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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07.15 0715 트라우들 융에
- 2013.07.15 0715 일기
- 2013.06.13 2011년 필름
- 2013.03.21 트랑 방의 소녀, 닉 우트, 베트남 1972
- 2013.03.15 130314 부산 출장
- 2013.02.21 김사과, 금정연, 신형철
- 2013.01.28 First Aid Kit - King of the World
- 2013.01.18 바그너, 트리스탄과 이졸데 서곡, 주빈 메타
- 2013.01.18 130118 오필리아
- 2013.01.11 Tom Hunter
0715 트라우들 융에
흥미로운 구석이 많아서.
IM TOTEN WINKEL(Blindspot) 2002
여기서 인터뷰만 따온 건가?
- 히틀러가 엄청난 일을 해낸 부분은 따로 있죠. 독일 사람들의 양심을 조작했다는 겁니다. 한 병사에게 당신이 concentration camp에서 한 일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냐고 질문하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물론 그렇죠. 하지만 난 그걸 극복해야만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더 큰 일을 위해 우리가 감수해야 하는 희생입니다." 바로 이겁니다. 히틀러는 이렇게 말하곤 했어요. "걱정하지 마라, 내가 하라는 대로만 하면 된다. 책임은 내가 지겠다." 마치 한 사람이 누군가의 양심을 대리할 수 있다는 듯이요.
5'00''
이 모든 악의 근원이 히틀러로 돌려지고 그의 개인적인 취향과 성격과 루나틱적인 면들을 더 들여다보게 되면 이 모든 것을 그 한 사람이 일으켰다고 생각하게 되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그가 매력적이었고, 좋은 상사였고, 다정한 아버지상이었다는 비서의 증언은 그와 그렇게 가까이 일하지 않았던 사람에게도 적용된다. 운명이 나를 그런 곳에 데려다놓을 줄 몰랐다는, 내가 전혀 원하지 않았던 곳에 데려다놓을 줄 몰랐다는 그녀의 증언은 '어린 추종자'라는 말로 넘어가기엔 어려워보인다. 뭐, 그렇게까지 이 사람에게 harsh 할 필요도 없을 것 같지만.
8'
최후의 순간까지/
트라우들 융에(Traudl Junge)·멜리사 뮐러 지음/Claassen Verlag 출판사/272쪽
최후의 순간까지
지금 독일에서 가장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는 단연 베른트 아이힝어 감독의 ‘몰락(Der Untergang)’이다. 1945년 베를린이 소련군에 함락되는 마지막 열흘 동안의 긴박한 상황을 담고 있는 이 영화는, 지하 벙커 안으로 피신한 히틀러와 나치 고위지도자들이 어떤 비참한 최후를 맞았는지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전후 철저한 과거반성을 통해 다시 신뢰받는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인정받고자 하는 독일인들에게, 히틀러는 아직도 그 이름만으로도 상처가 되는 존재다. 그러나 독일의 유명배우 브루노 간츠(‘베를린 천사의 시’의 주연배우)가 연기하는 영화 속의 히틀러는 이러한 금기를 여지없이 깨고 있다. 점점 다가오는 대파국 앞에서 손을 심하게 떨면서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는, 몰락하는 지도자로서의 히틀러는 심지어 관객들에게 연민마저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이런 히틀러의 새로운 모습이 설득력을 가지는 이유는 이 영화의 기본 텍스트가 된 책이 바로 ‘히틀러의 마지막 비서’로 유명해진 트라우들 융에의 ‘최후의 순간까지’(Bis zur letzten Stunde)이기 때문이다. 뮌헨 출신인 트라우들 융에는 1942년 22세의 젊은 나이로 히틀러의 비서로 선택된 이후, 대다수의 나치 지도자들이 벙커 안에서 죽음을 맞는 순간까지 3년간을 최측근에서 지켜본 몇 안 되는 생존자 중 하나였다.
베를린 함락 이후 극적으로 탈출해 뮌헨으로 돌아간 융에는 이미 1947년에 벙커 안에서의 최후의 순간들을 기록해 놓았다. 그렇지만 50여년 동안 발표하지 않고 침묵을 지키다가 지난 2002년에야 자료와 함께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 내용을 공개했다. 인터뷰는 오스트리아 출신 감독 앙드레 헬러에 의해 ‘사각지대에서’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로 만들어졌고, 곧이어 언론인인 멜리사 뮐러가 그녀의 기록들을 연대기적으로 편집해서 출판한 것이 이 책이다. 융에 스스로는 범죄를 저질렀던 나치 정권에서 일했다는 것을 반성하기 위해 서술한 책이지만, 이 책은 전혀 다른 관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편집인 뮐러가 머리말에서 요약하듯 이 책은 ‘악인의 평범한 일상’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연인인 에바 브라운이 집안에서는 결정권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히틀러가 애견 블론디를 산책시킬 때는 예의바르게 그녀에게 허락을 구했다는 일화나, 무릎이 유난히 희었기 때문에 짧은 바지를 좋아하지 않았고, 또 시든 꽃을 버리는 것을 마음 아파했기 때문에 꽃으로 실내를 장식하는 것을 금지했다는 이야기들이 히틀러를 ‘악마’로부터 ‘보통 인간’으로 돌려놓는다.
이 책의 출판이 불러일으킨 파장은 트라우들 융에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이번 영화 ‘몰락’의 상영으로 다시 불이 붙었다. 독일 일간지 타게스슈피겔은 “우리가 ‘벌써’ 히틀러를 인간으로 그려도 되는가?”라는 질문으로 논쟁의 포문을 열었고, 슈테른과 슈피겔을 비롯한 시사잡지들은 히틀러와 제3제국을 특집으로 내놓았다. ‘히틀러 붐’이라고 해도 좋을 매체에서의 집중조명은 그 시각이 비판적임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위험한 요소를 포함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독일인들이 마음속 깊이 숨겨놓은 “우리만 잘못한 것이 아닌데 전쟁에서 졌기 때문에 모든 죄를 뒤집어 썼다”는 피해의식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트라우들 융에는 책의 말미에서 나치가 저지른 유대인 학살의 범죄에 대한 용서를 구하고 있다. 그렇지만 ‘인간적인 히틀러’가 내포하는 또 다른 시각은 “히틀러가 애초부터 악인이었기 때문에 악을 저지른 것이 아니다”라는 점이다. 권력을 가진 한 보통 ‘인간’이 어떻게 잘못된 생각과 결정으로 모두에게 엄청난 비극을 몰고 올 수 있는가, 그리고 현대의 정치가들도 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시사점을 제공하고 있다. 트라우들 융에는 “세상과 작별하기 전에 나 자신과 화해하려 한다”는 그녀의 말대로, 자료를 공개하고 나서 이 책이 출판되기 전인 2002년 2월에 눈을 감았다.
(유현주·독일 훔볼트대 박사과정)
그동안 블로그가 싫었던 것은 혹시 스킨 때문이 아니었을까. -.- 스킨을 바꿨더니 확실히 기분 전환이.
오늘은 정신을 차려보니 12시 넘어서 깼다. 참으로 잉여로운 하루... 일어나서 대충 뭐 좀 먹으려고 보니 먹을 게 하나도 없길래 만두를 사먹고 싶어서 나갔는데 비가 와서 그냥 편의점에서 라면과 오징어와 육포와 생수- 사면서 뭐 이렇게 거지 같은 구매목록이 있나 했다-를 사들고 왔는데 라면에 표고버섯 넣어 먹으려고 불리는 사이에 프렌즈 보면서 오징어를 먹다보니 배가 불러서 그만 잠들고 많았다는 잉여의 이야기.
일어나보니 벌써 저녁이었다. 갑자기 떡꼬치가 먹고 싶어져 백만년간 벼르던 떡꼬치를 만들고 다시 누워서 어제 마저 못 본 영화를 봤다.
몰락
Downf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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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독
- 올리버 히르비겔
- 출연
- 브루노 간츠, 알렉산드라 마리아 라라, 코리나 하파우치, 울리히 마테스, 율리아네 쾰러
- 정보
- 전쟁, 드라마 | 독일,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 156 분 | -
실은 오늘 마스터를 보고 싶었는데 모든 것은 우천취소하고.
Downfall (원제는 Das Untergang)
트라우들 융에를 연기한 배우가 무척 이뻤다.
이것은 실물 Traudl Junge http://en.wikipedia.org/wiki/Traudl_Junge
1942년부터 히틀러의 개인 비서였다. 히틀러의 자살까지 함께 했고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젊은 추종자'로 분류되었다.
히틀러, 여비서와 함께한 마지막 3년
- 저자
- 트라우들 융에 지음
- 출판사
- 한국경제신문사(한경비피) | 2005-05-15 출간
- 카테고리
- 정치/사회
- 책소개
- * 히틀러의 마지막 여비서, 50년 만에 입을 열어 ‘인간 히...
2002년 암으로 죽기 전에 회고록을 냈다. 한국에도 번역이 되어 있네. 그 전까지는 학계 관련 연구에서나 미디어에서 주목을 별로 받지 않았지만 이 책을 기점으로 주목을 받았다고. 아래는 인터뷰 동영상.
영화 엔딩의 인터뷰 클립에선 이런 말을 한다.
“ | Of course the horrors, of which I heard in connection of the Nuremberg trials, the fate of the 6 million Jews, their killing and those of many others who represented different races and creeds, shocked me greatly, but at that time I could not see any connection between these things and my own past. I was only happy that I had not personally been guilty of these things and that I had not been aware of the scale of these things. However, one day I walked past a plaque that on the Franz-Joseph Straße (in Munich), on the wall in memory of Sophie Scholl. I could see that she had been born the same year as I, and that she had been executed the same year when I entered into Hitler’s service. And at that moment I really realised, that it was no excuse that I had been so young. I could perhaps have tried to find out about things. |
두시간 반이나 되는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전쟁의 끝을 앞두고 벙커 안에서 불안을 견디지 못한 사람들이 술과 담배 그리고 파티로 시간을 보내는 장면. 현실감을 잃은 그곳에서 트라우들 융에가 울음을 터뜨리고 쓰러지는 장면이 굉장했다. 유튜브 클립이 있으면 좋으련만 @_@
Hitler's rant로 검색하면 나오는 장면에서는 예전에 본 패러디가 생각나서 진지하게 볼 수가 없었다.
음.
프렌즈 그만 봐야 하는데. 그냥 넋을 놓고 보게 된다. -.-
아. 트라우들 융에 연기한 독일 배우. 헐 부카레스트 출생...
g
흐엉 이쁘다...
물론 나는 고전적인 헤어스타일을 조아하기 때문에
더 이쁘구랴
트랑 방의 소녀, 닉 우트, 베트남 1972
"그렇지만 이런 불확실한 추정으로 사진 자체의 힘을 가라앉히지는 못한다. 개별적 사실을 뛰어넘어, 사진의 메시지는 보편화한다. ... 세월이 가면서 닉 우트의 사진은 흉측한 전쟁의 우화가 되면서 그 개별적 표현의 영역을 넘어섰다. 이 사진은 종군사진가가 갈등을 중지시킬 힘은 없어도 그 시각적 기록을 남기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었다. 그러니 폭격을 한 가해자들의 국적을 확인하는 것이 사실 타당할까? 반대로 우화나 심지어 우상으로서 한장의 사진은 역사적 사건을 증언하는 기록성을 완전히 잃는 것일까?"
- 논쟁이 있는 사진의 역사, 183p
130314 부산 출장
서울대 2만명이 모두 운동권이었어. 서울대, 연고대 애들이 데모를 참 잘 했지. 우리 땐 혁명이 노후준비였는데... 노후준비가 어딨어, 혁명이 노후대비였지. 요즘 사람들은 나가서 돈을 벌어야 한다는 그런 위기의식이, 있는 거죠.
광주 전까지만 해도 운동권들의 이데올로기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였어요. 하지만 광주를 겪고 사회주의로 바뀐 거지.
요즘의 노동운동은 질 것 같으면 싸움을 하지 않아. 쎄 빠지게 투쟁할 필요가 뭐 있냐는 거지. 그러니까 노동자 교육도 원전 읽기, 이데올로기부터 강습해야 하는데 요즘은 노동법 같은, '이기기 위한 교육'을 하는 거지.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는 것이 참 맞는 말이에요. 우리는 자본주의형 인간형이잖아요. 사회주의형 인간형을 길러내야 해요.
역사를 믿으니까. 노예제가 무너지는 데 500년이, 봉건주의가 무너지는 데 800년이 걸렸어요. 자본주의는 당연히 더 오래 걸리겠죠. 내 생전에 볼 수는 없어요. 하지만 역사는 반드시 올 거야.
돈에서는 자유의 냄새가 나잖아.
나는 인생을 헛되게 살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
신부전증, 간과 신장 이식, 끊임없는 좌절과 실패, 이기적인 노동자들에 대한 배신감, 하지만 그에 불구하고 계속 그를 현장에 붙잡아 놓는 것. 빚 진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 먼저 간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역사에 대한 믿음. 아들의 이름은 '승혁'.
자신의 신념을 지키면서 꿋꿋이 살아오신, 수많은 절망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원점으로, 언제나 원칙을, 언제나 원전을 기억하는 저 끈질김. 참 바보 같아 존경스럽다.
"사람에겐 생명이 두가지 있잖아요. 자연적 생명과 사회적 생명. 자연적 생명이 다하더라도 사회적 생명은 살아남아야 하지 않겠어요?"
김사과, 금정연, 신형철
소설에서 '윤리'를 찾는 나르시스트에게 고함
[프레시안 books] 제발트의 <토성의 고리>
김사과 소설가
"다시 윤리로 돌아와서, 그런데 왜 우리는 문학에 대해서 말할 때 윤리를 말하는가? 좀 더 구체적으로, 요즘 문학가들이 문학에 대해서 말할 때 윤리를 말하게 되는 순간은 언제인가? 그것은 문학의 위기에 대해서 말할 때이다.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문학의 영향력은 보잘것없이 축소되었다. 문학은 학교의 권위로 연명하며 소수의 독자를 위해 존재하는 살롱 문학과 평범한 사람들의 여가 시간을 채워주는 대중(상업) 문학으로 양분되었다. 이 중에서 사람들이 문학으로 지칭하는 것은 전자이고, 그런 전자의 문학이 대중(상업) 문학과 자신의 차이점을 내세울 때 호명되는 것이 바로 문학의 윤리다. 그것이 다른 하찮은 글과 문학을 차별화 시켜주는 것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나는 문학에 있어 윤리가 일종의 알리바이로 쓰인다는 의혹을 갖게 된다. 다시 말해, 문학적 인간들이 제발트의 글에서 이 시대에 흔치 않은 문학의 흔적을 보면서 열광하는 것은, 거기에서 자신들의 존재 근거를 발견하기 때문이 아닌가? 자신들의 정체성을 정당화하기 위한, 흔치않게 세련된 알리바이를 발견하기 때문이 아닌가?
(이것은 지식인/예술가를 주제/관객으로 다루는 홍상수의 영화가 '사람이 되지는 못해도 짐승은 되지 말자'며 '최소한의 윤리'를 주장하는 사태와 연결되어 있다. 결국 이 시대의 윤리란 사회적 급진성을 잃어버린, 더 정확히 말해 사회의 기득권이 되어버린 어떤 분야/사람들이 자신의 처지를 변명하는 알리바이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장되는 문학적인 윤리란 무엇인가? 제발트의 글을 통해 유추하자면 그것은 잊힌 것들을 애도하는 것이다. 파국의 풍경에서 통증을 느끼고, 결국 여행의 끝에 진짜로 몸에 마비를 일으키는, 신음하는 마음이다. 그러니까 이 윤리는, 엄청난 예민함에서 비롯된, 마비시키는 윤리다. 중단시키는 윤리다. 그렇기 때문에 제발트의 글은 소설과 에세이, 허구와 비허구 사이에서 어정쩡하게 끼어 있는 글 더미로 남을 수밖에 없다. 그의 윤리가 무언가가 되기를, 어딘가로 가기를 완강하게 거부하기 때문이다.
뭔가를 이루려는 인간의 광기가 우리 모두를 이런 폐허의 세계로 이끌었기 때문에, 그것을 잊지 않으려는, 그것을 막으려는 의지는 극단적인 회의주의의 형태를 띠게 된다. 이것이 전후의 지적/예술적 운동의 중심에 놓여 있는 회의주의다. 모든 것에 대한 절대적인 회의가 해체와 거부를 거쳐 마비로, 그러니까 완벽한 교착 상태로, 귀결되는 것은 논리적이다. 그러니까 아무데도 갈 수 없다.
그런데 이 비탄에 빠져, 아무데도 갈수가 없고 아무것도 할 수가 없게 된 마음을 윤리라고 부르는 것이 타당한가? 그건 이 회의주의를 가져온 원인 세계를 망각한 채로, 회의주의 외에는 아무것도 믿지 않게 된 일종의 종교에 가까운 것이 아닌가? 혹은 '최소한의 윤리'를 주장하는 스스로를 거울에 비추며 사랑에 빠지는 나르시시즘이 아닌가?
만약 이것을 윤리라고 부를 수 있다면, 그리고 이 윤리의 결과물을 문학이라고 한다면 이 윤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문학뿐이다. 아무것도 만들지 못하고 아무데도 이르지 못하지만 오직 문학이 되게 하는 윤리. 그것은 문학을 제외한 모든 것을 불신하는, 세계에 대한 총체적인 불신을 문학에 대한 열광으로 전도시키는, 지극히 낭만적인, 마음의 구조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50111111134117
"여기 시체가 있다니까요!" '소녀의 외침' 이후!
[親Book] 김사과의 <테러의 시>
금정연 활자유랑자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50120302125916
"물론 그들은 '어른'이고, 이런 문제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결코 화해할 수 없는 두 세계관의 대립을, "대체 무엇이 이들을 이토록 화나게 만들었는가?"라는 질문을 둘러싼 비평 게임을 통해 문학적인 것의 자장 안으로 끌고 들어간다. 그곳에서 그녀의 소설들은 안전하게 소비된다. 그 모든 외침과 분노와 항의는 젊은 작가의 개성적인 목소리로 환원되고, 그것은 우리 문학이 아직 건강하게 살아있음을 증거하는 다양성의 훌륭한 사례가 된다. 그 속에서 그녀는 '당돌한 아이'가, '무서운 신예'가, '문단의 테러리스트'가, '쾌활한 괴물'이 되는 것이다. 그녀로서는 억울하고 또 분한 일일 것이다."
[신형철의 스토리-텔링] 어떤 이야기가 더 마음에 드십니까?
"믿었기 때문에 살 수 있었다면, 살기 위해서는 믿어야 한다는 것. 이성으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고통이 닥쳤을 때, 이성으로는 도저히 가망이 없는 상황에 처했을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계속 나아가게 하는 것은 이성이 아닐 수 있다. 그렇다면 그런 상황에서 어떤 초월적인 것을 믿기로 결정하는 것은 지극히 합리적인 판단이라고 해야 한다. 이 판단은, 이성을 믿으라는 아버지의 말, 마음속의 일들은 이성이 해결해주지 못한다는 어머니의 말 중 어느 것에도 위배되지 않는다."
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72588/p/1
First Aid Kit - King of the World
First Aid Kit - King of the World
At ten in the morning
I was laughing at something
At the airport terminal
At nine in the evening
I was sitting crying to you over the phone
Well passing the border from a state to another
Filled with people whom I couldn't help to relate to
And we stopped a while at a roadside restaurant
Where the waitress was sitting outside smoking in her car
She had that look of total fear in her eyes
And as we drove away from there she looked at me and
She smiled
I keep running around
Trying to find the ground
But my head is in the stars
And my feet are in the sky
Well I'm nobody's baby
I'm everybody's girl
I'm the queen of nothing
I'm the king of the world
And once you asked me well what's my biggest fear
That things would always remain so unclear
That one day I'd wake up all alone
With a big family and emptiness deep in my bones
That I would be so blinded, turn a deaf ear
And that my fake laugh would suddenly sound sincere
Now I wasn't born for anything
Wasn't born to say anything
Oh I'm just here now and soon I'll be gone
I'm nobody's baby
I'm everybody's girl
I'm the queen of nothing
I'm the king of the world
Now everyday there's a short intermission
While I sleep they start dimming the lights
But I've seen everything I ever want to see
Screaming "Fire!" in a theater people taking their seats
Watch it all go down like a stone in a stream
If you fall for your reflection you will drown in a dream
Tell me something real
Tell me something true
I just want to feel there's something left that I can do
But I'm nobody's baby
I'm everybody's girl
I'm the queen of nothing
I'm the king of the world
바그너, 트리스탄과 이졸데 서곡, 주빈 메타
주빈 메타Zubin Mehta
바이에른 국립 오페라 극장Bayerische Staatsoper
130118 오필리아
Ophelia, John Everett Millais, 1851–2, Oil on Canvas
The Way Home, Life and Death in Hackney, Tom Hunter, 2000, Cibachrome print
Melancholia, Lars von Trier, 2011
밀레이는 이 작품을 위해 잉글랜드 서리 근교의 호그스밀(Hogsmill) 강가에서 넉 달 동안 머무르며 그림의 배경을 그렸다. 여기에는 수십 종의 다양한 식물과 꽃들이 세심하게 묘사되어 있는데 각각 상징적인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버드나무는 셰익스피어의 원작에서 강을 묘사한 부분에 등장하기도 하지만 '버림받은 사랑'이라는 상징 때문이기도 하다. 그 사이에 자라난 쐐기풀들은 고통을 의미하며, 데이지는 순수, 팬지는 허무한 사랑, 제비꽃은 충절을 암시한다. 죽음을 상징하는 붉은 색의 양귀비는 유난히 강조되어 있다. 또 그림 오른편 나뭇가지는 해골의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다.
주인공 오필리아의 모습은 배경을 완성한 후 런던에 있는 자신의 스튜디오로 돌아와 엘리자베스 시달(Elizabeth Siddall)이란 여성을 모델로 그렸다. 그녀는 강물에 빠진 모습을 연기하기 위해 물을 가득 채운 욕조 안에 누워서 포즈를 취하였다. 욕조의 차가운 물은 램프로 데웠는데 램프의 불이 꺼져 그녀가 심한 감기에 걸리기도 하였다. 이 때문에 그녀의 아버지가 밀레이에게 병원비와 치료비를 대지 않으면 법정에 고발하겠다고 협박했다는 에피소드도 있다. 모델인 엘리자베스 시달은 나중에 단테 가브리엘 로제티(Dante Garbriel Rossetti)의 아내가 되었다.
LIFE AND DEATH IN HACKNEY:
This series puzzles the mind as much as it excites the eye. More overtly than other series, these images convey a bleak outlook, but one which is familiar and fair, and broadly resonant with today’s society. Subjects are shown in soporific states, or role-playing ‘death scenes’, and these are located in overgrown fields, wasteland, or graveyards. In fact, subjects do not always dominate these particular frames. Indeed, so much of their environments have been included that emphasis is shared with the placement as much as the person. This assists the ethereal, or ‘other-worldly’, quality to the frames as the wild, untouched-looking country found in Hackney seems apocryphal and ‘dream-like’, despite its contemporary reality. In a sense this series suggests Hunter is, among several other roles, an unusual chronicler of contemporary, urban Britain.
Tom Hunter
마지막 물음을 던지자. 영화 대단원에서 우리 대부분이 느낀 저 불길한 매혹의 정체는 무엇일까. 단지 아름다운 영상의 속임수일까? 혹은 저것은 영화일 뿐이라는 안도감? 아닐 것이다. 혹자는 이 영화에서의 종말이 ‘완벽’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래, 이 세계의 모든 불행과 비참이 철저히 차별적인 데 반해 이것은 모두에게 완전히 평등한 종말이고, 타협적으로 희망을 남기는 여느 종말 서사들과는 달리 일말의 가능성도 남기지 않는 깨끗한 종말이다. 이렇게, 모두가, 동시에, 사라질 수 있다는 보장만 있다면, 우리에게는 필사적으로 이 세계의 종말을 막아야 할 간절한 이유가 과연 얼마나 있는 것일까? 영화관을 나와서 그제야 눈물을 흘린 몇몇 관객은 아마도 그 이유를 찾는 데 실패했기 때문에 울었을 것이라고, 나는 짐작한다.
신형철의 스토리-텔링
Tom Hunter
After The Party
Eve of The Party
The Way Home
The Vale of Rest
Woman Reading Possession Order
The Art of Squatting
A Woman Asleep
Death of Coltelli
Anchor and Hope
Road Rage Thug
Holly Street Voids
Naked Death Plunge
Travellers
Shopkeepers off-license
Ghetto model detail
Ghet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