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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11.07 131107 일기
- 2013.10.30 Pruitt-igoe
- 2013.10.29 131029 마감, 소비에 대한 태도 1
- 2013.10.24 131024 빅 씽크
- 2013.10.15 131015 힉스 입자, 나이젤 홈스
- 2013.10.09 131009 새로운 적성
- 2013.10.07 131007 Just in time
- 2013.10.02 최금진 - 착한사람
- 2013.09.22 테드 창 인터뷰 번역
- 2013.09.17 테렌스 데 프레, 생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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끔찍한 꿈을 꿨다. 꿈에서 나는 어쩐지 결혼을 해 있었고, 무려 임신을 했다. 굉장히 친절한 남편이었는데 나는 어쩐지 유산;을 해버렸다. 애를 낳으려다가 일반 병원에서 설비가 부족해서 새 병원으로 옮기는 도중에 피가 났고 음 그래서 울고 불고 뭐 그런 얘기... 뱃속에 죽은 생명이 들어 있는 아주 그로테스크한 꿈이었다. 해몽 같은 건 하기도 싫구나 -_-
라고 썼다가 방금 검색을 해봤는데 오랫동안 공들인 일에 실패하는 꿈이라고. 아니 꿈이 안 좋으면 해몽이라도 좋든가... 간밤에 소파에서 잠이 들어서 웅크리고 잠들어서 온몸이 쑤신데다 기분도 너무 안 좋고 그래서 휴가를 내버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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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정도 매일 맥주를 마셨더니 배가 뽈똑 튀어나왔다(원래 나온 데에 더해서!) 엄마가 사준 하몽을 안주로 소비하느라 그랬는데; 하몽을 먹자니 술 없이는 먹기가 곤란해서... 그 짠 걸 야금야금 거의 다 먹어버렸다. 하몽 너무 좋아ㅜㅜㅜ 짧은 시간에 아주 짠 red meat을 너무 많이 먹은 게 아닌가 싶지만; 정말 내 취향... 온라인으로 사볼까 싶다. (만들어볼까 검색했더니 고기에 염장을 해서 1~2년은 숙성시켜야 된다고... 뭐야 이 음식 무서워... 이렇게 말하면서 마지막 조각을 먹고 있다. 으헝 이 짠 맛ㅜ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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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길을 걷다가(?) 머릿속에 '분홍 코끼리'라는 말이 떠올라서 검색을 해보니 음주 상태에서 보는 환각을 에둘러 일컫는 말이란다. (http://en.wikipedia.org/wiki/Pink_elephant) 잭 런던이 <존 발리콘>에서 처음 쓴 비유라고 한다. 읽어보고 싶었는데 번역은 안 돼 있음;
"Seeing pink elephants" is a euphemism for drunken hallucination, caused by alcoholic hallucinosis or delirium tremens. The first recorded use of the term is by Jack London in 1913, who describes one kind of alcoholic, in the autobiographical John Barleycorn, as "the man whom we all know, stupid, unimaginative, whose brain is bitten numbly by numb maggots; who walks generously with wide-spread, tentative legs, falls frequently in the gutter, and who sees, in the extremity of his ecstasy, blue mice and pink elephants. He is the type that gives rise to the jokes in the funny papers." London may have derived his metaphor from the 1890s saying "being followed by pink giraffes".
원래는 1890년대에 취한 상태를 표현할 때 '분홍 기린이 날 따라오는 것 같아'라는 말을 썼다는데, 잭 런던이 1910년에 코끼리라고 쓰면서 '분홍 코끼리'가 더 인기 있어졌다고.
덤보에 'Pink Elephants on Parade'라는 노래가 나오는데 알콜을 마신 덤보가 취해서 분홍 코끼리들을 보는 장면이다. 취한 덤보 매우 귀여움. http://www.youtube.com/watch?v=RJv2Mugm2RI
특히 What'll I do? What'll I do? What an unusual view! 이 부분의 라임이 너무 귀여움 ㅎㅎㅎ
참고로 프랑스에서 판다느나 Pink Elephants 담배...
약간 싸구려 느낌이긴 하지만 예뻐! 펑크 스타일로 입은 언니야가 필 거 같다. 바닐라맛이라고-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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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락카칠도 해야 하고 창문에 커튼도 달아야 하는데; 대충 살 만해지니 나머지는 매우 귀찮아졌음. 역시 한달 되기 전에 전력을 다해서 했어야 하는디... 부엌 타일에 줄눈 작업도 아직 안 했고. 화장실도 좀 어떻게 해보려 했는데 올해 안에는 어렵지 않을까-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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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uitt-igoe
살펴볼 시간이 없어서 일단
* Pruitt-Igoe 관련 이코노미스트 기사 : http://t.co/DTRwcMLo
* Pruitt-Igoe 관련 다큐멘터리 동영상 : http://www.pruitt-igoe.com/
* 관련 논문 : The Pruitt-Igoe Myth (Katharine R.Bristol, UC 버클리대 교수) :
http://www.pruitt-igoe.com/temp/1991-bristol-pruitt-igoemyth.pdf
(출처 http://ergosum94.egloos.com/203171)
131029 마감, 소비에 대한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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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했드아! 실은 저번주에 했구먼요. 마감이 이렇게 좋은 건 줄 몰랐다. 크로스 보면서 일정 늦춰지고 이럴 때는 스트레스를 너무 받고 힘들어서 일은 나에게 맞지 않는다 일 못하겠다 나는 왜 이렇게 일을 못하나 이런 자학만 계속 하다가 에라이 모르겠다 fuck this shit 이런 마인드가 되어버렸다
(금요일 5시 45분쯤이 되면 이 짤방이 저절로 생각남)
여튼 무려 차례에서 실수를 하나 하긴 했지만 뭐 별로 심각한 건 아니고 (실은 내가 열번을 봤어도 절대 잡을 수 없었을 것 같은 실수라서) 별로 신경도 안 쓰인다. 그래도 가제본 확인할 때는 심장이 떨려서 나 원...
여튼 입사 1주년도 첫 책(?)도 자축을 제대로 못한 것 같아서 아쉽다. 빨리 친구들을 초대해서 영화제를 하고 싶다 ㅎ_ㅎ
마감한 날 너무 잉여하고 싶어서 회사에서 눈치 불구하고 이런 것을 만들었다. 원래는 포토샵 열면서 원대한 포부가 있었는데 실행에 옮기려니 너무 어려워서(결정적으로 귀찮) 대충 15분만에 만들고 때려치웠음. 해서 언뜻 보면 괜찮아 보이나 3초만 들여다보면 매우 대충 만들었다는 것이 들통나는... '제1회'라는 것이 중요하다! 앞으로 발전하는 포스터를 선보이겠나이다
항상 나는 머릿속으로는 풀코스밀을 준비하는데 실제로 준비력이 부족하여 이렇게 돼버린단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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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미리 추천사라도 받아놀걸 하고 재교 때부터 후회했다. 돌이켜보니 그때 시도했어도 별로 늦지 않았었을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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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부터 스페인어 수업을 재개하겠다! 지긋지긋한 집 알아보기와 이사와 마감이 끝났으니. 무려 8일이나 남은 연차도 적어도 5일은 쓰려고 계획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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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좋았다가 싫었다가... 오늘 같이 으스스한 날씨가 최악인 것 같은데(그런 의미에서 북부 잉글랜드의 날씨는 최악이라 하겠다) 알고 보니 스모그라고 함. 그러취 역시 스모그의 고장 영국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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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 소개팅하기로 한 사람에게 연락이 왔는데 매우 짜증나는 말투와 화법을 구사해서(뒷담화 죄송요) 애초에 거절했어야 하는데 하고 후회하고 있던 참에 C에게 연락이 와서 기분이 한껏 좋아졌다. 이래서야 가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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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 한껏 물욕을 뽐내다가(물욕을 뽐냈다기보다 그래봐야 이슬람의 보물들 도록을 보면서 이런 것이 좋다고 한 것뿐인데!) "**씨 불행해지겠는걸?"이란 말을 들었다(눈이 높아서 그렇다는 의미였다). 악의가 있는 발언은 아니었지만 하마터면 "아닌데! 없어도 불행하지 않을 수 있는데!"(정형돈 톤으로)라고 말할 뻔했다.
월급이 한달 한달 들어올 때마다 나는 가진 것이 점점 많아진다. 나는 매주 책을 사고, 매달 옷을 산다. 지난달에는 필름 카메라를, 이번달에는 예쁜 소파를 샀고, 예쁜 커튼과 침구도 사고 싶다. 작년 가을부터 사고 싶었던 구두도 있고(여태 안 산 것이 과연 선명한 선택인지는 모르겠다) 심심하면 온라인 쇼핑몰에 들어가서 뭐 살 거 없나 보는 게 아주 습관이 되어버렸다.
좋은 것을 가지고 싶은 욕망과 언제라도 이것을 버릴 수 있어야 한다는 다짐 사이의 갈등이 나를 괴롭힌다. (이걸 버릴 수 있어야 한다는 다짐. 가끔 스스로에게 C를 만나지 않았어도 이런 생각을 하게 됐을까 묻는다.) 이번에 소파를 원래 사려고 했던 것보다 15만원 비싼 것을 사면서도 나중에 내가 다른 곳에 가게 되면 엄마 집에 가져다놓을 수 있다며 자신을 설득해야 했다.(물론 나를 설득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빠른 합리화와 신속한 결제!
돈을 적게 벌어도 잘 살 수 있도록, 내가 지금 가진 것을 가지지 않아도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들지 않을 수 있을까? 적어도 지금은 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게 그냥 악다구니인지, 진심인지 잘 모르겠다. 소비에 대한 이런 내 양면적인 태도는 내가 여행지에 가서 느끼는 감정과도 일맥상통한다. 라오스에서 '개념 있는 여행자'이고 싶어하는 것이나 비슷한 거지 뭐. 소비는 소비대로 하고 올바르기는 또 마음대로 올바르고 싶은 건데, 내 쓸데없는 고민을 들은 Y언니는 '진짜로 돈이 없으면 괜찮다'라고 일갈했다.
말은 맞는 말이다. 내가 돈이 없었으면 라오스에서 비싼 음식을 사먹으며 굽신거리는 라오스 종업원들에게 죄책감을 느낄 필요도 없었겠지. 근데 여튼 나는 돈이 있다. 돈도 있고 욕심도 있다. 있는 걸 어떡하나? 이건 사실 검약에 대한 강박이기도 하다. 소비라고 하면 일단 부정적인 느낌이 드니까. 나는 종종 남들에게 내가 검소한 척을 한다; (나는 내가 이해가 안 되는 것이 성장기에 집에 돈이 없었던 것도 아닌데 왜 이따위 강박이 생겨서-_-)
뭔 소리를 하는지 나도 잘 모르겠지만 여튼 뭘 사는 건 너무 어렵단 말이다!
게다가 어차피 살 거면서 이런 고민을 하면 소비의 즐거움까지 반감된단 말이다!
그러니까 내 질문은
좋은 소비가 뭘까?
131024 빅 씽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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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K를 마치고 회사에서 이것저것 검토하면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다가,
유튜브에서 지젝의 이런 동영상을 보고
Big Think가 뭐지? 테드 같은 건가... 하면서 들어가보니 이런 동영상이 있었다.
"Big think edge is the only forum on youtube designed to help you get the skills you need to be successful in a rapidly changing world."
듣고 토할 뻔. <성공을 위한 3분 인문학> 이런 건가... (대부분의 동영상은 2분도 채 안 된다!) 잡티 하나 없이 하얀 배경에 저명한 철학자, 기업가, 경제학자... 등이 나와서 '당신의 커리어에서 성공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채널이랍니다! 와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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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요즘은 모든 게 지겹다. 지젝의 "Why be happy when you can be interesting?" "Optimism of Melancholia" 이런 것도 '예상 가능한 말'로 들린다. 새로운 것 없을까.
131015 힉스 입자, 나이젤 홈스
힉스 입자를 발견한 앙글레르 교수와 피터 힉스에게 노벨 물리학상이 돌아가고
뉴욕 타임즈에서는 이르케 멋있는 인포그래픽(?)을 보여줌 ㅎ_ㅎ
어익후 정말 이렇게 뒤처져서야...
http://www.nytimes.com/interactive/2013/10/08/science/the-higgs-boson.html?smid=pl-share
Graphics by Nigel Holmes
http://nigelholmes.com/
http://www.amazon.com/Wordless-Diagrams-Nigel-Holmes/dp/1582345228
이 책도 구경하고 싶은데 어디서 볼 데 엄남@_@
131009 새로운 적성
새로운 적성을 발견했다: 인테리어. -_-
어제는 더러운 싱크대 벽에 타일을 붙이고 오늘은 콘크리트 벽에 해머드릴로 구멍을 스물네개나 뚫고 목공소에 가서 선반 목재를 구입해왔다. (비록 어제는 싱크대 썩은 나무를 만지다가 부숴버렸지만...) 내일 회사 가서 자랑해야지. 콘크리트 벽에 드릴 박는 사람이라고 내가!
집이 너무너무 좋다! 언제까지 살지 모르지만 넓고 좋은 집이니 열심히 꾸며서 집순이가 되어야지. 공간분리의 소중함을 느끼고 있다. 침실과 작업공간이 분리되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삶의 질이 다르다니. 침대에 누우면 딱 자는 느낌이라서 좋다. 예전엔 노상 침대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내가 자는 건지 깨어 있는 건지 분간이...(-_-)
너무 좋아서 버리지 못하게 될까봐 두렵다. 하지만 너무 금욕적인 것보단 내가 살고 있는 지금을 더 잘 꾸려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다소 과소비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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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스타코비치 왈츠 2
아니 쇼스타코비치가 이렇게 찌질찌질하게 생겼다니!
131007 Just in time
프로젝터를 상설한 기념으로(?) 오랜만에 영화들을 틀어봤다. 오랜만에 생각이 나서 비포 선셋을 틀었다가 요즘은 주 관심사가 홈 데코이기 때문에 셀린의 방을 유심히 살펴보고(컨셉을 바꾸기로 했다) 니나 시몬을 연속해서 들었다.
그 유명한 대사 "baby, you're gonna miss that plane"를 하며 부르는 노래가 바로 Just in Time. 다른 커버들도 좋지만 니나 시몬이 부른 느낌과는 사뭇 달라서 깜짝. Julie Andrews가 나오는 저 영상은 어디서 나온 건지 궁금하다. 줄리 앤드루스 목소리를 오랜만에 들으니 저 여자가 노래를 저렇게 청아하게(!) 부르는 사람이었나 새삼 놀랐다.
최금진 - 착한사람
팟캐스트 듣다가. 시가 너무 좋아서 받아적었다. (원문 시작 2012 겨울호 수록)
아 이 시인 멋있는 사람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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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금진/ 착한 사람
나는 착한 사람, 앞으로도 목적 없이 살아갈 것이다
당신이 말하는 종착점 같은 것은 없다
도피중인 사람들은 나를 대하기 어렵다고 할 것이고
권위적인 사람들은 내가 의자로 보일 것이다
대화와 소통은 미개한 짓, 나를 도구로 사용한 흔적이 당신의
손에 돌도끼처럼 들려져 있지 않은가
한때 시간을 주머니에 넣어서 다닌 적도 있었지만
누구를 해치려는 게 아니었다, 몰래 버리기 위해서였다
투표도 하지 않을 것이다, 담배도 피지 않을 것이다
될 수 있는 한 많은 사람들을 흉보고, 욕하고, 비난하면서
변명과 복수들을 차곡차곡 지폐처럼 모아
배를 한 척 사고, 진화의 역방향 쪽으로 배를 몰고 가겠다
주말엔 텔레비전을 보고, 될수록 잠을 많이 자고
제발, 나를 내버려두라고, 그런 요구조차 안하고
이불 속에서, 늙은 쥐처럼 눈 오는 창밖을 멀뚱히 훔쳐보고
책도 한 줄 읽지 않고, 무식하게, 형편없게, 무기력하게
학술회에서, 강연회에서, 술자리에, 몰래 빠져나온 사람처럼
늙어 갈 것이다, 어떤 참회도 하지 않을 것이다
날 사랑한다면 나를 죽여야 할 것이다
도둑질도 하지 않을 것이, 카드 빚도 갚지 않을 것이다
미친놈, 샌님, 또라이, 비관주의자, 암사내, 집짐승, 퇴보, 퇴보
나는 당신들이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모른 체 눈을 감고 있을 테니까
나는 끝내 당신들의 살의를 발설하지 않을 테니까
테드 창 인터뷰 번역
http://aalrmag.org/specfictioninterviewchi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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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드 창의 중단편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The LIfecycle of Software Objects)의 원문 전문은 여기(http://subterraneanpress.com/magazine/fall_2010/fiction_the_lifecycle_of_software_objects_by_ted_chiang)에서 볼 수 있다. 알고보니 Subterranean Magazine라는 잡지는 장르문학 계간지인 모양인데, 계간지에 수록된 소설들의 원문을 제한 없이 온라인에서 서비스하고 있다. 장르문학에 주력해 1995년 시작한 이 회사는 콜렉터스 에디션 등을 만들어서 서브컬쳐계(?)에서는 꽤나 알려진 모양. 스티븐 킹 등 유명 작가 작품을 냈다고 메인에서 자랑하고 있다. -.- 이런 회사가 거의 20년간 망하지 않고(!) 살아남은 것을 보니 역시 덕 중의 덕은 양덕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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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어서 나머지는 못허겄다-_-
테렌스 데 프레, 생존자
- 봄에 읽던 책이라 좀 낡긴 했지만, 정리하는 데 의의를 두고. 서해문집에서 2010년 출간됐다. 역자는 차미례 선생.
저자 소개는 눈여겨 볼 만한 구석들이 있다. 저자 테렌스 데 프레(Terrence Des Pres)는 위키피디아에 무려 'Holocaust scholar'라고 소개되어 있다. 책날개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1987년 목을 매달아 자살했다고 한다. 뉴욕타임스의 아주 건조한 부고에는 사고사(accidental death)라고 쓰여 있다(여담이지만 부고에 자주 등장하는 표현인 'OOO is survived by ...'라는 표현은 참 애잔하고 귀엽다). 속단할 필요는 없지만 프리모 레비를 비롯한 많은 홀로코스트 생존자가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것을 생각했을 때 심상치 않은 구석이 있다. 어찌 되었든 학술서인 터라 생각보다 크게 알려진 책은 아니다. 1976년 옥스포드 대학 출판부에서 출간했다.
71p트레블링카의 집단 강제수용소는 실적이 좋은 날이면 하루에 1만 5000명의 남녀와 어린이들이 처형되는 악명 높은 곳이었다. 이러한 대규모의 살육에는 막대한 노동력이 필요한 데다, 전쟁의 끝 무렵에는 SS(나치 독일의 친위대)도 이 같은 잔학상이 세계에 알려지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래서 시체를 매장했던 큰 구덩이들을 다시 파서 반쯤 썩은 시체들을 모조리 태워 없애게 되었다. 이러한 일들은 모두 '존더 코만도'라고 불리는 수백명의 죄수들을 동원해서 행해졌다.72p<나의 동료들은 어디로?>(Where are my brothers?)에서 사라 베르코위츠(Sarah Berkowitz)는 조그만 사건 하나를 기록하고 있다.어느 날 밤, 바라크에서 자고 있던 죄수들 가운데 한 소녀가 미친듯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유도 모르게 몇만명이나 되는, 수용소 안에 있는 재소자 전원이 함께 비명을 지르기 시작하는 것이었다.88p19세기 중엽 이래로 인간의 고통이라는 것은 도덕적인 우월, 정신적인 깊이, 인간의 감성과 안식을 고도로 순화하는 어떤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한 생각이 어디서 나왔느냐 하는 것을 나는 다음과 같이 추측해본다. 기독교인들이 믿고 있는 고통을 통한 구원, 키르케고르가 절망을 특히 강조한 점, 니체가 인간의 나락을 강조한 것, 그리고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억압받고 짓눌린 자들을 치켜세운 것 등이 그 원인이 아닐까? 이유를 생각해보면 이처럼 다양하지만 사실 그 결과는 단순하다. 어떤 인간의 고통이 크며 클수록 그는 다른 사람들보다 우월한 존재로 돋보이며, 더욱더 진실해진다. 그러고 나서 하잘것없는 것이라도 황금 같은 가치를 갖게 될 때에, 그 개인의 상처와 아픔은 훨씬 더 견디기 쉬워지는 것이다. ... 좀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우리들 사이에는 고통에 대한 선망 같은 게 있다. 이것은 교육을 받을수록 더 크게 느끼는 것이며, 역사가 우리의 고통을 시시한 것으로 만들어버릴 때는 아깝고 속상해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물론 고통에다 어떤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은 선택받은 행복한 소수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생존자의 문학을 통해서 나타나는 가장 강력한 테마는, 고통이란 무의미한 것이며 그처럼 광범위하고 거대한 고통은 전래적인 가치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98-101p살아남는다는 행위는 생존자 자신의 가치보다도 훨씬 더 귀중한 가치를 지님에 틀림없다. 한라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의 마지막 페이지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전체주의 정권이 자신의 모든 악행의 기록을 사라지게 할 망각의 심연을 만들기에 급급하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나치가 화장, 묘지에서 파낸 시체 태우기, 서류소각, 폭파, 화염방사기나 인골분쇄기계를 총동원해서 1942년 6월부터 계속했던 광적인 증거 인멸 작업은 실패로 끝났다. '고요한 망각의 세계로 사라지게 하는 일'은 허사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망각의 심연이란 없다. 인간사에서 완벽한 것은 드물다. 더욱이 이 세상에는 망각을 가능하게 하기에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한 사람이라도 반드시 살아남아서 진실을 이야기하게 마련이다.바로 그러한 한 사람의 중요성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예컨대 1915년 터키에서 아르메니아인을 말살하려는 고의적인 정책으로 100만명이 도륙을 당했다. 도시마다 조직적인 학살이 이어졌고, 농촌 마을은 불탔고, 수많은 남녀와 어린이들은 사막으로 쫓겨나서 굶어 죽었다. 그런데 이 참혹한 사건에 항의하는 목소리는 별로 들리지 않았다. 히틀러가 그의 참모들에게 유태인 대량학살의 구상을 제의했을 때, 세계의 양심을 무마할 수 있다고 자신했던 것은 "결국 오늘에 와서 아르메니아인 대량학살에 대해 떠드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가공할 만한 파괴 수단을 가진 사람들은 죽음이 삶보다 더 강하다고 믿고 있으며, 또한 이것이 우리 시대의 힘의 논리인 것이다....생존자들은 자기의 죄의식이든 타인들의 죄의식이든, 그것을 정죄하기 위해 증언을 하려는 것이 아니고, 악에 대한 객관적 응징을 위해서 증언대에 선다. ...그 증언들이 기록되었다는 사실 만으로도, ... 이러한 책들은 인류의 영웅주의가 불가능한 건 아니라는 증거다.
118p-우리는 집단 강제수용소 수용자들의 모습이나 냄새를 쉽사리 간과한다. ... 결과적으로 수용자들 사이에 일어나는 상호간의 큰 반발심과 혐오감을 염두에 두지 않는 경향이 있다.그런 사실들을 기억한다면, 나치의 냄새나는 책략이 그렇지 않아도 촉발되기 쉬운 수용자들 간의 반감을 조장하거나 서로의 혐오감을 키워 연대감을 말살시키는 데 얼마나 유효한 것인가를 알 수 있게 된다. ... 자신이 인간 이하라는 자각을 하도록 강요받은 것이다. 반면에 SS 대원들은 그들의 총과 당당한 위품 때문만이 아니라 수용자들의 세계를 구성하는 오물로부터 말끔하게 격리된 세계에 서 있기 때문에 훨씬 우월한 인간으로 돋보이는 것이다. 아우슈비츠에서는, 수용자들은 일부러 고안된 오물의 진창길을 다녀야 했다. 깨끗한 도로는 SS대원들의 전용물이었다.왜 그토록 비참하게 수용자들을 학대하지 않으면 안 되었을까? 왜 그런 동물 이하의 상태에까지 인간들을 몰아넣지 않으면 안 되었을까? 이러한 의문에 대한 가장 의미심장하고도 정곡을 찌른 해답은 "SS대원들의 작업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다시 말해서 희생자들이 도저히 인간이라고 보기 힘든 천하고 더러운 몰골을 하고 있을수록, 학살자들은 인간을 대량 살육한다는 공포감을 덜 느끼게 되는 것이다.(지타 세레니 인용)한나 아렌트는 1974년 뉴욕의 강연에서 "사람을 죽이는 것보다 개를 죽이기가 쉽고, 개보다는 쥐나 개구리를 죽이는 것이 쉬우며, 벌레 가은 것을 죽이는 일은 아무것도 아니다. 즉 문제는 시선, 눈동자이다."122p-어떤 여자든 세수를 할 기회가 있는데도 하지 않거나, 신발 끈 매는 것을 에너지의 낭비라고 생각하는 여자에게 생의 종말이 시작되는 것을 보았다. - 바이스(Weiss)몸을 씻는다는 것은 건강상의 이유로 씻는 것과는 별개의 형식적 의미의 행동이라도, 수용자들에게 필요한 것이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그들은 그것이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일임을 알았다. 이를 중단한 사람들은 얼마 안 가서 죽는 것이었다.4시30분이면 커피-아무 영양가도 없이 고약한 냄새만 나는 엷게 우려낸 향료-가 배급되었다. 우리는 흔히 두어모금만 마시고 나머지로 세수를 하곤 했는데 우리들 중에 어떤 사람들은 이 보잘것없는 커피조차 안 마실 수가 없었기 때문에 씻기를 그만두는 것이었다. 이것은 무덤을 향한 첫걸음이었다. 하루도 빠짐없이 씻는 데 실패한 사람은 곧 죽는다. 이것은 철칙이었다. ... 결코 빗나가는 법이 없는, 틀림없는 전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