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에 해당되는 글 67건

  1. 2012.12.11 121211 무용한 거짓말, 범죄의 후유증.
  2. 2012.12.06 121206
  3. 2012.06.19 120619 영화 리뷰 등
  4. 2012.06.02 120602 일상의 균열
  5. 2012.02.17 120217 일기
  6. 2012.01.24 120124 12월~1월 정리
  7. 2012.01.02 120102 새해
  8. 2011.09.24 110923 김혜리가 만난 사람
  9. 2011.07.29 110728 Vanity
  10. 2011.07.23 110722 정이현

121211 무용한 거짓말, 범죄의 후유증.

오랜만에 일기.


크리스티가 왔다갔다. 왔다간게 참 다행이다 싶을 정도로 애정도 회복과 정신 차리기에 도움이 됐다. 여기서 내 인생이 끝이 아니라는 점을 다시 생각하게 해줘서. 얘랑 함께하기 위해서라도 나는 앞으로 해야할 일이 많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혹여나 더 나은 대안을 찾을 수 있으리란 믿음은 일단 접어두자. 함께 하기 위해서 가야하는 길이 멀구나. 하지만 뉴욕과 샌프란시스코에서 각자 차를 몰고 미대륙을 횡단해 텍사스-왜 하필 텍사스야! 총을 맞을지도 모른다고-에서 만나는 그날을 생각하면 마음이 따뜻하다. 마치 다른 유니버스의 나는 지금보다 더 행복하거나 불행할 것이라는 '사실'을 생각할 때와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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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한 거짓말을 가끔 한다. '언젠가 텀블러가 가방 안에서 샌 적이 있어요. 완전 악몽이었죠' 같은 류의 거짓말을 하곤 한다. 지금 이 시점에서 이런 얘기를 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그런 말을 내뱉곤 한다. 주로 친근감은 있으나 아직 친하진 않은 사람에게. 내가 말을 하면서도 난 왜 이런 말을 하고 있지? 그런 일이 실제로 있었는지조차 헷갈린다. 결국 정말 있었던 일로 믿어버리게 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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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의 후유증은 생각보다 오래 갈 것 같다. 말하자면 '묻지마 폭행'을 당한 셈인데, 그 와중에도 희극성을 발견한 내가 더 우습다. 맞으면서도 내가 왜 맞고 있는지 이해하려 애썼고, 아파트 단지로 들어오는 자동차 하이라이트에 도망간 그놈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허우적허우적 경비 아저씨를 찾을 때, 그리고 주변엔 아무도 없고 더이상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걸 알아차리고 집으로 걸어갈 때, 난 정말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이해가 안 됐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바라본 나는 눈밭에 뒹군 탓에 눈사람처럼 온몸에 눈이 묻어 있었다. 누군가에게 이 모습을 보여주기 전까진 나에게 비극이 일어난 것이 아니므로 울 수 없을 것만 같았다. 



12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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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휴일의 춘천일기를 읽고 갑자기 어딘가 가고 싶어졌다. 아무도 모르는 도시의 촌스러운 모텔에서 일어나고 싶다. 아마 실내는 어두침침하고 꿉꿉할테고, 누가 봐도 모텔용인 꼬질꼬질한 가구에 비해 최신식인 대형 벽걸이 TV를 보며 새하얀 시트--깨끗해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긴 머리카락 한올이 베개 밑에 남아있을테다--에 누워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아무 노래도 듣지 않고 아무 글도 읽지 않고 아무 소통도 하지 않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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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619 영화 리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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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병문안 가는 길에 난 할머니 이름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만약 혼자 병원에 갔다면, 「저, 할머니 병문안을 왔는데요.」「할머님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생각해보니 친척들 이름을 거의 모른다. 고모부는 때로는 이모부가 되기도 하고 고모부가 되기도 하지만 이름을 불리는 일은 없다. 저마다 할머니를 엄마, 장모님, 할머니라고 달리 부르지만 그 아무도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가족 관계에 기반한 호칭은 개인성을 완벽히 지운다-고 드립을 치려다가 그냥 뒤늦게 할머니에게 미안하다는 걸로 퉁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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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섬


사람 위에 사람을 얹고 사는 인구 천만의 도시에 uninhabited patch of land가 존재한다는 건 초현실적이다. 카약을 타고 밤섬에 상륙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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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키스!


- 도발은 없지만 달콤하다. 초콜릿의 농밀함도 레몬의 톡 쏘는 맛도 없지만 싸구려 설탕 덩어리는 아니다.

「아름다운 여자군. 뭘 마실까? 커피? 아니야 그건 너무 지루하지. 차? 아니야. 쥬스. 쥬스다. 열대 과일은 아닐거야. 구아바나 망고는 너무 무섭잖아. 살구, 살구 쥬스다. 살구 주스를 마시면 건너가서 말을 걸어야겠어」

「그와 함께 있으면 시간이 가는 줄 모르겠어. 일주일에서 목요일이 빠진 것만 같은 기분이야.」


- 팝콘무비를 보지 않게 된 순간부터 난 영화에서 도발을 원한다. 솜사탕 같은 영화도 때로는 괜찮지만 도발 없는 영화는 지루해.



미래는 고양이처럼!(The Future)


- 2011년 7월, 링컨 센터에서

- 미란다 줄라이와 그의 남자친구는 성숙하지 못한 인간이다. 눈 앞의 책임을 마주할 줄 모르고 유아기로 회귀하는 30대 커플이다. 간지러운 솜사탕 같은 장면들도 있지만 현실을 마주하지 않는 인물들 (그렇다고 이상을 잡으려 노력하는 인간도 아닌) 은 보는 이를 짜증나게 한다. 감정이 메마른 나에겐 그 간지러운 솜사탕도 백설탕 덩어리일 뿐이었다. 



멜랑콜리아


- 영화를 관통하는 바그너의 음악은 아름다웠지만 힘겨웠다. 압도적인 화면과 다가오는 멜랑콜리아, 결국 죽어버린 건 가장 의연한 척 하던 존이었다. 강철이모는 'the earth is evil, we don't need to greif for it'이라고 말하면서도 조카를 위해 비밀 동굴을 만들어준다. 어쩌면 그 아이는 저스틴에게 망가진 지구 상에 마지막으로 남은 빛/빚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뭇가지 몇 개 밑에 앉아 손을 잡고 멜랑콜리아를 기다리는 마지막 씬은 근래 본 것 중 어쩌면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멜랑콜리아를 본 지인은 "극심한 우울을 겪은 사람은 지구가 끝나는 것이 차라리 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하지만 클로에와 저스틴 사이에서 멋있는 건 종말을 받아들이는 저스틴이었을지 몰라도 아름다운 건 겁에 질려 아이를 안고 뛰는 클로에였다.


다른나라에서


- 유준상은 정말 일취월장하는 듯. 넝쿨당에서 요즘 국민 남편이라더니. 이자벨 위페르고 누구고 간에 다른나라에서는 홍상수 영화 중에 가장 발랄한 영화였다. 돌고 도는 우연적 회귀는 여전하지만 옥희의 영화의 처연함도, 북촌방향의 쓸쓸함도 없다. 아마 홍상수는 이 영화를 만들면서 굉장히 즐겁지 않았을까 싶다. 만년필-소주병-우산으로 이어지는 뫼비우스의 띠. 세 번의 안느는 모두 다르지만 가장 빛나는 건 변하지 않는 유준상의 천진함이다. 웨어 이즈 더 라이트 하우스? 아! 라이트 하우스! 아이돈노. 하하하!


내 아내의 모든 것


- 즐거웠지만 시간이 아까웠다. 팝콘무비를 즐기는 능력을 상실해가는 것만 같은 느낌이야. 그 와중에 류승룡이 꼬시면 넘어갈 것도 같다는 생각. 그래도 나쁘진 않았다. 후반부에서 교훈적으로 이어지는 부분이 기특하면서도 찌질했다.


어벤져스


- 헐크가 좋아. 언제나 기승전결을 엄격하게 지키는 헐리우드 히어로 무비의 미덕. 

- 덧. 마크 루팔로는 엉덩이가 예쁠 것 같다. 크리스 헴즈워스가 왜 섹시하댔는지 알 것 같다. 


HBO Girls


- 리나 던햄은 유의해 볼만하다. 하지만 시즌 1의 9화밖에 안됐는데 제자리 걸음하는 듯한 캐릭터들은 아쉽다.



120602 일상의 균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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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할머니가 대장암에 걸리신 뒤, 우리집의 일상에는 조금씩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나는 처음으로 엄마가 우는 것을 엿들었고, 엄마는 생전 하지 않던 외박을 하기 시작했다. 외박이래야 봤자 할머니집에 가서 자고 오는 것에 불과하다. 그런 당연한 일마저 하지 않고 집에 자신을 붙들어 대던 엄마다. 자식들한테 밥 챙겨주기 강박증에 시달리는 엄마는 나에게 내일 동생이 먹을 삼겹살을 사올 것을 거듭 당부한다. 


아빠가 변한다. 나이가 들면 아버지가 작아지는 것이 느껴진다더니. 물론 나에게 아빠는 아직도 무서운 존재다. 나는 보통 불편해서 아빠와 식사를 함께하지 않는다. 연설을 늘어놓거나 내 진로에 대해 물어볼까봐 '두려운' 탓이다. 성가시다기 보다 두렵다. 하지만 어느샌가 아빠는 나를 봐도 잔소리를 하지 않는다. 저번에 술을 마시고 온 아빠는 나를 앉혀놓고 "엄마랑 나는 요즘, '멘붕'이다. 너 '멘붕'이 뭔지 아냐?"고 했다. 나는 자리를 피했다. 


오늘은 내가 만들 계란죽을 만들다가 아빠 것까지 만들었다. 같이 마주보고 밥을 먹었다. 아직 제대로 된 대화는 하지 않지만 새로운 종류의 불편함이 생겼다. 아버지는 그 연령대의 남자들이 그렇듯 어깨가 좁아진 듯 하다. 내가 만든 맛없는 계란죽을 먹고 아빠는 "점심은 니가 했으니 저녁은 내가 할게"라고 말했다. 예전과는 다른 의미로, 불편했다.




120217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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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싹싹하게 사무실을 돌아다니며 일을 하던 다른 팀 사람이 오늘 사무실 사람들에게 인사를 한다.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아쉬운 마음 때문만은 아닐 거다. 계약이 만료되어서 나간단다. 오늘을 마지막으로 자리를 정리하고 나가겠지. 뒤에 다른 사람이 온다는데, 왜 같은 사람이 하던 일을 계속 하면 안되는가? 옳지 않다는 느낌. 남 걱정할 처지가 아닌 나도. 비정규직이 천지에 널려있는 방송국. 피디급은 대부분 사원이지만 조연출은 사원이 10%도 안 된다. 적게 뽑고 아래 허드렛일 인력은 계약직, 협력직, 심지어는 바우처를 받는 식으로 운영하겠다는 심보. 방송국이 비정규직을 말하는 건 정말 모순이다. 

이러한 노동 구조는 어디까지 정당화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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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사람들과 일하고 싶다. 활기찬 에너지, 긍정적인 힘을 받으면서 일하고 싶어. 아저씨와 아저씨들의 세계. 듀나의 범죄와의 전쟁 평에서 공감한 것. 최익현의 캐릭터가 지극히도 과장되어 보이는 캐릭터면서도 그것이 '오바'로 다가오지 않는 건, 우린 여기에서는 최익현이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린 실제로 수많은 최익현들을 보아왔을 것이다.) 아저씨의 세계. 우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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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로 이민가고 싶다! 냠냠. 백수가 되면 제주도에 가서 쉬고 싶다. 흐히히히.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1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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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맞다 오늘 생일이다. 히히. 지금 한시간 반 후 비행기를 두고 십 분 후에 무사퇴근 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가슴을 졸이고 있다. 꺄옹. 운전하고 싶다! 추운 서울을 등지고 놀러간당 히히히ㅣㅎ히ㅣ히히힣 ㅎ


120124 12월~1월 정리


다 본 것만

# 서재 결혼시키기 / 앤 패디먼

- 원제인 Ex Libris가 훨씬 멋있지만 [장서표]라고 직역했으면 전혀 팔리지 않았겠지... 한글으론 멋있지도 않고. 한글 제목으로는 이것도 나름 괜찮다고 생각한다. 저자인 앤 패디먼은 The American Scholar 편집자. 유년기가 무지하게 부러웠고 내 아이도 이렇게 키우고 싶다 (what kid?). 에세이에서 책에 대한 애정이 풀풀 넘쳐 흐르는 데다 유머러스한 문체와 역자 정영목씨의 출중한 번역이 합쳐져... 정말 재밌게 봤다. 흐흐. 남편 조지 콜트와의 애정담도 깨알같이 고소하다. 다만 언급되는 아주 많은 작품들을 내가 하나도 모르기 때문에 재미가 반감되는 듯. 이 책 외에 번역된 책이 두 권 더 있는데 <세렌디피티 수집광 (원제 At Large and At Small)> (제목은 무슨 센스인지...), <리아의 나라 (The Spirit Catches You and You Fall Down)>... 그렇게 끌리진 않네. 



# 그대로 두기 / 다이애나 애실

영국 안드레 도이치 출판사의 편집자로 일하던 다이애나 애실의 자서전. 지금은 80이 넘은 할머니라니 이렇게 나이 든 사람의 자서전을 읽어본 것만도 오랜만이다. 가벼운 에세이라 금방 읽을 수 있고 좋다. 편집인의 인생에 초점을 두고 읽는 것보다 재밌는 할머니의 인생담으로 보면 더 재밌는 것 같다. 그 솔직함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 주위 사람들에 대한 아주 솔직한 묘사, 단점을 그대로 적기, 좋은 쪽으로 포장시켜 말하지 않는 등 - 나는 글을 써도 그렇게 못 쓸 법 한데. 역시 나이를 아주 많이 먹으면 그런 것 따위 신경쓰지 않을 수 있는 건가 싶었다. 나이 든 사람들 책을 더 읽어보고 싶다. 

# 서울의 낮은 언덕들 / 배수아

배수아 신간. 작년에 당나귀들과 독학자를 아주 좋게 읽지만 귀국 후 일요일 스키야키 식당과 에세이스트의 책상에 큰 실망을 했던 터라 신간을 시키면서도 걱정이 됐다. 평이 나쁜 편은 아니길래 안심은 좀 했지만. 배수아는 작품 수가 적은 편은 아닌데, 초기작이 더 읽기 좋다는 평이 다수다. (근작으로 올 수록 문장이 난해해지고 자기 정신 세계에 빠지는 경향이 - 그게 나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여튼 이것도 배수아 특질이라고 생각하니까. 신형철이 말했듯 배수아는 하나다.) 이게 무슨 말이야, 하고 읽다가도 어딘가 가면 머리를 두드리는 문단을 만나게 된다. (배수아는 마음을 두드린다기보다 머리를 두드린다.) 사실 뒷부분에 가서 머리가 마비되는 바람에 휘리릭 넘긴 터라 다시 정리 좀 하고 발췌하고 싶다.  

# 그림과 그림자 / 김혜리, 느낌의 공동체 / 신형철

둘 다 칼럼을 모은 글이라는 이유로 무턱대고 묶었다. 김혜리가 그림을 공부했는 줄은 몰랐다. 글은 역시 칼럼으로 쓴 글을 모은 거라 실망스러웠지만 그림 보는 재미는 있었다. 신형철 산문 역시 짧은 분량이 안타까웠다. (그렇다고 몰락의 에티카처럼 긴 것도 부담스럽지만 ㅋㅋ) 

 # 엔분의 일 2011 봄호 

다시 보니 이게 2012년 봄이 아니고 2011년 봄호구나. 여튼 이걸 끝으로 장기휴간이라니 이게 무슨 날벼락이오! 여튼 온라인에서 품절인걸 우연히 강남 교보에서 집어들었다니 다행이다. 문예중앙, 페이퍼, 지콜론, 일러스트 정도를 앞으로 한 권씩 봐봅시다... 

# 위로받지 못한 사람들 1 / 가즈오 이시구로 

한 권이 넘어가는 장편 소설 읽는 것도 오랜만이다. 오늘 1권을 다 읽었는데 (사실 마지막 몇 페이지는 지쳐서 넘긴 탓에 다시 읽어야겠지만) 도대체 이 소설이 어떻게 될 지 궁금하다. Y 언니의 극찬에 읽기 시작했는데 사실 Never Let Me Go나 녹턴은 평이 일정하게 좋은 반면에 이 소설은 비평이 갈린다던데 아마 이거 읽고도 never let me go는 하나 더 읽고 싶다.

# 잡문집 / 무라카미 하루키

이렇게 보니 끝까지 읽어낸 책들은 에세이와 소설밖에 없네. 역시 진득하게 앉아서 볼 시간이 딸리니 맘 놓고 읽을 수 있는 쪽으로 쏠리게 된다(는 핑계). 오랜만에 하루키 에세이집이 나왔길래 기대하며 샀지만 하루키도 요즘은 하락세인가. 1Q84는 읽어볼 엄두도 안나지만 원래 하루키 장편은 좋아했던 기억이 없는 나로써는 산문집에 손이 갈 수밖에. 그리고 하루키는 역시 단편집 & 에세이다. 폴 오스터와 바흐를 비교한 에세이도 재밌었고 카버, 챈들러 등에 대한 에세이도 재밌었다. 아, 무엇보다 이거 읽다가 '언더그라운드'를 보게 됐다. 일본 옴진리교 사건 피해자를 인터뷰해 모은 책. 예나글방 갔다가 구판이 있길래 (저렴해서 ㅋㅋ) 샀는데 피해자 얘기보다는 가해자 얘기가 더 재밌을 것 같다. 아무래도 요즘 아이히만이니 뭐니 자꾸 걸리는게 나치 시대 가해자 쪽의 재판 기록 같은 걸 좀 읽고 싶다. 영화 <더 리더>는 좀 재미없게 봤지만 (이 영화보고 이 이야기가 남주의 이야긴지 여주의 이야긴지 싸웠던 기억이 난다. Aㅏ...) 



읽을 건 차고 넘치는구나 에헤라디야 
이 외에 다 못 읽은 건 너무나 많도다 

120102 새해


우와 앞자리가 12다. 난 2012년이 참 마음에 든다. 왜냐면 바흐의 하프시코드와 The National로 시작했으니까. 음악이 귀에 들어온다는 건 좋은 신호다. About Today 더 내셔널의 EP Cherry Tree 수록곡. 가슴을 두드린다. 오랜만에, 음악을 듣고 울 뻔했다. 

하프시코드는 정말 아름다운 악기다. 피아노에 밀려났기에, 단점이 있기에 더 아름다운 것 같아. 어젯밤에 하프시코드에 꽂혀서 열심히 듣고 있었는데 아침에 Warrior 사운드 트랙이라고 보내준 About Today 듣고 가슴이 두근두근. 

작년에 발견한 음악은 역시 얄개들이겠지? 연애시대 OST도 좋았지만 얄개들은 정말 좋았다. 아무래도 마음이 피폐할 때는 음악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좋은 음악을 들어도 좋은 줄 잘 모르는 것 같다. 

그제 생각할 때는 작년 상반기에 놀았다고 썼는데, 생각해보니까 인턴하면서 엄청나게 스트레스 받았다.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아도 그냥 회사 가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였다. 너무너무 하기 싫어서 회사에서 몰래 울기도 하고 그랬는데ㅋ 그래도 덕분에 나는 회사를 다닐 수 없다는 걸 알았다. 그런 야매 단체에서도 견딜 수 없다면 다른 건 오죽하겠어. 그 때는 정말 내가 인턴을 하기로 한 건 엄청난 실수였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그 때 논 게 지금은 다행이다 싶다. 그 때 쓴 일기를 찾아봐야겠다. '뉴욕'에 있으면서도 그렇게 불행했으니, 어디에 있느냐는 정말 중요한 게 아니다. 

내가 더 이상 어딘가로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된지도 꽤 되었다. 더 이상 장소의 변화가 나의 변화를 담보하지 않는다는 걸 아니까. 아니, 변화라기보다 발전. 물론, 여기가 아니라면 다를 것들이 몇 가지 있지만. 

미시사가 재밌다. At home: a short history of private life. 예전에 흘려듣고 재밌겠다고 생각했는데 얘기하다가 나와서 보기 시작했다. 저번에 거금을 주고 산 도시와 인간도 읽어야 하는데 보려면 팔이 덜덜덜... 킨들을 산 건 정말 훌륭한 선택이었어 

저번에 MQ 사람들 만났을 때 무지하게 반가웠다. 집에 가면서도 흐뭇했고. 반면 다른 모임에 갔을 때는 그저 그랬다. 그래서 돌아오면서 참 힘이 빠졌다. (시간이야 많지만ㅋㅋ) 시간내서 만났는데 별로 감흥이 없었기에. 하지만 뭔가 다른 것의 단면을 본 느낌이었다. 

110923 김혜리가 만난 사람

 

2011 9 23

 

*

김혜리의 글은 금방 알아볼 수 있다. 단순한 정보성 글이라도 단어가 범상치 않다. 정공법으로 치고 들어온다고나 할까. 진득하게 진심에 밀착하려는 분투가 전해져온다. 첫 문장부터 치고 들어온다. 그러기엔 이 여자는 너무나 섬세하다. 치고 들어온다기보다 정곡을 집는다. 그건, 의도적으로 글을 강하게만들려고 했다기보다는 그저 꾸밀 줄을 모르는 것이다. 그녀는 진심을 쓴다.

 

마음으로 쓴 글은, 정말로 전해진다. 가장 내밀한 속마음을 드러내는 서문과 발문을 읽으면서 나는 가장 많이 울었다. 신형철의 서문을, 김혜리의 발문을 읽으며 나는 진동한다. 꾸밀 줄 모르기에 문장 하나하나가 빽빽하다. 정확하게 표현하기 위해 단어를 다듬고 재배열하고 수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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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가 될 수 있다면 출판편집인을 하세요. 내 이름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내가 문학을 예술을 사랑하고 그들을 보살피고 싶다면, 그리고 그걸로 족하다면. 당신은 지독한 짝사랑을 하고 있다. 나는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나의 글을 쓰고 싶다.

 

그게 나의 욕심은 아닐까 걱정도 된다. 나의 것에 대한 욕망이 아닌 나의 이름에 대한, 주위 사람들이 나의 이름을 알아주기를 원하는 것이 아닐까. 나는 짝사랑은 견디지 못하고 금방 다른 아이를 좋아해버리는 참을성 없는 여학생이 아닐까.

 

*

 

제법 호되고 차가운 단어를 늘어놓으며 힘센 척할 때라도 우리는 결국 영화를 만드는 이들을 뒤쫓는 메아리로서 영화의 게임에 참여하고 있음을 잊지 않습니다. 어차피 모든 영화는 아무리 허약하다 해도 어떤 악평보다 오래 살아남을 것입니다. … 영화평을 쓰는 우리의 대부분은 좌절한 창작자이거나 좌절한 관객입니다. 우리의 욕심은 오만하다면 오만하고 초라하다면 초라합니다.” (<영화야 미안해> 여는 글)

 

이제 압니다. 기사라는 명목으로 제가 썼던 글과 글 비슷한 끼적거림은 기실 일기였고 얼굴을 알 수 없는 당신에게 띄우는 편지였습니다. 고백컨대 그것은 월급쟁이의 은밀한 횡령이었습니다. 모두가 보기 때문에 누구도 보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마음 놓는 일기였고, 수취인불명의 편지였습니다. … 그러나 왼쪽 서랍은 이미 스쳐지나가 더 이상 어찌할 수 없으나, 차마 버리지 못하는 영화들의 몫입니다. 이 책은 제 왼쪽 서랍입니다. 편애의 기록입니다. 제 초라한 왼쪽 서랍을 왼손잡이 당신에게, 잡동사니에 눈길이 머무는 당신에게 바칩니다.” (닫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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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은 <화양연화>가 보는 이에게 남기는 깊은 울림을 적은 뒤 그것은 아마 우리 중 대부분이 실패한 연인이기 때문 아닐까. 온전히 내 것이 될 불변의 사랑을 꿈꿨으나, 번번이 그 여린 빛이 내민 손 한치 앞에서 사그라드는 것을 지켜보아야 했던…”이라고 끝맺을 때, 그러니까 너무 많이 그리고 쉽게 말해져버려 이제 거의 죽어버린 의미가, 좋은 영화와 만난 그의 언어를 거쳐 촉촉한 생명을 얻을 때,

 

보기 드물게 첫 문장에서 가 등장하고 더 뜻밖에도 그의 글에서는 유례없이 단호한 말투를 지닌 그 인터뷰 서문은 이 세상의 많은 이야기꾼들을 위한 변명이면서, 동시에 자신을 위한 은밀한 그러나 최상의 위안이다. (발문, 허문영 영화평론가)

 

언제부터인가 나는 소심한 사람들의 괴력을 눈치채게 되었다. 대범한 사람들이 세계를 들썩들썩 움직이는 동안 소심한 사람들은 주섬주섬 세상을 해석한다. 살아남기 위해 예민해질 도리밖에 없는 초식동물처럼 그들은 누가 힘을 가졌는지 계절이 언제쯤 변하는지 민첩하고 정확하게 읽어낸다. 미미한 자극에 큰 충격을 받고 사소한 현상에 노심초사하는 그들의 인생은 남보다 느리게 흐른다. 타고난 관찰자이며 기록자인 그들의 소극적 복수는 이야기. 그들은 더디게 살기 때문에 삶을 사는 동시에 재구성한다. 목소리 큰 당신이 휘어잡았다고 생각하는 어젯밤 술자리에서 벽지처럼 있는 듯 없는 듯 듣기만 하던 동료가 있었던가. 그가 잠들기 전 떠올린 스토리 속에서 당신은 놀림감이었는지도 모른다. 이것이 세계의 평형을 유지하는 매커니즘 중 하나라고 판명돼도 나는 놀라지 않을 것이다. (그녀에게 말하다 김병욱 인터뷰)

110728 Vanity


아 이런 애들도 있지. 하고 깨닫는 느낌이다. 이런 애들이 잘 없어서 몰랐는데. 인간성 좋고 착하지만 결국 vanity. 쇼핑하는 것에 아무런 죄책감이 없고 좋은 음식을 먹고 예쁜 옷을 사고 좋은 호텔을 잡고 그런 것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는 것. 돈이 있고 없음의 문제가 아니라 의식의 차이다. 비싼 가방을 아무렇지 않게 사고 그것에 대한 아무런 도덕적 하자를 느끼지 못하고. 거기서 유일한 문제는 '제 값' 하는 물건을 샀는가. 충분히 예쁜가. 좋은 가방인가. 하하하. 

시카고 봄. 영화가 더 좋음. 뮤지컬이란 장르의 한계를 느끼며 오페라는 너무 어렵고 연극 정도는 즐길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110722 정이현



<낭만적 사랑과 사회>, <오늘의 거짓말>, <달콤한 나의 도시>. 정말 어쩌다보니 세 권이나 읽었는데도 좋지가 않았다.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힘은 차치하고라도 정이현의 서사가 거북한 것은 여성의 위치를 정확하게 이용하고 '연기'하는 인물들 때문이다. 두 해설자(이광호, 박혜경)가 공통적으로 이야기 한 것은 작중 인물들이 체제순응적이지만 체제 내에서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려고 한다는 것. 하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연기함으로써 욕망을 실현하는 인물은 식상하다 (심하게는 역겹기까지 하다). 그저 순응적인 인물보다는 낫다고야 하지만 이래서야 '영악하지만 말 잘 듣는' 인물밖에 더 되나? 

정이현 소설의 강점은 "세속적인 욕망을 어떠한 낭만적 과장이나 미화 없이 지극히 현미경적인 내부자의 시선으로 그려내는 작가의 서술방식에 있다" (해설자  박혜경) 하지만 이건 관음증적인 자기혐오 또는 정당화에 지나지 않는다고 이야기 하면 비약일까? 차라리 <아내가 결혼했다>처럼 뻔뻔하게 요구하던지, 정이현의 인물은 주말 드라마에 등장하는 '똑똑하고 자기 몫 잘 챙기는' 여자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내가 '낭만'을 중시하기 때문에, "세상에 낭만은, 체제 밖으로의 탈출은 없다"고 얘기하는 작가의 냉소에, 쿨한 관찰에 화가 나는/짜증 나는 것 뿐인지도 모름. 벗어나고 싶은 구질구질한 세상, 천박하다고 경멸하는 관습과 그에 순응하(면서 챙길건 챙기는)는 인물을 보여주는 소설이 좋을 리 없다. 정이현에게는 낭만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가의 소설들이 20, 30대 여성에게 인기가 많다는 것은 굉장히 슬픈 일이다. 

신형철 평론가는 아름다운 것에 대해 아름답게 말하고 싶다고 했는데 나는 아름답지 않은 것에 대해서 아름답지 않게 말하는 군.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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