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102 새해


우와 앞자리가 12다. 난 2012년이 참 마음에 든다. 왜냐면 바흐의 하프시코드와 The National로 시작했으니까. 음악이 귀에 들어온다는 건 좋은 신호다. About Today 더 내셔널의 EP Cherry Tree 수록곡. 가슴을 두드린다. 오랜만에, 음악을 듣고 울 뻔했다. 

하프시코드는 정말 아름다운 악기다. 피아노에 밀려났기에, 단점이 있기에 더 아름다운 것 같아. 어젯밤에 하프시코드에 꽂혀서 열심히 듣고 있었는데 아침에 Warrior 사운드 트랙이라고 보내준 About Today 듣고 가슴이 두근두근. 

작년에 발견한 음악은 역시 얄개들이겠지? 연애시대 OST도 좋았지만 얄개들은 정말 좋았다. 아무래도 마음이 피폐할 때는 음악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좋은 음악을 들어도 좋은 줄 잘 모르는 것 같다. 

그제 생각할 때는 작년 상반기에 놀았다고 썼는데, 생각해보니까 인턴하면서 엄청나게 스트레스 받았다.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아도 그냥 회사 가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였다. 너무너무 하기 싫어서 회사에서 몰래 울기도 하고 그랬는데ㅋ 그래도 덕분에 나는 회사를 다닐 수 없다는 걸 알았다. 그런 야매 단체에서도 견딜 수 없다면 다른 건 오죽하겠어. 그 때는 정말 내가 인턴을 하기로 한 건 엄청난 실수였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그 때 논 게 지금은 다행이다 싶다. 그 때 쓴 일기를 찾아봐야겠다. '뉴욕'에 있으면서도 그렇게 불행했으니, 어디에 있느냐는 정말 중요한 게 아니다. 

내가 더 이상 어딘가로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된지도 꽤 되었다. 더 이상 장소의 변화가 나의 변화를 담보하지 않는다는 걸 아니까. 아니, 변화라기보다 발전. 물론, 여기가 아니라면 다를 것들이 몇 가지 있지만. 

미시사가 재밌다. At home: a short history of private life. 예전에 흘려듣고 재밌겠다고 생각했는데 얘기하다가 나와서 보기 시작했다. 저번에 거금을 주고 산 도시와 인간도 읽어야 하는데 보려면 팔이 덜덜덜... 킨들을 산 건 정말 훌륭한 선택이었어 

저번에 MQ 사람들 만났을 때 무지하게 반가웠다. 집에 가면서도 흐뭇했고. 반면 다른 모임에 갔을 때는 그저 그랬다. 그래서 돌아오면서 참 힘이 빠졌다. (시간이야 많지만ㅋㅋ) 시간내서 만났는데 별로 감흥이 없었기에. 하지만 뭔가 다른 것의 단면을 본 느낌이었다. 

110923 김혜리가 만난 사람

 

2011 9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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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리의 글은 금방 알아볼 수 있다. 단순한 정보성 글이라도 단어가 범상치 않다. 정공법으로 치고 들어온다고나 할까. 진득하게 진심에 밀착하려는 분투가 전해져온다. 첫 문장부터 치고 들어온다. 그러기엔 이 여자는 너무나 섬세하다. 치고 들어온다기보다 정곡을 집는다. 그건, 의도적으로 글을 강하게만들려고 했다기보다는 그저 꾸밀 줄을 모르는 것이다. 그녀는 진심을 쓴다.

 

마음으로 쓴 글은, 정말로 전해진다. 가장 내밀한 속마음을 드러내는 서문과 발문을 읽으면서 나는 가장 많이 울었다. 신형철의 서문을, 김혜리의 발문을 읽으며 나는 진동한다. 꾸밀 줄 모르기에 문장 하나하나가 빽빽하다. 정확하게 표현하기 위해 단어를 다듬고 재배열하고 수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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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가 될 수 있다면 출판편집인을 하세요. 내 이름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내가 문학을 예술을 사랑하고 그들을 보살피고 싶다면, 그리고 그걸로 족하다면. 당신은 지독한 짝사랑을 하고 있다. 나는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나의 글을 쓰고 싶다.

 

그게 나의 욕심은 아닐까 걱정도 된다. 나의 것에 대한 욕망이 아닌 나의 이름에 대한, 주위 사람들이 나의 이름을 알아주기를 원하는 것이 아닐까. 나는 짝사랑은 견디지 못하고 금방 다른 아이를 좋아해버리는 참을성 없는 여학생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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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호되고 차가운 단어를 늘어놓으며 힘센 척할 때라도 우리는 결국 영화를 만드는 이들을 뒤쫓는 메아리로서 영화의 게임에 참여하고 있음을 잊지 않습니다. 어차피 모든 영화는 아무리 허약하다 해도 어떤 악평보다 오래 살아남을 것입니다. … 영화평을 쓰는 우리의 대부분은 좌절한 창작자이거나 좌절한 관객입니다. 우리의 욕심은 오만하다면 오만하고 초라하다면 초라합니다.” (<영화야 미안해> 여는 글)

 

이제 압니다. 기사라는 명목으로 제가 썼던 글과 글 비슷한 끼적거림은 기실 일기였고 얼굴을 알 수 없는 당신에게 띄우는 편지였습니다. 고백컨대 그것은 월급쟁이의 은밀한 횡령이었습니다. 모두가 보기 때문에 누구도 보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마음 놓는 일기였고, 수취인불명의 편지였습니다. … 그러나 왼쪽 서랍은 이미 스쳐지나가 더 이상 어찌할 수 없으나, 차마 버리지 못하는 영화들의 몫입니다. 이 책은 제 왼쪽 서랍입니다. 편애의 기록입니다. 제 초라한 왼쪽 서랍을 왼손잡이 당신에게, 잡동사니에 눈길이 머무는 당신에게 바칩니다.” (닫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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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은 <화양연화>가 보는 이에게 남기는 깊은 울림을 적은 뒤 그것은 아마 우리 중 대부분이 실패한 연인이기 때문 아닐까. 온전히 내 것이 될 불변의 사랑을 꿈꿨으나, 번번이 그 여린 빛이 내민 손 한치 앞에서 사그라드는 것을 지켜보아야 했던…”이라고 끝맺을 때, 그러니까 너무 많이 그리고 쉽게 말해져버려 이제 거의 죽어버린 의미가, 좋은 영화와 만난 그의 언어를 거쳐 촉촉한 생명을 얻을 때,

 

보기 드물게 첫 문장에서 가 등장하고 더 뜻밖에도 그의 글에서는 유례없이 단호한 말투를 지닌 그 인터뷰 서문은 이 세상의 많은 이야기꾼들을 위한 변명이면서, 동시에 자신을 위한 은밀한 그러나 최상의 위안이다. (발문, 허문영 영화평론가)

 

언제부터인가 나는 소심한 사람들의 괴력을 눈치채게 되었다. 대범한 사람들이 세계를 들썩들썩 움직이는 동안 소심한 사람들은 주섬주섬 세상을 해석한다. 살아남기 위해 예민해질 도리밖에 없는 초식동물처럼 그들은 누가 힘을 가졌는지 계절이 언제쯤 변하는지 민첩하고 정확하게 읽어낸다. 미미한 자극에 큰 충격을 받고 사소한 현상에 노심초사하는 그들의 인생은 남보다 느리게 흐른다. 타고난 관찰자이며 기록자인 그들의 소극적 복수는 이야기. 그들은 더디게 살기 때문에 삶을 사는 동시에 재구성한다. 목소리 큰 당신이 휘어잡았다고 생각하는 어젯밤 술자리에서 벽지처럼 있는 듯 없는 듯 듣기만 하던 동료가 있었던가. 그가 잠들기 전 떠올린 스토리 속에서 당신은 놀림감이었는지도 모른다. 이것이 세계의 평형을 유지하는 매커니즘 중 하나라고 판명돼도 나는 놀라지 않을 것이다. (그녀에게 말하다 김병욱 인터뷰)

110728 Vanity


아 이런 애들도 있지. 하고 깨닫는 느낌이다. 이런 애들이 잘 없어서 몰랐는데. 인간성 좋고 착하지만 결국 vanity. 쇼핑하는 것에 아무런 죄책감이 없고 좋은 음식을 먹고 예쁜 옷을 사고 좋은 호텔을 잡고 그런 것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는 것. 돈이 있고 없음의 문제가 아니라 의식의 차이다. 비싼 가방을 아무렇지 않게 사고 그것에 대한 아무런 도덕적 하자를 느끼지 못하고. 거기서 유일한 문제는 '제 값' 하는 물건을 샀는가. 충분히 예쁜가. 좋은 가방인가. 하하하. 

시카고 봄. 영화가 더 좋음. 뮤지컬이란 장르의 한계를 느끼며 오페라는 너무 어렵고 연극 정도는 즐길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110722 정이현



<낭만적 사랑과 사회>, <오늘의 거짓말>, <달콤한 나의 도시>. 정말 어쩌다보니 세 권이나 읽었는데도 좋지가 않았다.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힘은 차치하고라도 정이현의 서사가 거북한 것은 여성의 위치를 정확하게 이용하고 '연기'하는 인물들 때문이다. 두 해설자(이광호, 박혜경)가 공통적으로 이야기 한 것은 작중 인물들이 체제순응적이지만 체제 내에서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려고 한다는 것. 하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연기함으로써 욕망을 실현하는 인물은 식상하다 (심하게는 역겹기까지 하다). 그저 순응적인 인물보다는 낫다고야 하지만 이래서야 '영악하지만 말 잘 듣는' 인물밖에 더 되나? 

정이현 소설의 강점은 "세속적인 욕망을 어떠한 낭만적 과장이나 미화 없이 지극히 현미경적인 내부자의 시선으로 그려내는 작가의 서술방식에 있다" (해설자  박혜경) 하지만 이건 관음증적인 자기혐오 또는 정당화에 지나지 않는다고 이야기 하면 비약일까? 차라리 <아내가 결혼했다>처럼 뻔뻔하게 요구하던지, 정이현의 인물은 주말 드라마에 등장하는 '똑똑하고 자기 몫 잘 챙기는' 여자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내가 '낭만'을 중시하기 때문에, "세상에 낭만은, 체제 밖으로의 탈출은 없다"고 얘기하는 작가의 냉소에, 쿨한 관찰에 화가 나는/짜증 나는 것 뿐인지도 모름. 벗어나고 싶은 구질구질한 세상, 천박하다고 경멸하는 관습과 그에 순응하(면서 챙길건 챙기는)는 인물을 보여주는 소설이 좋을 리 없다. 정이현에게는 낭만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가의 소설들이 20, 30대 여성에게 인기가 많다는 것은 굉장히 슬픈 일이다. 

신형철 평론가는 아름다운 것에 대해 아름답게 말하고 싶다고 했는데 나는 아름답지 않은 것에 대해서 아름답지 않게 말하는 군. 하하하.  

110720 달려라 아비 / 김애란


나는 편의점에 간다가 가장 좋았다. 짧은 서사에서 이 정도의 완성도를 보여주다니 엄청났다. 편의점 세 개를 이야기 했을 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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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마트를 경영하는 부부는 사십대 후반이다. 아마도 그들은 지난 아이엠에프 때 명예퇴직금으로 큐마트를 연 것 같다. 확실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 부부의 관상이 온화했던 탓에 나는 내 추측을 확신했다. 그 나이에도 의심이 적고, 성격이 부드러운 사람들이란 대개 그들을 부드럽게 만들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살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사기를, 배반을, 착취를, 불평등을 모른다. 그들은 아마 그들이 노력한 만큼 벌거나 노력한 것 이상으로 벌어온 사람들일 것이다. 모든 부드러움에는 자신들이 의식하지 못하는 어떤 잔인함이 있다. 그게 사실이 아닐지라도 내가 그걸 사실로 만들어버리는 이유는 그러고나면 내 처지가 덜 속상해지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나도 모르게 그 순간 엘에이의 한인촌을 습격한 흑인과 닮아 있었다. 편의점에 가는 나는 한국에 살고 있는 한국인이면서 흑인이다. 나는 그들을 폄하하는 대신, 그들의 환경을 덜 부러워할 수 있게 된다. 나는 정직하므로 가난하고 그들은 부정직했으므로 풍족하다. 가치란 편의점의 물건과 같아서 그런 식으로도 교환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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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편의점에 갔던 그사이, 나는 이별을 했고, 찾아갔고, 내가 누군가를 죽일 수도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 거대한 관대가 하도 낯설어 나는 어디를 봐야 할지 몰라 서성이고 있다. 당신이 만약 편의점에 간다면 주위를 잘 살펴라. 당신 옆의 한 여자가 편의점에서 물을 살 때, 그것은 약을 먹기 위함이며, 당신 뒤의 남자가 편의점에서 면도날을 살 때, 그것은 손을 긋기 위함이며, 당신 앞의 소년이 휴지를 살 때, 그것은 병든 노모의 밑을 닦기 위함인지도 모른다는 것을. 당신은 이따금 상기해도 좋고 아니래도 좋다. 큐마트, 세븐일레븐, 패밀리마트는 모른다. 편의점의 관심은 내가 아니라 물이다, 휴지다, 면도날이다. 그리하여 나는 편의점에 간다. 많게는 하루에 몇번, 적게는 일주일에 한번 정도 나는 편의점에 간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사이, 내겐 반드시 무언가 필요해진다. 


김애란 소설집 <달려라 아비> 중, 나는 편의점에 간다 -- 문학과 사회, 2003년 가을호


글은 강해야 한다고 썼던 건 작가가 확신을 가지고 쓴 글만이 나를 움직이기 때문이다. 어떠한 종류의 물결이라도 독자에게서 이끌어내기 위해선 확신에 찬 글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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