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724 멜랑콜리아

"영화의 대단원에서 우리 대부분이 느낀 저 불길한 매혹의 정체는 무엇일까. 단지 아름다운 영상의 속임수일까? 혹은 저것은 영화일 뿐이라는 안도감? 아닐 것이다. 혹자는 이 영화에서의 종말이 완벽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래, 이 세계의 모든 불행과 비참이 철저히 차별적인 데 반해 이것은 모두에게 완전히 평등한 종말이고, 타협적으로 희망을 남기는 여느 종말 서사들과는 달리 일말의 가능성도 남기지 않는 깨끗한 종말이다. 이렇게, 모두가, 동시에, 사라질 수 있다는 보장만 있다면, 우리에게는 필사적으로 이 세계의 종말을 막아야 할 간절한 이유가 과연 얼마나 있는 것일까? 영화관을 나와서 그제야 눈물을 흘린 몇몇 관객은 아마도 그 이유를 찾는 데 실패했기 때문에 울었을 것이라고, 나는 짐작한다." / 신형철의 스토리-텔링, 멜랑콜리아

120619 영화 리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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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병문안 가는 길에 난 할머니 이름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만약 혼자 병원에 갔다면, 「저, 할머니 병문안을 왔는데요.」「할머님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생각해보니 친척들 이름을 거의 모른다. 고모부는 때로는 이모부가 되기도 하고 고모부가 되기도 하지만 이름을 불리는 일은 없다. 저마다 할머니를 엄마, 장모님, 할머니라고 달리 부르지만 그 아무도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가족 관계에 기반한 호칭은 개인성을 완벽히 지운다-고 드립을 치려다가 그냥 뒤늦게 할머니에게 미안하다는 걸로 퉁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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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섬


사람 위에 사람을 얹고 사는 인구 천만의 도시에 uninhabited patch of land가 존재한다는 건 초현실적이다. 카약을 타고 밤섬에 상륙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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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키스!


- 도발은 없지만 달콤하다. 초콜릿의 농밀함도 레몬의 톡 쏘는 맛도 없지만 싸구려 설탕 덩어리는 아니다.

「아름다운 여자군. 뭘 마실까? 커피? 아니야 그건 너무 지루하지. 차? 아니야. 쥬스. 쥬스다. 열대 과일은 아닐거야. 구아바나 망고는 너무 무섭잖아. 살구, 살구 쥬스다. 살구 주스를 마시면 건너가서 말을 걸어야겠어」

「그와 함께 있으면 시간이 가는 줄 모르겠어. 일주일에서 목요일이 빠진 것만 같은 기분이야.」


- 팝콘무비를 보지 않게 된 순간부터 난 영화에서 도발을 원한다. 솜사탕 같은 영화도 때로는 괜찮지만 도발 없는 영화는 지루해.



미래는 고양이처럼!(The Future)


- 2011년 7월, 링컨 센터에서

- 미란다 줄라이와 그의 남자친구는 성숙하지 못한 인간이다. 눈 앞의 책임을 마주할 줄 모르고 유아기로 회귀하는 30대 커플이다. 간지러운 솜사탕 같은 장면들도 있지만 현실을 마주하지 않는 인물들 (그렇다고 이상을 잡으려 노력하는 인간도 아닌) 은 보는 이를 짜증나게 한다. 감정이 메마른 나에겐 그 간지러운 솜사탕도 백설탕 덩어리일 뿐이었다. 



멜랑콜리아


- 영화를 관통하는 바그너의 음악은 아름다웠지만 힘겨웠다. 압도적인 화면과 다가오는 멜랑콜리아, 결국 죽어버린 건 가장 의연한 척 하던 존이었다. 강철이모는 'the earth is evil, we don't need to greif for it'이라고 말하면서도 조카를 위해 비밀 동굴을 만들어준다. 어쩌면 그 아이는 저스틴에게 망가진 지구 상에 마지막으로 남은 빛/빚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뭇가지 몇 개 밑에 앉아 손을 잡고 멜랑콜리아를 기다리는 마지막 씬은 근래 본 것 중 어쩌면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멜랑콜리아를 본 지인은 "극심한 우울을 겪은 사람은 지구가 끝나는 것이 차라리 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하지만 클로에와 저스틴 사이에서 멋있는 건 종말을 받아들이는 저스틴이었을지 몰라도 아름다운 건 겁에 질려 아이를 안고 뛰는 클로에였다.


다른나라에서


- 유준상은 정말 일취월장하는 듯. 넝쿨당에서 요즘 국민 남편이라더니. 이자벨 위페르고 누구고 간에 다른나라에서는 홍상수 영화 중에 가장 발랄한 영화였다. 돌고 도는 우연적 회귀는 여전하지만 옥희의 영화의 처연함도, 북촌방향의 쓸쓸함도 없다. 아마 홍상수는 이 영화를 만들면서 굉장히 즐겁지 않았을까 싶다. 만년필-소주병-우산으로 이어지는 뫼비우스의 띠. 세 번의 안느는 모두 다르지만 가장 빛나는 건 변하지 않는 유준상의 천진함이다. 웨어 이즈 더 라이트 하우스? 아! 라이트 하우스! 아이돈노. 하하하!


내 아내의 모든 것


- 즐거웠지만 시간이 아까웠다. 팝콘무비를 즐기는 능력을 상실해가는 것만 같은 느낌이야. 그 와중에 류승룡이 꼬시면 넘어갈 것도 같다는 생각. 그래도 나쁘진 않았다. 후반부에서 교훈적으로 이어지는 부분이 기특하면서도 찌질했다.


어벤져스


- 헐크가 좋아. 언제나 기승전결을 엄격하게 지키는 헐리우드 히어로 무비의 미덕. 

- 덧. 마크 루팔로는 엉덩이가 예쁠 것 같다. 크리스 헴즈워스가 왜 섹시하댔는지 알 것 같다. 


HBO Girls


- 리나 던햄은 유의해 볼만하다. 하지만 시즌 1의 9화밖에 안됐는데 제자리 걸음하는 듯한 캐릭터들은 아쉽다.



120602 일상의 균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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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할머니가 대장암에 걸리신 뒤, 우리집의 일상에는 조금씩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나는 처음으로 엄마가 우는 것을 엿들었고, 엄마는 생전 하지 않던 외박을 하기 시작했다. 외박이래야 봤자 할머니집에 가서 자고 오는 것에 불과하다. 그런 당연한 일마저 하지 않고 집에 자신을 붙들어 대던 엄마다. 자식들한테 밥 챙겨주기 강박증에 시달리는 엄마는 나에게 내일 동생이 먹을 삼겹살을 사올 것을 거듭 당부한다. 


아빠가 변한다. 나이가 들면 아버지가 작아지는 것이 느껴진다더니. 물론 나에게 아빠는 아직도 무서운 존재다. 나는 보통 불편해서 아빠와 식사를 함께하지 않는다. 연설을 늘어놓거나 내 진로에 대해 물어볼까봐 '두려운' 탓이다. 성가시다기 보다 두렵다. 하지만 어느샌가 아빠는 나를 봐도 잔소리를 하지 않는다. 저번에 술을 마시고 온 아빠는 나를 앉혀놓고 "엄마랑 나는 요즘, '멘붕'이다. 너 '멘붕'이 뭔지 아냐?"고 했다. 나는 자리를 피했다. 


오늘은 내가 만들 계란죽을 만들다가 아빠 것까지 만들었다. 같이 마주보고 밥을 먹었다. 아직 제대로 된 대화는 하지 않지만 새로운 종류의 불편함이 생겼다. 아버지는 그 연령대의 남자들이 그렇듯 어깨가 좁아진 듯 하다. 내가 만든 맛없는 계란죽을 먹고 아빠는 "점심은 니가 했으니 저녁은 내가 할게"라고 말했다. 예전과는 다른 의미로, 불편했다.




A Single Man (2009) / Tom Ford




뛰어난 연기, 훌륭한 연출, 부족한 감정. 


生과 죽음의 대비를 조금 더 부각시켰으면 내가 정말 좋아할만한 영화가 됐을텐데. 다시 보고 싶은 좋은 씬들이 많다. 줄리안 무어와의 저녁, 짐을 처음 만나는 장면, 마드리드 남자. 인상적인 장면은 많은데 전체는 충분한 폭발력을 지니지 못했다. 덜 꿰어진 진주 같은 느낌. 배우 하나하나 아름답다. 세트가 아름답다 했더니 감독이 유명 디자이너란다. 연출도 편집도 모두 훌륭하지만 채워지지 못한 구멍이 있다. 



120501 헌법의 풍경

(* 는 나, - 는 요약)



머리말


"우리는 그동안 승자의 일방적인 폭력이 지배하는 까닭에 표면상 평온해 보이는 사회를 '법의 지배'로 오해해 왔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법의 탈을 쓴 폭력의 지배에 지나지 않습니다. '신의 명령'과 같은 절대적인 규범이 사라진 세상에서 정의란 결국 올바른 절차와 합리적인 토론을 통해서 함께 만들어가야 하는 것일 수 밖에 없습니다. 정의나 진리를 찾아가는 이런 과정을 일부 전문가들이 독점해서는 안 되며 그럴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정의를 찾아가는 그 과정에 당당한 주체로서 참여하기 위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이 국가, 법, 법률가, 인권의 문제입니다. 헌법은 국가를 언제든지 괴물로 변할 수 있는 위험한 존재로 바라봅니다. 헌법과 법률의 목적은 흔히 오해하듯 국민을 통제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국가권력의 괴물화로부터 시민들을 보호하는 데 있습니다. 그리고 헌법과 법률이 권력통제라는 제 기능을 다하도록 돕는 일차적 책임은 변호사, 판사, 검사를 비롯한 법률가에게 있습니다."



2장 <국가란 이름의 괴물>


"국가와 정권은 분리되어야 할 대상"

- 정권은 오류를 범할 수 있지만 국가는 오류를 범할 수 없다는 전제 위에 서 있는, 국가를 절대적인 선으로 받아들이는 의식 세계


- 국가를 '사랑'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국가를 '통제'하는 것


- 1933년 1월 30일, 아돌프 히틀러는 취임 후 일주일이 되기 전에 국회에서 긴급명령을 통과시켜 공산당이 소유한 모든 빌딩과 출판사들을 몰수했고, 평화주의를 표방하는 단체들을 해산시켰다


- 나치 통치의 근간을 이루었던 긴급 명령에는 민족과 국가를 보호하기 위하여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를 비롯한 모든 기본권을 폐지하고, 항구적인 비상사태에 대처하기 위해 법치주의를 포기한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이른바 보호구금(Protective Custody) 제도도 이때 도입되어 영장 없는 체포가 가능하게 되었다. 보호구금이 필요한 사람들은 언제든지 재판없이 투옥되어 강제수용소로 보내졌다. 그가 공산당, 노동조합, 사회민주당 등 반대 세력을 완전히 격퇴하는 데 소요된 기간은 불과 3개월이었다.


- 많은 사람들이 나치 독일을 히틀러라는 미칭광이와 그를 둘러싼 몇 명의 극렬한 동조자들에 의해 벌어진 일회적이고 지극히 예외적인 사건으로 이해한다. 하지만 홀로코스트는 근본적으로 완벽한 시스템의 승리라 할 수 있다. 


참고도서 - <IBM과 홀로코스트>, 에드윈 블랙 


- 정신 나간 사람들 몇 명의 손으로는 이런 거대한 범죄가 이루어질 수 없다. 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이 독재 권력의 전횡에 참여하거나 방관할 때에만 비로소 국가라는 괴물이 힘을 발휘한다.


- 프리모 레비는 "괴물들은 존재하지만, 그들의 숫자는 너무 적어서 큰 위협이 되지 못하며, 정말로 위험한 존재는 아무런 의문도 제기하지 않은 채 정부의 말을 그대로 믿고 행동하는 관료들"이라고 했다.


- 국가에 의해서 대량 학살 등의 범죄가 벌어질 때, 그에 관여하는 사람은 대개 가해자, 피해자, 방관자, 구조자의 4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아돌프 히틀러, 아돌프 아이히만, 이오시프 스탈린, 라브렌티 베리야 등이 가해자의 전형이라면, 오스카 쉰들러나 라울 발렌베리 같은 사람은 구조자의 모범이고, 대학살 사실을 알면서도 이를 방관한 연합국이나 동유럽의 주민들은 방관자로 분류할 수 있다. 


- 스탠리 밀그램의 실험. http://en.wikipedia.org/wiki/Milgram_experiment#Results


* 이 주제가 자꾸 반복됨. 이 실험 자체가 아돌프 아이히만 재판 이후에 실제로 사람들이 권위에 얼마나 쉽게 복종하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디자인되었다. 한 참가자는 몇 년 후 베트남전이 벌어졌을 때 양심적 병역거부 선언을 했다. 


While I was a subject in 1964, though I believed that I was hurting someone, I was totally unaware of why I was doing so. Few people ever realize when they are acting according to their own beliefs and when they are meekly submitting to authority… To permit myself to be drafted with the understanding that I am submitting to authority's demand to do something very wrong would make me frightened of myself… I am fully prepared to go to jail if I am not granted Conscientious Objector status. Indeed, it is the only course I could take to be faithful to what I believe. My only hope is that members of my board act equally according to their conscience…


이 실험 이후로 실험의 윤리성 논란이 일어 밀그램은 예일대를 떠나야 했고 더 이상 이런 충격적인 실험은 불가능하게 되었다.


* 순종을 미덕으로 받아들이는 사회가 얼마나 끔찍해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6장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헌법 정신>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 종교의 자유, 양심의 자유


- 공산주의 허용 여부와 관련해서 가장 자주 사용되는 표현이 '방어적 민주주의'. 민주주의의 핵심 요소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을 인정하지 않는 당헌, 강령을 가지고 있거나 정당 간부의 활동에 비추어 이를 인정할 수 있으면 위헌 정당으로 해산이 가능하다는 것이 그 내용이다. 곧, 다른 자유는 모두 허용되지만 민주주의를 뒤집어엎을 자유는 인정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 논리는 굉장히 위험하다. 탄탄한 민주주의의 기반이 형성된 이후에는 공산당이라 해도 굳이 방어적 민주주의의 이름 아래 해산할 이유가 없다.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정해주는 것이 사상의 자유이고, 민주적 기본질서의 핵심이다. 방어적 민주주의는 알맹이가 빠진 민주주의의 껍질일 뿐이다. 


8장 <잃어버린 헌법, 차별받지 않을 권리>


- 개인과 개인 관계는 사법에 의해서만 해결하는 것이 한국 법 체계의 근간이다. 기본권 침해가 있을 경우 개인과 개인 관계에 대해서도 헌법이 직접 적용될 수 있는지의 문제는 '기본권의 사인(私人)에 대한 효력'이라 해서 헌법의 중요한 논점의 하나로 꼽힌다.


- 학계의 다수 의견은 기본권 조항의 효력을 인정하면서도 '직접'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사법 규정을 통해 '간접적으로' 적용되어야 한다는 입장이 대부분이다. 


문제는 1) 사법에 의해서는 손해배상 청구 이외에 차별행위자를 처벌하거나 차별행위를 강제로 시정할 방법이 없다. 2) 민사 손해배상액이 너무 적다. 3) 차별 당한 사람에게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 발생과 인과관계에 대한 입증 책임이 모두 지워진다.


대안으로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 / 시정명령 도입 등이 논의되고 있으나...


- '국민들의 의식 개혁'이 중요하단 소리가 많이 나온다. 차별 금지 소송의 증가가 그 시발점이 될 수 있다. 인권위 등에서 차별 금지 소송을 전담하는 분야를 둬야 한다. '전문 싸움꾼'들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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