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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7.24 120724 멜랑콜리아
  2. 2012.06.19 120619 영화 리뷰 등
  3. 2012.06.02 120602 일상의 균열
  4. 2012.05.20 A Single Man (2009) / Tom Ford
  5. 2012.05.02 120501 헌법의 풍경
  6. 2012.04.22 120422 두개의 선
  7. 2012.04.12 나는 레즈비언 대통령을 원한다
  8. 2012.04.03 120403 An Education
  9. 2012.03.27 120326 한국문학과 그 적들
  10. 2012.02.17 120217 일기

120724 멜랑콜리아

"영화의 대단원에서 우리 대부분이 느낀 저 불길한 매혹의 정체는 무엇일까. 단지 아름다운 영상의 속임수일까? 혹은 저것은 영화일 뿐이라는 안도감? 아닐 것이다. 혹자는 이 영화에서의 종말이 완벽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래, 이 세계의 모든 불행과 비참이 철저히 차별적인 데 반해 이것은 모두에게 완전히 평등한 종말이고, 타협적으로 희망을 남기는 여느 종말 서사들과는 달리 일말의 가능성도 남기지 않는 깨끗한 종말이다. 이렇게, 모두가, 동시에, 사라질 수 있다는 보장만 있다면, 우리에게는 필사적으로 이 세계의 종말을 막아야 할 간절한 이유가 과연 얼마나 있는 것일까? 영화관을 나와서 그제야 눈물을 흘린 몇몇 관객은 아마도 그 이유를 찾는 데 실패했기 때문에 울었을 것이라고, 나는 짐작한다." / 신형철의 스토리-텔링, 멜랑콜리아

120619 영화 리뷰 등

*


할머니 병문안 가는 길에 난 할머니 이름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만약 혼자 병원에 갔다면, 「저, 할머니 병문안을 왔는데요.」「할머님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생각해보니 친척들 이름을 거의 모른다. 고모부는 때로는 이모부가 되기도 하고 고모부가 되기도 하지만 이름을 불리는 일은 없다. 저마다 할머니를 엄마, 장모님, 할머니라고 달리 부르지만 그 아무도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가족 관계에 기반한 호칭은 개인성을 완벽히 지운다-고 드립을 치려다가 그냥 뒤늦게 할머니에게 미안하다는 걸로 퉁치기로 한다.


*


밤섬


사람 위에 사람을 얹고 사는 인구 천만의 도시에 uninhabited patch of land가 존재한다는 건 초현실적이다. 카약을 타고 밤섬에 상륙하고 싶다.



*


시작은 키스!


- 도발은 없지만 달콤하다. 초콜릿의 농밀함도 레몬의 톡 쏘는 맛도 없지만 싸구려 설탕 덩어리는 아니다.

「아름다운 여자군. 뭘 마실까? 커피? 아니야 그건 너무 지루하지. 차? 아니야. 쥬스. 쥬스다. 열대 과일은 아닐거야. 구아바나 망고는 너무 무섭잖아. 살구, 살구 쥬스다. 살구 주스를 마시면 건너가서 말을 걸어야겠어」

「그와 함께 있으면 시간이 가는 줄 모르겠어. 일주일에서 목요일이 빠진 것만 같은 기분이야.」


- 팝콘무비를 보지 않게 된 순간부터 난 영화에서 도발을 원한다. 솜사탕 같은 영화도 때로는 괜찮지만 도발 없는 영화는 지루해.



미래는 고양이처럼!(The Future)


- 2011년 7월, 링컨 센터에서

- 미란다 줄라이와 그의 남자친구는 성숙하지 못한 인간이다. 눈 앞의 책임을 마주할 줄 모르고 유아기로 회귀하는 30대 커플이다. 간지러운 솜사탕 같은 장면들도 있지만 현실을 마주하지 않는 인물들 (그렇다고 이상을 잡으려 노력하는 인간도 아닌) 은 보는 이를 짜증나게 한다. 감정이 메마른 나에겐 그 간지러운 솜사탕도 백설탕 덩어리일 뿐이었다. 



멜랑콜리아


- 영화를 관통하는 바그너의 음악은 아름다웠지만 힘겨웠다. 압도적인 화면과 다가오는 멜랑콜리아, 결국 죽어버린 건 가장 의연한 척 하던 존이었다. 강철이모는 'the earth is evil, we don't need to greif for it'이라고 말하면서도 조카를 위해 비밀 동굴을 만들어준다. 어쩌면 그 아이는 저스틴에게 망가진 지구 상에 마지막으로 남은 빛/빚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뭇가지 몇 개 밑에 앉아 손을 잡고 멜랑콜리아를 기다리는 마지막 씬은 근래 본 것 중 어쩌면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멜랑콜리아를 본 지인은 "극심한 우울을 겪은 사람은 지구가 끝나는 것이 차라리 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하지만 클로에와 저스틴 사이에서 멋있는 건 종말을 받아들이는 저스틴이었을지 몰라도 아름다운 건 겁에 질려 아이를 안고 뛰는 클로에였다.


다른나라에서


- 유준상은 정말 일취월장하는 듯. 넝쿨당에서 요즘 국민 남편이라더니. 이자벨 위페르고 누구고 간에 다른나라에서는 홍상수 영화 중에 가장 발랄한 영화였다. 돌고 도는 우연적 회귀는 여전하지만 옥희의 영화의 처연함도, 북촌방향의 쓸쓸함도 없다. 아마 홍상수는 이 영화를 만들면서 굉장히 즐겁지 않았을까 싶다. 만년필-소주병-우산으로 이어지는 뫼비우스의 띠. 세 번의 안느는 모두 다르지만 가장 빛나는 건 변하지 않는 유준상의 천진함이다. 웨어 이즈 더 라이트 하우스? 아! 라이트 하우스! 아이돈노. 하하하!


내 아내의 모든 것


- 즐거웠지만 시간이 아까웠다. 팝콘무비를 즐기는 능력을 상실해가는 것만 같은 느낌이야. 그 와중에 류승룡이 꼬시면 넘어갈 것도 같다는 생각. 그래도 나쁘진 않았다. 후반부에서 교훈적으로 이어지는 부분이 기특하면서도 찌질했다.


어벤져스


- 헐크가 좋아. 언제나 기승전결을 엄격하게 지키는 헐리우드 히어로 무비의 미덕. 

- 덧. 마크 루팔로는 엉덩이가 예쁠 것 같다. 크리스 헴즈워스가 왜 섹시하댔는지 알 것 같다. 


HBO Girls


- 리나 던햄은 유의해 볼만하다. 하지만 시즌 1의 9화밖에 안됐는데 제자리 걸음하는 듯한 캐릭터들은 아쉽다.



120602 일상의 균열


*


외할머니가 대장암에 걸리신 뒤, 우리집의 일상에는 조금씩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나는 처음으로 엄마가 우는 것을 엿들었고, 엄마는 생전 하지 않던 외박을 하기 시작했다. 외박이래야 봤자 할머니집에 가서 자고 오는 것에 불과하다. 그런 당연한 일마저 하지 않고 집에 자신을 붙들어 대던 엄마다. 자식들한테 밥 챙겨주기 강박증에 시달리는 엄마는 나에게 내일 동생이 먹을 삼겹살을 사올 것을 거듭 당부한다. 


아빠가 변한다. 나이가 들면 아버지가 작아지는 것이 느껴진다더니. 물론 나에게 아빠는 아직도 무서운 존재다. 나는 보통 불편해서 아빠와 식사를 함께하지 않는다. 연설을 늘어놓거나 내 진로에 대해 물어볼까봐 '두려운' 탓이다. 성가시다기 보다 두렵다. 하지만 어느샌가 아빠는 나를 봐도 잔소리를 하지 않는다. 저번에 술을 마시고 온 아빠는 나를 앉혀놓고 "엄마랑 나는 요즘, '멘붕'이다. 너 '멘붕'이 뭔지 아냐?"고 했다. 나는 자리를 피했다. 


오늘은 내가 만들 계란죽을 만들다가 아빠 것까지 만들었다. 같이 마주보고 밥을 먹었다. 아직 제대로 된 대화는 하지 않지만 새로운 종류의 불편함이 생겼다. 아버지는 그 연령대의 남자들이 그렇듯 어깨가 좁아진 듯 하다. 내가 만든 맛없는 계란죽을 먹고 아빠는 "점심은 니가 했으니 저녁은 내가 할게"라고 말했다. 예전과는 다른 의미로, 불편했다.




A Single Man (2009) / Tom Ford




뛰어난 연기, 훌륭한 연출, 부족한 감정. 


生과 죽음의 대비를 조금 더 부각시켰으면 내가 정말 좋아할만한 영화가 됐을텐데. 다시 보고 싶은 좋은 씬들이 많다. 줄리안 무어와의 저녁, 짐을 처음 만나는 장면, 마드리드 남자. 인상적인 장면은 많은데 전체는 충분한 폭발력을 지니지 못했다. 덜 꿰어진 진주 같은 느낌. 배우 하나하나 아름답다. 세트가 아름답다 했더니 감독이 유명 디자이너란다. 연출도 편집도 모두 훌륭하지만 채워지지 못한 구멍이 있다. 



120501 헌법의 풍경

(* 는 나, - 는 요약)



머리말


"우리는 그동안 승자의 일방적인 폭력이 지배하는 까닭에 표면상 평온해 보이는 사회를 '법의 지배'로 오해해 왔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법의 탈을 쓴 폭력의 지배에 지나지 않습니다. '신의 명령'과 같은 절대적인 규범이 사라진 세상에서 정의란 결국 올바른 절차와 합리적인 토론을 통해서 함께 만들어가야 하는 것일 수 밖에 없습니다. 정의나 진리를 찾아가는 이런 과정을 일부 전문가들이 독점해서는 안 되며 그럴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정의를 찾아가는 그 과정에 당당한 주체로서 참여하기 위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이 국가, 법, 법률가, 인권의 문제입니다. 헌법은 국가를 언제든지 괴물로 변할 수 있는 위험한 존재로 바라봅니다. 헌법과 법률의 목적은 흔히 오해하듯 국민을 통제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국가권력의 괴물화로부터 시민들을 보호하는 데 있습니다. 그리고 헌법과 법률이 권력통제라는 제 기능을 다하도록 돕는 일차적 책임은 변호사, 판사, 검사를 비롯한 법률가에게 있습니다."



2장 <국가란 이름의 괴물>


"국가와 정권은 분리되어야 할 대상"

- 정권은 오류를 범할 수 있지만 국가는 오류를 범할 수 없다는 전제 위에 서 있는, 국가를 절대적인 선으로 받아들이는 의식 세계


- 국가를 '사랑'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국가를 '통제'하는 것


- 1933년 1월 30일, 아돌프 히틀러는 취임 후 일주일이 되기 전에 국회에서 긴급명령을 통과시켜 공산당이 소유한 모든 빌딩과 출판사들을 몰수했고, 평화주의를 표방하는 단체들을 해산시켰다


- 나치 통치의 근간을 이루었던 긴급 명령에는 민족과 국가를 보호하기 위하여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를 비롯한 모든 기본권을 폐지하고, 항구적인 비상사태에 대처하기 위해 법치주의를 포기한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이른바 보호구금(Protective Custody) 제도도 이때 도입되어 영장 없는 체포가 가능하게 되었다. 보호구금이 필요한 사람들은 언제든지 재판없이 투옥되어 강제수용소로 보내졌다. 그가 공산당, 노동조합, 사회민주당 등 반대 세력을 완전히 격퇴하는 데 소요된 기간은 불과 3개월이었다.


- 많은 사람들이 나치 독일을 히틀러라는 미칭광이와 그를 둘러싼 몇 명의 극렬한 동조자들에 의해 벌어진 일회적이고 지극히 예외적인 사건으로 이해한다. 하지만 홀로코스트는 근본적으로 완벽한 시스템의 승리라 할 수 있다. 


참고도서 - <IBM과 홀로코스트>, 에드윈 블랙 


- 정신 나간 사람들 몇 명의 손으로는 이런 거대한 범죄가 이루어질 수 없다. 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이 독재 권력의 전횡에 참여하거나 방관할 때에만 비로소 국가라는 괴물이 힘을 발휘한다.


- 프리모 레비는 "괴물들은 존재하지만, 그들의 숫자는 너무 적어서 큰 위협이 되지 못하며, 정말로 위험한 존재는 아무런 의문도 제기하지 않은 채 정부의 말을 그대로 믿고 행동하는 관료들"이라고 했다.


- 국가에 의해서 대량 학살 등의 범죄가 벌어질 때, 그에 관여하는 사람은 대개 가해자, 피해자, 방관자, 구조자의 4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아돌프 히틀러, 아돌프 아이히만, 이오시프 스탈린, 라브렌티 베리야 등이 가해자의 전형이라면, 오스카 쉰들러나 라울 발렌베리 같은 사람은 구조자의 모범이고, 대학살 사실을 알면서도 이를 방관한 연합국이나 동유럽의 주민들은 방관자로 분류할 수 있다. 


- 스탠리 밀그램의 실험. http://en.wikipedia.org/wiki/Milgram_experiment#Results


* 이 주제가 자꾸 반복됨. 이 실험 자체가 아돌프 아이히만 재판 이후에 실제로 사람들이 권위에 얼마나 쉽게 복종하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디자인되었다. 한 참가자는 몇 년 후 베트남전이 벌어졌을 때 양심적 병역거부 선언을 했다. 


While I was a subject in 1964, though I believed that I was hurting someone, I was totally unaware of why I was doing so. Few people ever realize when they are acting according to their own beliefs and when they are meekly submitting to authority… To permit myself to be drafted with the understanding that I am submitting to authority's demand to do something very wrong would make me frightened of myself… I am fully prepared to go to jail if I am not granted Conscientious Objector status. Indeed, it is the only course I could take to be faithful to what I believe. My only hope is that members of my board act equally according to their conscience…


이 실험 이후로 실험의 윤리성 논란이 일어 밀그램은 예일대를 떠나야 했고 더 이상 이런 충격적인 실험은 불가능하게 되었다.


* 순종을 미덕으로 받아들이는 사회가 얼마나 끔찍해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6장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헌법 정신>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 종교의 자유, 양심의 자유


- 공산주의 허용 여부와 관련해서 가장 자주 사용되는 표현이 '방어적 민주주의'. 민주주의의 핵심 요소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을 인정하지 않는 당헌, 강령을 가지고 있거나 정당 간부의 활동에 비추어 이를 인정할 수 있으면 위헌 정당으로 해산이 가능하다는 것이 그 내용이다. 곧, 다른 자유는 모두 허용되지만 민주주의를 뒤집어엎을 자유는 인정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 논리는 굉장히 위험하다. 탄탄한 민주주의의 기반이 형성된 이후에는 공산당이라 해도 굳이 방어적 민주주의의 이름 아래 해산할 이유가 없다.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정해주는 것이 사상의 자유이고, 민주적 기본질서의 핵심이다. 방어적 민주주의는 알맹이가 빠진 민주주의의 껍질일 뿐이다. 


8장 <잃어버린 헌법, 차별받지 않을 권리>


- 개인과 개인 관계는 사법에 의해서만 해결하는 것이 한국 법 체계의 근간이다. 기본권 침해가 있을 경우 개인과 개인 관계에 대해서도 헌법이 직접 적용될 수 있는지의 문제는 '기본권의 사인(私人)에 대한 효력'이라 해서 헌법의 중요한 논점의 하나로 꼽힌다.


- 학계의 다수 의견은 기본권 조항의 효력을 인정하면서도 '직접'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사법 규정을 통해 '간접적으로' 적용되어야 한다는 입장이 대부분이다. 


문제는 1) 사법에 의해서는 손해배상 청구 이외에 차별행위자를 처벌하거나 차별행위를 강제로 시정할 방법이 없다. 2) 민사 손해배상액이 너무 적다. 3) 차별 당한 사람에게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 발생과 인과관계에 대한 입증 책임이 모두 지워진다.


대안으로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 / 시정명령 도입 등이 논의되고 있으나...


- '국민들의 의식 개혁'이 중요하단 소리가 많이 나온다. 차별 금지 소송의 증가가 그 시발점이 될 수 있다. 인권위 등에서 차별 금지 소송을 전담하는 분야를 둬야 한다. '전문 싸움꾼'들이 필요하다. 




120422 두개의 선





* 영화 보기 전에 카페에서 끄적임


(K 시험을 보고 나와서 시험장에서 만난 선배와 그 여자친구와 점심을 먹고) 


제도권에 편입되기에 나는 너무 어리다는 생각을 했다. 조금 더 무너져내려야 할 것 같다. 나이를 먹는 것이 겁난다. 그러면서도 빨리 나이 들고 싶다. 그건 아마 '이대로' 나이를 먹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일 거다. 죽은 이야기가 아닌 살아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 영화 보고 지하철에서


패배했건 아니건, 이 영화의 '결말'은 그리 중요한 게 아니었다. 어디까지가 사회가 원하는 것이고 어디까지가 내가 원하는 것인지 감독이 치열하게 고민했음을 느꼈다. 눈물이 자꾸 났던건 나도 거기에 있다는 자각이었다. 비단 결혼이 아닌 다른 일이라 해도, '제멋대로' 살고 싶은 것과 보편적인 방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싶은 욕망 사이에서 난 매일 고민한다. 나도 더욱 치열하게, 고민해야겠다. 목이 메어오는 아픔을 아무리 많이 느끼게 되더라도 그건 상관 없다. 마음대로 되지는 않겠지만 포기와 투쟁 사이에는 정말 큰 간극이 존재하는 거니까. 마지막 상영일에나마 이 영화를 본 게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영화를 보면서 개청춘이 보고싶단 생각을 했는데 알고 보니 같은 감독이었다. 자신의 생각을 가장 효과적으로 설득하는 방법은 삶으로 말하는 것이다. 나도 홀로서는 연습을 해야겠다. 잊고 있던 독립투쟁을 재개할 때가 된 것 같다. 





나는 레즈비언 대통령을 원한다

“나는 레즈비언 대통령을 원한다. 나는 그가 에이즈에 걸렸고, 국무총리는 의료보험도 안 되는 동성애자이며, 백혈병을 피할 수 없는 오염된 쓰레기들이 바닥에 뒹구는 어딘가에서 자란 인간이었으면 좋겠다. 나는 이 나라 대통령이 16살 때 낙태를 했으며, 마지막 애인은 에이즈로 죽었고, 눈을 감으면 자기 품에서 죽어간 애인의 모습이 늘 떠오르는 그런 여자였으면 좋겠다. 나는 이 나라의 대통령이 냉난방이 안 되는 집에서 살았고, 병원에 가기 위해, 가족생활보조연금을 타기 위해, 고용안정센터에서 구직을 하기 위해 줄을 섰던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실업자였고, 해고당했었고, 성적으로 학대당한 적이 있으며,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쫓겨난 적이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그가 어느 후미진 골목에서 밤을 새운 적이 있고, 강간에서 살아남은 자였으면 좋겠다. 누군가와 지독한 사랑에 빠졌었고, 상처 입었으며, 많은 실수를 저질렀으나 거기서 교훈을 얻은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나는 이 나라 대통령이 흑인 여자이면 좋겠다. 그가 썩은 이빨들을 가졌으면 좋겠고, 병원에서 나오는 맛없는 식사를 먹어본 사람이면 좋겠다. 그가 마약을 경험해 보았고, 시민 불복종을 실천해 본 사람이면 좋겠다. 그리고 나는 왜 내가 요구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은지 알고 싶다. 왜 사람들은 우리로 하여금 대통령은 언제나 꼭두각시이며, 창녀의 고객이며, 결코 창녀 자신일 수는 없다는 사실을 믿게 한 건지 알고 싶다. 왜 그는 항상 사장이며 결코 노동자일 수는 없는 건지, 왜 그는 언제나 거짓말쟁이며, 언제나 도둑이고, 결코 처벌되지는 않는 건지 알고 싶다.” 


조에 레오나르드

120403 An Education






*

줄거리만 놓고 보자면, 똑똑한 여학생이 매력적인 나이 든 남자에게 빠져서 인생을 망칠 뻔하다가 정신을 차리고 대학에 갔다. 는 뻔한 얘기다. But it's not a plain cautionary tale. 

제니가 정말 몰랐을 것 같지는 않다. 늪에 빠질 때, 아무리 천천히 가라앉더라도 주위 풍경의 미세한 변화는 모르고 넘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냥 제니는 정말, 지루하고 답답했을 뿐이다. 인생에는 지름길이 없다는 걸 몰랐고, 있다 해도 그리 쉽게 찾아오진 않는다는 것도 몰랐을 거다. 믿기 힘든 행운이 찾아왔을 때 그걸 부정하기보다는 온 몸을 던지는 걸 택한 거다. 나라도 사실 그랬을 것 같아. 인생의 적지 않은 부분은 지루하니까. 그리고 난 어리니까. 네 말대로 그 교장은 언젠가 '그 모든 교육'의 이유를 가르쳐야 할테니까. 그 해소되지 않을 것만 같은 답답함. 아무도 왜 교육을 받아야 하는지 알려주지 않았으니까. so she had to learn it the hard way.


*

Best Scene #1 (link)


I bought this for you.   

That's very kind of you.

But I can't accept it.

Why not?

It's because of people like you that I plough through illiterate essays by Sandra Lovell about her pony. But I know where this comes from, Jenny. And If I took it, I'll feel like I'd be betraying both of us.

...  

You can do anything you want. You know that. You're clever and you're pretty... Is your boyfriend interested in clever Jenny?

I'm not quite sure what you're trying to tell me.  

I'm telling you to go to Oxford. No matter what. 'Cause if you don't, you'll break my heart.  

Where did you go?  

Cambridge.  

Well. You're clever. And you're pretty.

So presumably, Clever Miss Stubbs won. And here you are with your pony essays. I don't know. These last few months, I've eaten in wonderful restaurants, and went to jazz clubs, and watch wonderful films, heard beautiful music...   

Jenny, you're taking precautions.

Nothing to do with that.

Isn't it?

Maybe will our lives going to end up with pony essays. Or housework. And yes, maybe we'll go to Oxford. But if we're all going to die the moment we graduate, Isn't it what we do before that counts.  

I'm sorry you think I'm dead.

I don't think you're dead. I just...

I think you'd better get to your next class.


*

Best Scene #2


Jenny, I'm sorry. I know I've made a mess of everything. All my life I've been scared, I didn't want you to be scared. That's why I wanted you to go to Oxford. And then along came David... he knew famous writers, he knew how to get to classical music concerts... But he wasn't who he said he was. He wasn't who you said he was, either. 

The other day, your mother and I were listening to a programme on the radio about CS Lewis, and they said that he moved to Cambridge in 1954. I said, Well, they've got that wrong, our Jenny wouldn't have his name on her book, if he moved to Cambridge. 

There's a cup of tea, and some biscuits out here.


"나이트 클럽에 대해선 모르지만 '교육'에 대해선 알잖니." 


*

Best Scene #3



Anyway, I can see you are far more in need of responsible advice than I realised. Nobody does anything worth doing without a degree. Nobody does anything worth doing with the degree. No woman, anyway.  

So what I do isn't worth doing. Or what Miss Stubbs does, or Mrs Wilson, or any of us here. Because none of us would be here without the degree, you do realise that, don't you?  And yes, of course studying is hard, and boring...  

Boring!  

I'm sorry?

Studying is hard and boring. Teaching is hard and boring. So what you're telling me is to be bored, and then bored, and finally bored again, but this time for the rest of my life. This whole stupid country is bored. There's no life in it, or colour, or fun. It's probably just as well that the Russians are going to drop a nuclear bomb on us any day now. So my choice is to do something hard and boring, or to marry my Jew, and go to Paris and Rome and listen to jazz and read and eat good food in nice restaurants and have fun. It's not enough to educate us any more, Mrs Walters. You've got to tell us why you're doing it.  


*

인생엔 정말 지름길이 없나봐. 이런 얘기 저런 얘기 아무리 해봐도 결론은 닥공이네 ^^^^^^^



그리고 Juliette Greco의 Sous le ciel de Paris




120326 한국문학과 그 적들




*

조영일의 글쓰기 스타일은 단정적인 말투, 괄호 사용 남발, 잦은 비약 등 때문에 거부감이 든다. 어쨌든 나는 그가 의미있는 지적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글에서 느껴지는 바로는 필자가 상당히 성격이 급하지 않을까하는 의심이 든다. (ㅋㅋ)


*

문학을 보호해야 한다 / 8. 한국문하의 우울 / 8.1 문학과 국가 / 조영일


박금산의 <바디페인팅>(실천문학사, 2007)은 한국사회에 발을 딛고 살아가는 한 젊은 소설가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작품은 '구보씨 계열'로 분류될 수 있을 텐데, 이전의 구보들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소설가 자신의 치부를 까발리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 뿐만 아니라, 소설 속 주인공은 작가와 거의 구별이 가지 않을 정도로 밀착되어 있어, 최소한의 허구적 장치마도 배제된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러나 이 소설의 진짜 주인공은 주인공 '박금산'도 작가 '박금산'도 아니다. 노드롭 프라이리식으로 이야기 하자면, 이 작품은 '고백'이라기보다는 '아나토미(anatomy)'에 가깝기 때문이다. 즉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작가가 얼마나 자신을 진실하게(있는 그대로) 고백했는지가 아니라 얼마나 자기 자신을 개념화시켰는지에 있다. / p. 204 (강조는 인용자)

* 노드롭 프라이리

한국문학시스템에서 시장의 후퇴와 국가의 등장은 거의 동시적으로 이루어진 것처럼 보인다. 다시 말해, 문학시장의 위축과 작가들의 생계위협 때문에, 부득이 국가가 문학판에 끼어들게 되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일지도 모른다. 객관적인 수치만 보더라도 문학시장이 이전보다 더 위축된 것 같지 않으며, 또 작가들의 생활 역시 과거부터 궁핍해졌다고 볼 수도 없다. 그런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느끼는 것은 아마 외적상황의 변화보다는 내적상황(예컨대 창작태도)의 변화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소위 '문학의 위기' 이전의 작가들은 '빈곤'을 감수해야 하는 조건으로 받아들였던 것에 반해, 오늘날의 작가들은 '빈곤'을 근본적으로 문학을 위협하는 존재로 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변화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이제는 더이상 작가가 일반인과 구별된 존재가 아니며, 그의 창작활동 역시 일반 회사생활과 별반 다를 게 없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그러므로 문학가들에게 '빈곤'은 이제 '시적 언어'에 도달하기 위한 단련과정이라기보다는 창작활동을 저해하는 장애물로 간주되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오늘날 작가들이 호소하는 '문학의 위기'는 이처럼 신자유주의(그리고 중심매체의 변화)에 의해 위축된 문학시장의 '가난(위축'이 아니라, 이전부터 존재해온 '가난'에 대한 창작자의 변화된 감각에서 생긴 것이다. 물론 이런 변화의 원인은 그동안 작가들에게 부여되어온 독특한 가치의 소멸에 있다 하겠다. 작가들은 더이상 시민적 생활에 대한 동경을 품고 살아가는 '길 잃은 시민(보헤미안)'(토마스 만)이 아니며, 기껏해야 시민의 대열에 보조를 맞추면서 그로부터 낙오되지 않으려고 아등바등하는 사람들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들에게 (소)시민적 생활이란 동경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어떻게 하든 사수해야만 성(城), 다시 말해 의무이자 권리인 셈이다.

문학가들의 이러한 변화에 대해 왈가왈부할 생각은 없다. 문제는 물질적으로는 시민을 자처하면서도, 정신적으로는 여전히 과거로부터 넘겨받은 어떤 우월감을 주장한다는 데 있다. 여기서의 우월감이란 적어도 일반시민의 노동과는 구별된 보다 근본적인 무엇이라는 사고에서 나온 것이라 하겠는데, 사실 이런 전제들이 없다면, 막대한 공적 자금을 생활고에 시달리는 하층 빈민이 아닌 문학가들에게 투여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문학가들의 이런 모순된 자기규정이야말로 한국문학의 마지막 생존 기반이자 문학과 국가의 행복한 동거를 가능하게 하는 원동력일지도 모른다.

 이런 배경을 염두에 둔다면, <바디페인팅>이 왜 소설가의 '우울'을 문제 삼는지는 자명하다. 자유로워야 하는 문학이 국가기금의 포로가 되고 있는 것에 대한 양가감정(분노와 고마움) 때문이다. ...  

8-2 투명문학의 꿈

그러나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 작품은 '고백'이 아니라 '아나토미'다. ...

황현산은 작가의 이상한 염결성(자신을 투명하게 만들려는 욕구)이 사회-윤리적 의지(또 하나의 삶을 향해 말을 건넴)와 굳게 맞물려 있다고 보는데, 여기서 '이상한' 염결성이라 함은 타인 앞에서 자신의 치부를 '완전히' 드러내는 것을 의미한다. 즉 그것은 다른 말로 수치심을 도려내는 것이다.

... <바디페인팅>은 오늘날 한국의 소설가가 마주할 수밖에 없는 음울한 현실을 상세하게 그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찌 된 일인지 우스울 뿐만 아니라 경쾌하기까지 하다. 그리고 그와 같은 경쾌함은 매우 현실적인 것에 대해서조차 '비현실적인 느낌'을 갖게 만든다. ... 어느 수준을 넘어선 객관묘사는 도리어 현실을 비현실적으로 만드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유머는 이런 객관화의 극단적 표상행위에서 발생하는 감각의 역전을 뜻한다. ... 유머(경쾌함)는 역으로 무언가를 현실적이지 않게(보이지 않게) 해소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그와 같은 염결성이 은폐(해소)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 <바디페인팅>에서의 유모는 완전한 자기폭로(자기투명화)에서 생기는 자기 자신에 대한 거리감에서 발생하고 있다. 이는 내면을 불투명하게 만드는 수치심을 제거하지 않는 이상, 결코 획득될 수 없는 것이 유머라는 말이기도 하다. 

8-3 잉여로서의 빈곤

... 근대문학에서 '빈곤'은 매우 중요한 테마이다. ... <바디페인팅>은 자본에 저항하는 문학가라면 어쩔 수 없이 마주하게 되는 문제(빈곤)에 대해 어떻게 말하고 있을까? 이 같은 물음은 어쩌면 우문일지 모른다. 왜냐하면 이 작품에는 '빈곤'이 처음부터 존재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 빈곤은 존재하지 않고 빈곤에 대한 '두려움'만이 존재할 뿐이다. 

8-4 우울과 비아그라 (재밌음. 너무 길어서 안 옮김)

8-5 유토피아와 설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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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을 지나치게 낭만화 하는 것 아닌가. Climbing out of poverty by your own efforts, that is indeed something on which to pride yourself, but poverty itself is romanticised only by foo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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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가들의 변화에 대해 왈가왈부하고 싶지 않다고 하는 것은 비겁한 수사라고 생각함. 하지만, 글을 읽다 순간적으로 짜증나는 대목이 있다면 발언이 너무 터무니없거나 인식은 못하지만 그 사실이 치부를 찌르기 때문이다. 분간하는 건 곰곰히 생각해보면 크게 어렵지 않은 일이다. 짜증 수준에서 멈추면 다다를 수 없는 곳이지만.

 

120217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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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싹싹하게 사무실을 돌아다니며 일을 하던 다른 팀 사람이 오늘 사무실 사람들에게 인사를 한다.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아쉬운 마음 때문만은 아닐 거다. 계약이 만료되어서 나간단다. 오늘을 마지막으로 자리를 정리하고 나가겠지. 뒤에 다른 사람이 온다는데, 왜 같은 사람이 하던 일을 계속 하면 안되는가? 옳지 않다는 느낌. 남 걱정할 처지가 아닌 나도. 비정규직이 천지에 널려있는 방송국. 피디급은 대부분 사원이지만 조연출은 사원이 10%도 안 된다. 적게 뽑고 아래 허드렛일 인력은 계약직, 협력직, 심지어는 바우처를 받는 식으로 운영하겠다는 심보. 방송국이 비정규직을 말하는 건 정말 모순이다. 

이러한 노동 구조는 어디까지 정당화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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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사람들과 일하고 싶다. 활기찬 에너지, 긍정적인 힘을 받으면서 일하고 싶어. 아저씨와 아저씨들의 세계. 듀나의 범죄와의 전쟁 평에서 공감한 것. 최익현의 캐릭터가 지극히도 과장되어 보이는 캐릭터면서도 그것이 '오바'로 다가오지 않는 건, 우린 여기에서는 최익현이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린 실제로 수많은 최익현들을 보아왔을 것이다.) 아저씨의 세계. 우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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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로 이민가고 싶다! 냠냠. 백수가 되면 제주도에 가서 쉬고 싶다. 흐히히히.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1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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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맞다 오늘 생일이다. 히히. 지금 한시간 반 후 비행기를 두고 십 분 후에 무사퇴근 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가슴을 졸이고 있다. 꺄옹. 운전하고 싶다! 추운 서울을 등지고 놀러간당 히히히ㅣㅎ히ㅣ히히힣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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