슬한 바스마티 쌀밥도 뚝딱 지어낸다. 


그러나 전자레인지는 즐거움 못지않게 공포를 일으킨다. 전자레인지가 1950년대에 처음 시판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이 '불 없는 오븐'에 당황했다. 요즘도 많은 사람들이 이 도구에 당황하고 걱정한다. 전자레인지는 1945년 레이시언 사에서 일하던 퍼시 스펜서가 발명했다. 스펜서는 당시 군사용 레이더를 연구하면서 마이크로파 생성에 쓰이는 진공관인 마그네트론을 개량하고 있었다. ...


요즘도 전자레인지 조리를 미심쩍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사람들은 오랫동안 건강 측면에서 전자레인지를 두려워했다. 최근 모델들이 1mW/cm2라는 지극히 깐깐한 복사선 노출 기준을 지키는 데에 비해 구형 모델은 종종 10mW/cm2 이상을 냈던 것이 사실이지만, 어느 경우든 우리가 불꽃에서 60센티미터쯤 떨어져 있을 때의 노출도(50mW/cm2)보다는 훨씬 더 낮다. 현재까지의 모든 증거로 보아 전자레인지는 건강에 무해하다. 전자레인지 조리는 다른 조리법과는 달리 불가해하게 느껴진다. 그것은 사실 공평하지 못한 편견이다. ...


전자레인지의 진정한 단점은 기구 자체가 아니라 사용방식이다. 전자레인지는 안타깝게도 전후 간편식의 시대에 시장에 등장했다. 1989년 영국 시장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전자레인지의 가장 흔한 용도는 조리가 아니라 '다시 데우기'였다. 대부분의 부엌에서 전자레인지는 요리의 한 형태가 아니라 요리를 회피하는 방법이다. 우리는 냉동식품을 전자레인지에 넣고서 삐 소리가 날 때까지 망연히 기다린다. 전자레인지는 온 가족이 같은 시각에 식탁에 둘러앉을 필요 없이 언제든 따뜻한 음식을 먹게끔 해주었다. 


이것은 우리가 유지해온 사회적 생활의 종말을 뜻할까? 역사학자 펠리페 페르난데스-아르메스토는 전자레인지가 해로운 방식으로 "사회를 바꿀 수 있다"고 본다. 전자레인지가 우리를 '사회성 발달 이전 단계'로 되돌릴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하기야 전자레인지를 보고 있자면 우리가 불을 발견한 일은 없었던 것만 같다. 인류는 역사 내내 불을 가두고 통제하려고 애썼다. 불은 사회적 생활의 구심점이었다. ... 우리가 불을 그리워하고 생활에서 불이 사라진 것을 아쉬워한다는 징후도 간간이 보인다. 아마추어 요리사들은 해가 났다 하면 잽싸게 바베큐 도구를 꺼내어 불꽃으로 소시지를 굽는다. 그 열정을 보노라면 정말 오늘날의 요리는 구심점을 잃었는지도 모르겠다. 전자레인지 앞에 둘러앉아 밤늦도록 도란도란 대화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전자레인지의 각진 유리몸통은 우리의 손도 마음도 덥히지 못한다. 그러나 모든 것이 깡그리 사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요리 과정은 설령 관습적인 옛 방식을 따르지 않더라도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기 마련이다. 전자레인지가 옛 화덕처럼 가정의 구심점이 될 수는 없다고 믿는 사람이 있다면, 아이들이 불가에 모인 수렵채집인처럼 전자레인지 앞에 옹그린 채 경이로운 표정으로 잠자코 팝콘이 튀겨지기를 기다리는 광경을 보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비 윌슨 / <포크를 생각하다> 中

140319 박은지 부대표

조금 늦은 추모.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집에 온 토요일이었다. 뭘 했는지 기억도 안 나지만 오랜만에 즐겁고 한가로운 주말을 보내고 동네 산책을 하고 집에 돌아왔다. 약간 피곤한 마음에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침대에 누워 뒹굴대면서 휴대폰을 열었고, 박은지 부대표의 사망 소식을 읽었다. 모르는 이였지만 간단한 설명만으로도 그녀의 삶이 눈앞에 스쳐 지나가는 느낌이었다. 그 순간의 고요하고 적막했던 집 안의 공기를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 같다. 


타임라인은 잠깐 소란했을 뿐 금방 평소의 씨니컬함과 유희를 되찾았고, 당원 게시판의 조회수는 대부분은 몇백, 많아봤자 3천에 그친다. 몇주 전의 일이지만 버스에서 멍하니 있을 때, 소란스럽게 대단한 척하는 사람들이 가득한 온라인을 들여다볼 때, 문득문득 머릿속에 그녀의 이름이 스친다. 유령 당원에 사이비 당원 주제에 꼴랑 몇푼 안 되는 당비가 아깝다고 생각하고 있던 내가 부끄럽다.




http://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6648.html


140314 카포티. 노예 12년

아아 일이 더뎌서 큰일났다. 


번역문을 다루는 일은 은근히 재미가 있다. 유유에서 나온 <번역자를 위한 우리말 공부>는 정말 도움이 되는데, 저자의 말투가 너무 나를 혼내는 거 같아서 마음이 뜨끔뜨끔하다.


미문, 아니 최소한 정리된 문장을 쓰려는 노력을 평소에도 해야겠다. 머리에서 나오는 대로 단어를 받아쓰지 말고...


이 책은 심지어 보도자료도 위트와 리듬감이 있다. 


"참나무에 대해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떡갈인지 신갈인지 갈참인지 졸참인지 굴참인지 상수리인지 구별할 수 있다. ‘발효된다’는 통칭 표현 대신 젓갈이 ‘삭으면’, 김치가 ‘익으면’, 메주가 ‘뜨면’처럼 맥락에 맞게 섬세하게 표현하면 더 근사할 것이다. 한국 사람이라면 명태를 가리키는 여러 용어를 안다. 새끼 명태를 노가리라 부르고, 얼린 것을 동태라 하고, 바싹 말린 것을 북어라 하며, 얼렸다 녹였다를 반복한 것을 황태라 부른다. 코다리는 꾸덕꾸덕할 정도로만 말린 명태다. 섬세한 한국어 표현을 익히지 못한 외국인은 ‘말린 명태’, ‘얼린 명태’처럼 표현할 텐데, 이 표현을 잘 아는 한국 사람은 그들에게 제대로 알려 주고 싶은 마음이 들 것이다. 통칭하는 표현은 편리하지만 원뜻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데는 한계를 지닌다."


크흐.


이번 주에는 <노예 12년>과 <카포티>를 봤다.


<노예 12년>은 정확히 제목에서 예상할 수 있는 만큼의 영화였고, 아무것도 새롭거나 놀랍지 않았다. 이런 영화가 그렇게 많은 상을 탔다는 건 슬픈 일이다. 'White guilt'라는 해석이 가장 정확하겠지. 한스 짐머의 음악조차 작위적이고 상투적이었다. 브래드 피트는 '착한 캐나다인'으로 나오는데, 정말 21세기에서 갑툭튀한 것 같은 얼굴과 말투여서 우스웠다(그래도 난 피트를 좋아하지). 아~ 시간 아깝다. 때로는 나쁜 영화보다도 평범한 영화가 더 나쁘다. 


<카포티>는 호프먼의 말을 알아듣기가 너무 힘들었지만, 좋았다. 더이상 그의 영화를 볼 수 없다는 것에 새삼 애도를. 하퍼 리로 분한 캐서린 키너는 정말 우아했다. 


*


지난 주에 공항에 가는 길에 또 황당한 일이 있었다. 


반차를 내고 C를 맞으러 공항에 갔다. 약간은 두려움에 늑장을 부리는 바람에 성급하게 일을 마치고 나와야 했다. 아니나 다를까 조판자 선배한테 파일이 안 열린다는 연락. 멀쩡하게 열리던 파일이 거기서 왜 안 열리는지 알 방도가 없었다.


버스를 한참이나 기다려 타고, 달뜨고 긴장된 마음으로 창밖을 구경하며 가고 있는데, 반대로 와버렸다. 인천공항에서 북쪽으로 멀찍이나 떨어진 신도시 한복판에 떨어진 나는 4% 남은 휴대폰 배터리를 들고 발을 동동대다가, 이번에도 공항에 늦으면 가만 안 두겠다는 으름장을 여러번 들었으니 아무 버스나 잡아타고 콜 택시를 불러야 했다(아, 내 돈!). 아아. 파주의 신도시들은 정말 광활해서 걸어다니기도 너무 안 좋고, (어떤 사람들은 넓어서 걷기 좋다고 하겠지만) 날씨는 싸늘했고 나는 배터리가 간당간당한 상태에서 북쪽 신도시를 헤매야 했고! 


공항에 가는 길엔 항상 이런 일이 생긴다. 

예를 들어 틀린 공항에 간다든가... 



*


일이 너무 더뎌! (아, 자꾸 딴 짓을 해서 그런가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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